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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최의 ‘남자, 여자, 그리고 섹스’

오늘 ‘제임스’ ‘앤젤리나’ 잘 있나

부부 성기에 이름 짓기

  • 마야 최 심리상담가 juspeace3000@naver.com

오늘 ‘제임스’ ‘앤젤리나’ 잘 있나

오늘 ‘제임스’ ‘앤젤리나’ 잘 있나
한 여성이 소년을 데리고 방문했다. 그녀는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초여름 날씨에도 목까지 단추를 채웠다. 소년은 반복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을 이모 씨라고 소개한 여성은 책상 모서리에 시선을 둔 채 입을 열었다. 마음속으로 여러 번 준비한 듯 그녀의 이야기는 여유 없이 죽 이어졌다. 간혹 그녀는 책상 모서리에서 시선을 떼고 소년을 바라봤다. 그때마다 소년은 얼굴을 붉히며 주먹을 꼭 쥐었다.

“한 6개월 됐을 거예요. 별다른 일은 없었어요.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절대 손을 대지 않아요. 공부하라고 잔소리는 좀 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집보다 달달 볶지도 않아요. 근석(13·가명)이가 형에 비하면 소심하고 여린 편이에요. 늘 아기 같아서 형보다 더 보살펴주는 편이죠. 애 아빠는 그냥 두면 저절로 낫는다고 하는데, 제가 못 참겠더라고요. 근석이가 말은 않지만 학교 친구들도 놀리지 않겠어요?”

아이를 내보내고 이씨와 단둘이 됐을 때 부부 성생활에 대해 물었다. 이씨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 아이의 틱 장애와 부부 성생활이 무슨 상관있느냐고 항의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 때 가족관계를 먼저 탐색하는 것이 일반적 수순이라고 설명해도, 이씨는 한동안 불쾌한 기색으로 입을 꾹 다문 채 무릎 위 마주잡은 두 손만 꼼지락거렸다. 결국 이씨는 더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이 손을 잡고 돌아간 뒤에도, 꼭 채운 블라우스 단추와 소년의 고갯짓이 눈에 밟혔다. 가족만큼 복잡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는 없다. 아이에게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십중팔구 부모형제 등 가족에게서 어떤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내 너무 성급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질문으로 이씨와 소년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론적으로 내가 아무리 옳더라도 그건 소년의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음 예약일, 이씨는 예약시간보다 15분 늦게 왔다. 소년은 없었다. 이씨에게 먼저 지난번에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진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녀의 입꼬리에 살짝 미소가 묻어나는 듯하더니, 지난번 부부 성생활을 묻는 질문에 들통 난 느낌이 들어 당황스러웠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 뒤 얘기는 막힘없이 술술 흘러나왔다.



성관계 후 성경 읽는 아내

“한 번도 성생활이 만족스러운 적이 없었어요. 어쩌다 남편 요구에 따라 관계를 가지면 마음이 무겁고 죄지은 것 같아서 성경을 앞에 놓고 묵상기도를 해야지만 잠이 들 수 있었어요.”

이씨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골의 작은 개척교회 목회자였다. 3남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이씨는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꼭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해놓고 그것에 관한 한 매우 엄했다. 이씨는 대학생 시절 저녁 8시까지 귀가해야 했고, 화장도 못했으며, 항상 단정하게 옷을 입어야 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몸가짐이 흐트러져서는 안 되며, 특히 순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때문에 이씨는 연애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다들 결혼한 뒤에야 중매결혼을 했다. 이씨는 신혼 첫날밤을 이렇게 회상했다.

“전, 전,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무섭고 더럽혀지는 것 같아 신랑에게 울면서 사정했어요. 오늘 밤은 그냥 손만 잡고 자자고요. 신랑으로서는 기가 막혔겠지만, 한편으론 제가 순결한 처녀임을 흡족하게 여기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신혼여행 일주일 내내 손만 잡고 잤어요. 신랑이 참 착한 사람이에요. 안 그랬으면 저는 소박맞았을지도 몰라요.”

상담을 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여성이 이씨처럼 성관계에 대해 죄의식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죄의식은 성생활에 대한 무관심이나 혐오로 이어진다. 그들은 주로 부모나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순결 이데올로기에 빠져 불필요한 죄책감을 갖는다. 그리고 마치 섹스 자체가 불결하고 부정적인 것인 양 자신의 정신을 왜곡한다. 왜곡된 성의식은 부부 성생활을 부정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많은 경우 자녀에게 대물림된다.

이씨도 대학 시절을 거치며 자신의 성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강이 흘렀고, 성에 대한 정신적 억압은 의식적으로 배운 성교육과 충돌했다. 특히 이씨 경우는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를 배신할 수 없다는 이중의 무게로 더욱 짓눌렸다.

이씨 경우는 머리로 아는 것과 삶을 일치시키는 일이 상담의 첫째 목표였다. 사람은 흔히 성기를 인격과 분리해 물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씨는 특히 신체 일부가 곧 존재이며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남편과 아내의 성기에 인격적 이름을 붙이는 게 좋겠습니다. 부군 이름이 병철이니, 예를 들어 병철 주니어라고 해도 좋고요. 아니면 전혀 색다른 외국 이름도 좋아요. 리처드나 브루스 같은 거요. 본인의 성기 이름은 남편에게 지어달라고 하세요.”

그때 이씨처럼 놀란 얼굴을 본 적은 몇 번 되지 않는다. 이씨는 한동안 그 요청을 이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상담이 후반에 접어들었을 때 이씨가 환한 미소를 띠고 상담실에 들어섰다. 인사도 하기 전 대뜸 아이의 틱 증상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 얘기를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정말 아이의 틱을 고치고 싶다면 제 요청대로 한번 해보세요.”

오늘 ‘제임스’ ‘앤젤리나’ 잘 있나
이씨는 드디어 큰 용기를 내 남편과 서로의 성기에 이름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쑥스러웠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더라는 얘기도 했다. 남편 것은 제임스 본드를 따서 제임스로, 자기 것은 앤젤리나 졸리를 따서 앤젤리나라고 부르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웃는지 모른다고 했다. 상담이 후반부로 갈수록 이씨는 자주 크게 웃었고, 꽉 채웠던 옷 단추도 느슨하게 풀고 다녔다. 한 번은 가슴골이 살짝 보이는 블라우스를 입고 와서 예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더니, 남편이 선물한 옷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부부관계 후 성경을 읽지 않았어요. 왠지 그날은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롭더라고요. 그래서 남편 팔베개를 하고 잤어요. 그리고 남편이 다음 날 저녁 이 옷을 사온 거예요.”

아이의 틱 장애도 자연스레 치료

그날 봄처녀처럼 수줍게 웃는 이씨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아이의 틱 장애와 부부관계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마지막 상담을 앞두고 근석이의 형 근효(14·가명)가 왔는데 동생과 다르게 적극적인 성격인 근효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이렇게 말했다.

“동생에게 처음 틱 증상이 생길 즈음 제가 근석이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어요. 자식이 자위를 하다 딱 들킨 거죠. ‘야, 고추 큰데. 엄마에게 일러야지, 근석이 자위한데요’ 하고 좀 놀렸어요. 그랬더니 하얗게 질려서는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애걸복걸하는 거예요. 그 뒤로도 몇 번 근석이의 얼굴만 보면 놀렸어요. 엄마가 근석이를 너무 애기 취급하고 근석이만 예뻐하는 것 같아서 얄미웠거든요. 그리고 정말 후회했어요. 저 때문에 근석이에게 틱 증상이 생긴 것 같아서요.”

근석이는 자위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형에게 들켰을 때의 충격과 어머니에게 들킬까 하는 두려움이 틱 장애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씨의 성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어가자 근석이의 틱 장애가 저절로 좋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 상담 때 다시 근석이가 왔다. 나는 자위란 나쁜 것도, 죄짓는 것도 아닌, 누구나 하는 자연스런 일임을 얘기해주고 싶었다.

“근석아, 있지. 누구나 자위를 해. 아빠도 형도 이웃집 누나도. 자위는 나쁜 게 전혀 아니야. 때 되면 밥 먹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누구나 자위할 권리가 있단다. 그래도 휴지는 아껴 써야 해.”

수줍어하던 근석이가 마지막 말에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주간동아 2013.04.15 883호 (p44~45)

마야 최 심리상담가 juspeace3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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