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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성 노인 생계 절박 ‘상속푸어’ 만드는 상속법 바꿔야”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여성 노인 생계 절박 ‘상속푸어’ 만드는 상속법 바꿔야”

“여성 노인 생계 절박 ‘상속푸어’ 만드는 상속법 바꿔야”

곽배희
● 1946년 서울생
● 1969년 이화여대 법학과 졸
● 1973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요원
● 2002년 이화여대 사회학 박사
● 現 이화여대 겸임교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최근 수년째 이어지는 경제 불황으로 하우스푸어, 전세푸어, 워킹푸어(근로빈곤층), 렌트푸어, 실버푸어, 솔로푸어 등 신(新)빈곤층 급증을 반영하는 ‘푸어족’이 양산되고 있다. 가계 사정이 갈수록 팍팍해지면서 상속재산을 둘러싼 분쟁도 덩달아 늘었다. 대법원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상속과 관련한 가사비송사건 접수건수는 2006년 2만5541건에서 2011년 3만2333건으로 5년 사이 약 26.6% 증가했다. 여기에는 상속과 관련한 민사소송사건, 가사조정사건에 속한 상속 관련 사건 통계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상속 관련 사건이 법원에 접수된다고 보면 된다. 한편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면 본부의 면접상담 가운데 상속 관련 상담건수는 2010년 185건에서 2011년 632건을 기록해 1년 사이 3.4배가 됐다.

여성이 남성보다 7년 정도 더 살아

석 달 전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김모(53) 씨는 사별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남편 명의의 재산상속 문제를 놓고 자식들과 얼굴을 붉혀야 했다. 자식 4명 가운데 지금까지 사업할 수 있게 뒷바라지해준 큰아들과 유학까지 시킨 둘째아들, 돈 걱정 없이 잘사는 큰딸이 각자의 상속분을 당장 나눠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집을 팔아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고 남은 돈으로 전세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김씨는 당장 생활비를 마련할 길도 없어 막막한 실정이다.

김씨처럼 배우자 사별로 인한 충격, 자식들의 재산상속 요구, 재산상속 후 겪는 경제적 어려움 등 삼중고에 시달리는 생존배우자를 위해 법정상속분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핵가족화, 고령화사회 진입 등 사회 변화와 시대 흐름에 맞춰 5월 말 배우자 상속분과 관련한 상속법 개정을 촉구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부부 공동노력으로 형성된 재산, 상속법에서도 인정해야’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는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판사, 변호사 등 전문가들이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을 만나 현행 상속법의 문제점과 법 개정의 타당성, 개정을 둘러싼 논란 등에 대해 들었다.

▼ 현행 상속법은 20여 년간 별문제 없이 유지돼왔다. 왜 지금 개정이 필요한가.



“상속법을 처음 만들 당시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50대 초·중반이었다면 지금은 70대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7년 정도 더 산다. 부부 가운데 오래 남는 쪽은 여성일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이들은 대부분 전업주부로 살아 자기 명의의 재산이 거의 없다. 그런데 남편이 먼저 죽으면 이들은 법에 정해진 자기 몫 외엔 받을 수가 없다. 이는 형평에 맞지 않는다.”

▼ 현행 상속법에 따르면 생존 배우자와 자식은 각각 1.5:1 비율로 재산을 상속받는다. 그게 형평에 어긋난다는 건가.

“이혼과 비교해보자. 재산분할청구가 가능해지면서 부부가 결혼생활 동안 모은 재산에 대해서는 명의와 상관없이 부인이 많게는 절반까지 받을 수 있다. 전업주부든 맞벌이든, 재산형성에 대한 부인 기여도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별과 관련해서는 이런 제도가 없다. 이혼이든 사별이든, 부부가 노력해서 모은 재산을 청산하는 과정이라는 점은 다를 바 없는데 왜 그런가. 이런 면에서 형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여성 노인 생계 절박 ‘상속푸어’ 만드는 상속법 바꿔야”

5월 24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강당에서 열린 상속법 개정 촉구 심포지엄.

죽을 때까지 서로 책임지는 부부

▼ 생존배우자에게 상속재산을 훨씬 더 많이 줘야 한다는 뜻인가.

“상속법은 그동안 네 차례 개정됐다. 과거에는 생존배우자가 상속재산을 아들의 4분의 1 또는 2분의 1밖에 받지 못했는데 개정이 거듭되면서 점점 비율이 증가해 지금은 0.5할을 더 받게 됐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뭘 더 바라느냐’는 분위기도 있다. 그런데 자녀가 1명일 경우 부인이 상속재산의 절반 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자녀 수가 많으면 몫이 줄 수밖에 없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자녀들이 상속재산을 받을 때쯤이면 이미 성년이 돼 독립적으로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제활동이 왕성할 나이인 성인 자녀에게 상속재산을 많이 준다는 건 상속법 취지나 상속법이 갖는 사회적 기능에 맞지 않는다. 또 나이 들어 건강과 일자리를 잃은 생존배우자의 부양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 연금도 없는 여성 노인의 생계대책은 절박한 문제다.”

▼ 자식에게 부모를 부양할 의무가 있지 않나.

“요즘은 과거 농경시대와 다르다. 자식이 부모를 반드시 부양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도 여러 현실적 여건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양 차원에서 매달 꼬박꼬박 부모에게 생활비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가진 자식이 그리 많지 않다. 자기 살기도 바쁘다고 생각지 않나. 생존배우자 처지에서 봐도 자기 재산을 갖고 사는 것과 자식이 주는 돈으로 사는 것은 그 차이가 크다.”

▼ 부부 가운데 한쪽이 가족을 위해 진 빚이 있다면 나중에라도 상속재산에서 갚아야 한다. 만일 생존배우자의 기여도에 따라 공유지분을 인정한다면 채권자의 반대가 클 것 같다.

“채권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간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채무자(피상속인)의 재산이 아닌 것, 다시 말해 생존배우자의 재산(공유지분)을 두고 채권자가 피상속인의 채무를 대신 변제하라고 할 권한은 없다. 그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2006년 대법원 판례가 있다. 빚을 진 남편이 이혼하면서 재산분할로 부인에게 많은 재산을 떼어줬는데 채권자가 ‘사해행위’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빚을 안 갚으려고 재산을 빼돌리는 걸 사해행위라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은 부부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공동재산의 청산이라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배우자에게 재산분할로 재산을 양도함으로써 설령 채권자가 받아야 할 돈이 줄어들었다 해도 재산분할청구권의 취지를 벗어나는 과도한 것이 아니라면 사해행위로 볼 수 없다’는 거다. 이혼 시 재산에 대한 부인의 공유지분을 인정한 거니까 당연히 상속에서도 그것을 적용해야 형평에 맞는다.”

▼ 그럼 상속재산의 50%를 생존배우자에게 주고 나머지 50%를 자식에게 나눠주자는 건가.

“공유지분은 원래 생존배우자 거니까 그걸 뺀 나머지 상속재산을 나눌 때 자식과 함께 생존배우자도 포함해야 한다.”

▼ 그럼 생존배우자의 몫이 너무 큰 것 아닌가. 상속재산이 줄어드는 자식들 불만이 클 것 같다.

“성년이 된 자식을 부모가 언제까지 부양해야 하나. 요즘 자식들은 대학 졸업에 결혼까지 부모가 모두 책임지지 않나. 성년이 된 후에도 부모로부터 받을 만큼 받았기 때문에 이미 상속재산을 전부 받았다고 봐도 된다. 다만 부부는 서로 의지하고 도울 뿐 아니라 죽을 때까지 서로에 대해 책임이 있으므로 상속법 개정에서 그 부분을 더 강조하는 거다. 공유지분을 뺀 나머지 50%에 대해서도 생존배우자의 노후 삶을 보장한다는 ‘부양’ 차원에서 보면 전부 다 줘도 무리가 아니라는 게 우리 시각이다.”

▼ 자식에게 상속재산을 한 푼도 안 물려준다는 건 너무 과격한 듯하다.

“지나치게 진보적이거나 과격한 주장이 아니다. 이미 그렇게 하는 나라가 있다. 스웨덴은 1980년대 상속법을 개정해 생존배우자가 전 재산을 단독상속하게 했다. 다만 생존배우자마저 죽고 나면 먼저 죽은 부모가 남긴 재산까지 모두 포함해 자식이 상속분을 청구할 수 있다. 네덜란드도 생존배우자가 단독상속하되 자녀에게는 상속분에 따른 금전지급청구권만 준다. 이 청구권도 생존배우자가 사망한 후에야 행사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예외를 두는데, 생존배우자가 계부나 계모일 때는 한쪽 부모가 죽으면 그 재산을 자식들이 즉시 상속할 수 있게 했다.”

▼ 상속은 유언을 통해서도 이뤄지는데 유언이 상속법보다 우선시되지 않나. 현행법제 하에서 남편 또는 부인이 생존배우자에게 재산을 전부 주겠다고 유언하면 어떻게 되나.

“우리나라엔 ‘유류분 반환 청구’라는 게 있다. 자식이 이걸 주장하면 자기 몫의 법정상속분에서 2분의 1을 찾아갈 수 있다. 가령 피상속인이 죽기 전 배우자에게 전 재산을 주겠다고 유언을 통해 의사를 확실히 표시해놓았다고 치자. 그럼 배우자에게 전 재산이 가지만, 자식이 유류분을 주장할 경우 피상속인의 의사에 반해 재산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유류분 제도를 완전히 없애버리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법으로 제한을 좀 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류분을 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심포지엄에서도 나왔다.”

공청회 거쳐 올가을 개정법 제출

“여성 노인 생계 절박 ‘상속푸어’ 만드는 상속법 바꿔야”
▼ 법 개정에 대해 다른 비판이나 부정적 시각은 없나.

“현재 장성한 자녀와 따로 사는 부모가 10명 중 6명꼴이다. 시대가 변해 ‘부부 중심’ 가치관이 확산됐다. 나이든 남성 가운데 자신이 죽으면 부인한테 재산을 전부 물려주겠다는 사람도 있다. 반면 법을 전공한 학자 중에도 ‘왜 부인에게 재산을 남겨줘야 하느냐, 그러다 재혼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법 개정을 둘러싸고 ‘결혼생활을 얼마 하지 않았는데 재산을 많이 남겨줘야 하느냐’ ‘젊은 부인이 어린 자식들을 시댁에 버리고 재산만 받아서 가버리면 어떻게 하느냐’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런 점은 결혼기간 등을 반영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보완하면 된다.”

▼ 2000년대 중반 몇몇 의원이 상속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법무부도 입법예고했지만 모두 폐기됐다. 이번에는 개정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까.

“6~7년 전에 비해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고령화사회에 따른 부모 부양 문제가 불거지는 등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개정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고, 그래서 법 개정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거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현재 개정 법안을 준비 중이다. 곽 소장은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 법안을 수정, 보완한 다음 가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며 “혼인 중 재산 형성에 기여한 배우자의 권리가 상속법에 제대로 인정되지 않으면 생존배우자의 경제적 지위와 노후생활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고령화사회에서 노년 복지는 배우자 상속분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현재 전 세계적으로 생존배우자에 대한 상속분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3.06.10 891호 (p36~38)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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