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1

2013.06.10

류현진, 신인왕을 향해 던져라

한국산 ‘괴물 본색’…이대로면 ‘동양인 최고 투수’ 가능

  • 김도헌 스포츠동아 스포츠1부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3-06-10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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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현진, 신인왕을 향해 던져라

    텍사스 레인저스의 다르빗슈 유.

    2011년 일본 프로야구 선수 다르빗슈 유(27·텍사스 레인저스)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을 때 미국 언론의 반응은 환영과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다. 반면 2012년 겨울 한국 류현진(26·LA 다저스)이 처음 메이저리그를 꿈꿨을 때 현지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메이저리그 시각으로 보면, 일본 프로야구는 ‘검증된 리그’지만 한국 프로야구는 전반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야구의 변방’일 뿐이었다.

    다르빗슈와 류현진 모두 자국 리그에선 최고 투수였다. 그러나 같은 계약기간 6년에 이적료와 연봉을 더한 몸값 총액이 1억1170만 달러(약 1261억 원·다르빗슈)와 6170만 달러(약 696억 원·류현진)로 제법 큰 차이가 난 것도 이 때문이다.

    류현진의 힘 보여준 ‘완봉 쾌투’

    다르빗슈는 지난해 입단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준비된 에이스’지만, 올 시즌을 앞둔 류현진은 다저스의 ‘5선발 후보’에 불과했다. 그러나 2개월여 만에 류현진은 다르빗슈를 넘어 역대 동양인 신인투수 시즌 최다승에 도전하는 떠오르는 스타가 됐다. 6월 6일까지 11게임에 나서 6승2패, 방어율 2.89를 기록했다. 계속되는 장거리 원정과 무더운 여름이라는 암초가 남았지만, 현재 페이스라면 산술적으로 18승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다.

    류현진 등판 경기를 전담 해설하는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류현진의 최대 장점으로 ‘안정감’을 꼽는다. 마운드에서 던지는 모습이 의연한 데다, 기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40·은퇴)의 현역 시절 메이저리그 중계도 거의 도맡았던 허 위원은 “박찬호 게임을 중계할 땐 해설자 처지에서도 불안했다. 볼넷이 많고 이닝마다 기복도 심했다. 그러나 류현진은 내가 볼 때도 편안하다. 그만큼 안정감이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것은 5월 29일 다저스스타디움에서 열린 LA 에인절스와의 시즌 11번째 등판이다. 류현진은 이 게임에서 9회까지 4사구 없이 2안타만 허용하며 무실점으로 역투해 팀의 3대 0 승리를 이끌었다. 메이저리그 데뷔 11경기만의 완봉승이었다. 다저스 신인투수가 완봉승을 거둔 것은 1995년 노모 히데오 이후 18년만의 일이고, 박찬호가 첫 완봉승을 거둔 것이 빅리그 7년차인 2000년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류현진의 완봉승이 얼마나 값진지 알 수 있다. 올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후보로 꼽히는 다르빗슈는 빅리그에서 이제까지 완봉승은 물론, 완투승도 신고하지 못했다.

    다저스가 류현진 입단을 공식 발표했을 때 국내 많은 전문가는 첫 시즌인 올해 10승만 해도 대성공이라고 했다. 미국 현지에서도 기껏해야 다저스 5선발 후보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그는 한국산 괴물이 메이저리그를 호령할 수 있다는 점을 실력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류현진은 한국에 있을 때와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을까. 과거 류현진은 승리를 거두거나 탈삼진 퍼레이드를 펼칠 때 꼭 ‘필살기’가 있었다. 주로 직구와 서클체인지업이었다. 불펜 연습투구 때 당일 가장 좋은 구종을 파악하고 실전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던졌다. 한국에서 뛸 때는 직구와 서클체인지업만으로도 버텼지만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미국 진출 후 슬라이더와 커브 구사 비율을 높였고, 이것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승수 추가 과정에서 눈에 띄는 점은 ‘필살기’가 통하지 않는 날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을 보여준다는 것.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구종을 적절히 활용한다. 특정 구종에 의존하지 않고, 초반부터 모든 레퍼토리를 풀가동하는 것이다.

    둘째는 공격적 제구력이다. 우타자의 몸 쪽을 찌르는 대담한 승부를 시도하는데, 이는 투구 수를 줄이는 효과를 낳았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땅볼 유도 능력의 진화다. 구심의 스트라이크존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특히 우타자 바깥쪽에 꽉 차는 제구가 된 공을 뿌리며 타자를 범타로 유도한다. 4월 ‘신(新)닥터 K’라는 별명을 얻으며 놀라운 탈삼진 속도를 보였지만, 5월 이후 삼진이 주춤한 대신 땅볼은 눈에 띄게 늘었다. 메이저리그 스타일에 적응했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뛸 때 그는 종종 “전력을 다해 던지지 않는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불펜이 좋지 않은 소속팀 한화의 특성상, 그는 최대한 많은 이닝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고 이 때문에 체력 안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를 맞고 주자가 나간 뒤에야 힘 있게 볼을 던진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선 다르다. 한 타자도 쉬어갈 타순이 없다. 1구 1구마다 최선을 다해 던진다. 한국에서 120개 이상을 큰 어려움 없이 던지던 류현진이 100여 개가 한계 투구 수가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박찬호, 다르빗슈 넘어선다

    박찬호는 최전성기였던 2000년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개인 최다인 시즌 18승을 거뒀다. 이는 2006년 타이완 투수 왕젠민이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19승을 따내기 전까지 ‘동양인 메이저리거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이었다.

    류현진은 11경기에 등판해 6승(2패)을 챙겼다. 2000년 박찬호의 시즌 11번째 경기는 5월 30일 뉴욕 메츠전이었다. 박찬호는 7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5승(4패)을 수확했다. 11경기까지만 놓고 보면 류현진이 1승을 더 거둔 것이다. 방어율에서도 류현진(2.89)이 박찬호(4.48)보다 월등히 앞선다. 다르빗슈는 지난해 16승을 거뒀다. 동양인 데뷔 시즌 최다승이었다. 현재 페이스를 보면 류현진은 16승은 물론, 18승까지도 가능하다.

    지난번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왼쪽 발등에 타구를 맞아 타박상을 입은 류현진은 6월 3일 콜로라도전 선발 등판을 한 번 건너뛰었다.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제까지 한 번도 로테이션에서 빠지지 않고 강행군해온 류현진으로선 재충전 시간을 벌게 된 셈이다.

    신인왕은 평생에 단 한 번만 주어진다. 류현진은 시즌 개막전부터 올 시즌 목표로 신인왕을 내걸었다. 2006년 한국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신인왕과 시즌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해 전무후무한 기록의 주인공이 됐던 류현진이라 신인왕에 대한 욕심은 남다르다.

    현재 내셔널리그 신인왕 경쟁은 류현진과 셸비 밀러(23·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양자구도로 펼쳐진다. 밀러는 6월 2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8대 0 승리를 이끌며 6승(3패)을 수확했다. 방어율은 1.82로 류현진(2.89)보다 앞선다. 4월에는 류현진이 한참 뒤처진 분위기였지만, 5월 이후 류현진이 상승 곡선을 그리며 격차가 많이 줄었다. 밀러와의 신인왕 경쟁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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