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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낙점인사 ‘NO’라고 말할 수 있나

인사시스템 개선 형식보다 대통령 실천의지가 중요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낙점인사 ‘NO’라고 말할 수 있나

낙점인사 ‘NO’라고 말할 수 있나

5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윤창중 성추문 사태와 관련해 사과했다.

“윤창중 전 대변인 건도 성추행에 연루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했을 것이다. 그런 불행하고 불미스러운 일이 있고 해서 앞으로 인사위원회(인사위)도 좀 더 다면적으로 철저히 검증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해 철저하게 하도록 노력하겠다. 전문성을 보고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인물이 한번 맡으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그런대로 절차를 밟았는데도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그럴 때는 나 자신도 굉장히 실망스럽고 그런 인물이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더 철저하게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시스템을 더 강화하는 길밖에 없다. 인사 자료도 차곡차곡 쌓으면서 상시적으로 하는 체제로 바꿔나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 15일 청와대에서 가진 언론사 정치부장단 만찬 자리에서 이른바 ‘윤창중 사태’를 계기로 인사시스템 개선을 약속했다. 이틀 앞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는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될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취임 77일 만에 처음 공식 사과를 했다.

뾰족한 대안 없는 청와대

돌이켜보면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시절 김용준 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장·차관급 고위공직자 7명을 포함해 10여 명이 낙마했을 때도 “믿고 맡기면 잘할 것”이라며 사과 대신 후보자들의 전문성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언론은 이내 ‘수첩 인사’ ‘나 홀로 인사’라고 비판했으며, ‘사과에 인색하다’ ‘상황 인식이 안이하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어쨌든 ‘윤창중 사태’를 계기로 박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면서 윤창중 사태는 일단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박 대통령이 인사위 검증 강화와 인사시스템 가동을 약속했지만, 정작 청와대는 ‘현재로선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위원장(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 외에 인사위원에 대해선 말할 순 없지만, 현재 시스템 하에서는 수석비서관이 맡는 인사위원 수를 늘려 평가를 강화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정라인에서 더 꼼꼼히 검증할 수밖에 없다. 존안자료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위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방안’에 대해선 “인사 보안 등을 이유로 현재로선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 같은 개선책은 이미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중도 낙마한 인사들이 대거 발생한 뒤 3월 청와대가 약속한 내용이다.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인사에서는 사정기관을 통해 밝힐 수 없는 사각지대까지 검증할 계획”이라며 “평판과 소문검증을 강화하고 인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고 개선을 약속했다. 당시 인사위 멤버 구성을 바꾸거나 실무 인원 보강도 검토된한것으로 알려졌지만 변화는 없었다.

“당연히 했어야 할 인사위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일이 터질 때마다 검증을 강화한다는 조삼모사(朝三暮四)식 인사 개선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위는 이명박 정부의 인사기획관 구실을 하는데, 인사기획관 1인보다 합의제인 인사위를 거치면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강화된다는 게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설명이었다.

청와대 측은 인사위의 정확한 구성과 운영 방식에 대해선 인사 청탁과 로비를 막는다는 이유로 함구하지만, 청와대 인사위는 허태열 비서실장이 위원장, 이정현 정무, 유민봉 국정기획, 곽상도 민정, 이남기 전 홍보수석비서관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안에 따라 관련 수석비서관이 참여하는데, 박 대통령 보좌관 출신인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안전행정부 인사정책관을 지낸 김동극 선임행정관이 실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 인선은 각 부처와 해당 수석실이 협의해 1차 후보군을 올리면 민정수석실 검증을 거쳐 허 실장 직속의 인사지원팀에서 종합 정리한 자료를 인사위에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현재 인사위가 친박(친박근혜) 의원과 가신 출신으로 구성된 만큼 제대로 된 ‘인사시스템 가동’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인사위 운영 역시 각 수석비서관이 본연의 업무를 하면서 ‘추가로’ 일하는 꼴이어서 집중도와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물론 인사위원의 면면을 볼 때 박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근본적으로 인재풀이 한정되고 대통령 ‘낙점 인사’에 대해 ‘노(NO)’라고 말하기엔 한계가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 새누리당 한 중진의원의 기억이다.

인사위 본연 임무에 충실해야

“청와대 모 인사와의 저녁자리에서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한 전 후보자는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창립 멤버로 오랫동안 박 대통령에게 경제정책을 조언한 만큼 국정철학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적임자였다. 그런데 해외 비자금 문제와 탈세 의혹 검증에 대해 물어보니 ‘박 대통령이 일 잘하는 사람을 발탁했다 하고, 나도 업무 파악에 바빠 제대로 (검증) 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낙점 인사에 대해 제동을 걸기엔 ‘역부족’이고, 자신의 업무도 바빠 인사위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로 들렸다.”

이에 대해 인사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인사시스템 개선 약속이 ‘립서비스’에 그치지 않으려면 인사위를 명실상부한 인사독립기관으로 만들어야 하고, 이는 대통령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창현 전 중앙인사위원장은 “비서실장 중심의 인사위 구조는 대통령이 발탁한 후보에 대해 직언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과거 중앙인사위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청와대 인사위는 첩보전처럼 운영되고 구성도 확실하지 않아 보인다. 투명한 인사위 운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하나 짚어야 할 부분은 그동안 청와대가 전 정부로부터 존안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밝힌 점. 박 대통령은 4월 민주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청와대에 와보니 존안자료 같은 게 없었다”고 말했고, 허태열 비서실장도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제일 중요한 게 인사자료인데 지난 정부가 축적한 인사 관련 자료는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는 바람에 인수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자료를 다 넘겼지만 현 정부 인사들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민정라인의 군색한 변명일 뿐”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그러나 전 정부 민정라인에서 일했던 행정관이 현 정부에서도 일하는 만큼 철저한 검증을 원했다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높다. 필요하다면 이제라도 민정라인이 박근혜 정부의 인사스타일에 맞는 존안자료를 생산하는 게 중요하지, ‘존안자료가 없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건 책임회피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실 존안자료가 많이 있더라도 전 정부 코드로 검증한 인사들은 현 정부 인사철학과 맞지 않는다. 존안자료 역시 세간의 평판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부동산 투기나 세금, 논문 표절 등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중앙인사위 신설 문제도 그렇다. 일하는 사람과 방식도 똑같다. 아무리 중앙인사위가 있었다고 하지만 참여정부 때도 386 코드인사 문제가 계속 불거져 나오지 않았나. 결국 청와대가 다 관여하고 검증하는 거다. 검증을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거지 존안자료나 형식은 중요한 게 아니다. 대통령 의지에 달렸다.”

그의 말대로, 윤 전 대변인은 인사위가 아닌 박 대통령이 세간 평가와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직접 지명한 사람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를 불렀던 낙마자 상당수도 마찬가지다. 결국 대통령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형식적으로 검증하고 동의를 얻기보다 객관적인 검증을 거쳐야 하고, 인사위 역시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기보다 인사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사시스템을 지금보다 훨씬 잘 갖춘다고 해도 박 대통령 스스로 ‘의지’가 없다면 언제든 ‘제2의 윤창중 인사’는 나올 수 있다.



주간동아 889호 (p10~11)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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