주간동아 898

2013.07.29

남의 돈 빌려 쓸 때는 신중하라

결과적 사기

  • 류경환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3-07-29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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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돈 빌려 쓸 때는 신중하라
    한때 수많은 사람의 빈 가슴을 채워주던 유명 PD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사업을 하려면 필요한 자금을 융통해야 한다. 이익이 발생하면 사업을 확장하고 돈도 벌 수 있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사업에는 반드시 부침이 있으니,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이때 주변 사람으로부터 자금을 융통했다가 실패한 경우, 사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본래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경우 성립한다(형법 제347조). 단순히 돈을 빌린 다음 갚지 않는 채무불이행은 범죄가 아니다. 이 둘은 법률적으로는 전혀 다르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사업이 어려워져 자금을 융통할 경우 경영자는 사업 실패 위험을 인식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지금의 위기만 넘기면 사업이 잘 풀리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빌리면,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금을 융통한 것으로 해석돼 처벌받는다.

    법률적으로 변제 의사란 개인의 주관적 의사라기보다 객관적 조건을 모두 종합해 정황상 추정되는 의사를 뜻한다. 따라서 아파트를 분양한다고 했으면서 도중에 중단한 경우, 이벤트를 진행한 뒤 인건비를 주겠다고 해놓고선 그렇지 못한 경우, 사업권을 얻어주겠다고 해 활동비를 받았지만 실패한 경우 등 처음에는 기업가 정신으로 일을 도모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했을 때 난처해질 수 있다. 어떤 것이 사기죄가 되는지는 사례별로 다 다르다. 명쾌하게 기준을 정할 수 없다 보니, 나쁜 결과가 나온 뒤 소급해 사기행위라고 추론한다고 해서 ‘결과적 사기’라는 자조적 표현도 나온다.

    자금 융통력은 창의적 아이디어보다 개인의 사회적 지위나 평가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영화감독이나 PD의 경우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실패할 개연성은 항상 있다. 이를 인식하고 진행하면 사기가 맞다. 일반 점포 주인도 매상이 떨어지면 점포 규모를 줄이기보다, 자금을 빌려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이런 유지가 한계에 다다르면 사기가 된다. 이것과 함께 법인과 개인 자금의 혼재, 능숙하지 않은 회계처리 등으로 횡령 문제까지 수반된다. 분식회계를 하지 않은 업체라도 세무조사를 하면 만만치 않은 탈루세액이 발견된다. 사업은 모든 것을 명쾌하고 간결하게 정리하면서 추진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망한다.



    지인들이 조금씩 모아준 자금으로 사업을 하다 잘못됐음을 알게 되면 사업을 접고 청산하면 된다. 다소 마찰이 발생하겠지만 감옥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인 얘기일 뿐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제도를 받아들였으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의 평판을 보고 투자하고, 인간관계로 보증인을 세우면 추가로 자금 융통이 가능하며, 심지어 주식회사 대부분에 오너가 있는 사회에서 산다. 이 때문에 자금을 모으는 주체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고 ‘결과적 사기’라는 아픈 현실은 그래서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내가 비윤리적인 사람인가”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단지 자금을 마련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참고로, 사기죄로 처벌받으면 그 채무는 불법행위로 인한 것이 되기 때문에 개인파산을 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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