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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의사의 길과 겸손 몰려든 환자들 보며 배웠다”

에티오피아 의료 봉사 체험 피부과 의사 최광현·주혜영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의사의 길과 겸손 몰려든 환자들 보며 배웠다”

“의사의 길과 겸손 몰려든 환자들 보며 배웠다”
피부과 의사인 최광현(34) 씨는 에티오피아에 산다. 군 복무를 대신한 국제협력의사로 3년째 에티오피아 공립병원에서 일한다. 2011년 ‘편안하게’ 군의관 생활을 할 수 있던 그가 에티오피아행을 결심했을 때 가족은 펄쩍 뛰며 반대했다. 캠퍼스 커플로 만난 아내 주혜영(32·피부과 의사) 씨는 몇날 며칠 울며 철없는 남편을 말렸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부부는 결국 갓 돌, 두 돌 지난 아이들을 들쳐 업고 에티오피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들 부부가 최근 책 두 권을 냈다. 한국을 떠날 때부터 하루도 안 빠지고 기록한 일기를 모은 책이다. 제목은 ‘에티오피아 다이어리 : 피부과 의사 부부의 아프리카 3년 살아보기’(좋은땅)와 ‘쌀람! 에티오피아’(지식공감).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발간한 첫 에티오피아 소개서다.

최씨 부부는 시간 날 때마다 에티오피아 전국을 다니며 에티오피아의 모든 것을 기록했다. 책을 출간하려고 2주간 휴가를 받아 귀국한 최씨는 “올해 말 근무를 끝낸 뒤 내게 어떤 변화가 올지 모르지만, 분명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후회 같은 건 없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후회? 내 인생 가장 소중한 기억

▼ 어떻게 국제협력의사에 지원하게 됐나.

“본과 2학년 때 우연히 학교 게시판에 붙은 국제협력의사 모집 포스터를 본 게 계기다. 해외생활에 대한 동경심도 있었고. 그런데 국제협력의사는 전문의 자격증이 있어야 지원 가능하다. 그래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모두 마치고 지원했다.”



▼ 왜 하필 에티오피아였나.

“에티오피아에 올지는 몰랐다. 킬리만자로가 있는 탄자니아에 갈 줄 알았다. 피부과 의사를 뽑지 않아 산부인과로 전공을 바꿔 지원했는데, 에티오피아로 발령이 났다. 이건 운명이다(웃음).”

▼ 가족 반대가 심했다고.

“말도 못한다. 오죽하면 아내가 한국국제협력단에 전화를 걸어 ‘제발 합격을 취소해달라’고 사정했을까. 국제협력의사로 해외에 나가려면 가족 동의서가 필요한데 집사람이 동의서에 사인하기를 거부해 많이 다퉜다.”

▼ 어떻게 설득했나.

“집사람 사인을 도용해 그냥 저질렀다(웃음). 에티오피아에 가서 좋은 논문도 쓰고 사업아이템도 찾자고 꼬였다. 국제기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있을 거라고.”

▼ 논문 쓰고 사업 아이템은 찾았나.

“음… 이 책 두 권 남았다(웃음).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우리는 그걸로 만족한다. 올해 초 먼저 귀국한 아내는 이 책을 내려고 차까지 팔았다(웃음).”

▼ 가족에게 잘해야겠다.

“평생 봉사하는 마음으로….”

최씨 부부가 처음 일한 곳은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에티오피아 북부 도시 메켈레의 한 병원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수도에 있는 아디스아바바 시립병원으로 옮겼다. ‘에티오피아 다이어리’는 메켈레에서의 기록이고, ‘쌀람! 에티오피아’는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의 기록이다. 일기를 모아놓은 형식이지만, 책에는 이들 부부가 겪은 소소한 일상은 물론 에티오피아 역사와 문화, 에티오피아 각 지역을 둘러본 여행기가 사진 수백 장과 함께 실렸다. 의사로서 겪은 크고 작은 애환도 잔잔하게 담았다. 에티오피아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정보도 수두룩하다. 기자는 이 책 두 권을 읽으면서 때로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때로는 마음이 아파 잠시 책을 덮어야 했다.

“환자가 줄을 선다. 평생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했던 사람들. 세 돌 된, 피부염을 가진 아이가 왔다. 이미 입술이 사라졌다. 꾸준히 치료를 하면 병은 멈출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후로 이 아이는 다시는 병원에 가지 못할 것이다.”(‘에티오피아 다이어리’, 2011년 7월 10일)

“‘프라임’이란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사왔다. 정육점 가서 삼겹살 사고 싶으면 배를 두드리고, 목살을 사고 싶으면 목을 두드리면 된다. 그렇게 수신호를 보내면 알아서 준다. 참고로 소고기는 1kg에 80비르, 돼지고기는 1kg에 170비르다.”(‘에티오피아 다이어리’, 2011년 7월 15일. 80비르는 약 4930원이다.)

무조건 기부는 존엄성 훼손 행위

“의사의 길과 겸손 몰려든 환자들 보며 배웠다”
“베타 마리암 능에 행려병자와 노숙인이 바글바글하다. 죽을 날이 왔다고 생각해 몰려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죽으면 교회에선 조촐하나마 시신을 거둬준다. 옷을 다 벗고 똥오줌으로 범벅된 사람이 누워 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의사인 나는 뭘 하나 싶은 자괴감이 든다. 환자 다루는 법을 10년 넘게 배웠지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쌀람! 에티오피아’, 2012년 10월 28일)

“아침에 가보니 진료실 내 책상을 누가 가져갔다. 간호사 피카두에게 얘기하니 30분 후 다시 찾아왔다. 다른 진료실에서 필요해 가져갔다고 한다. 황당한 일이다. 병원 입구에 결혼중개업소의 광고가 붙었다. 흥미로운 건 에이즈 감염자에겐 같은 감염자를 찾아준다는 점이다. 원하면 결혼한 유부녀도 이혼시킨 후 데려다준다고 적혀 있다.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씁쓸한 현실이다.”(‘에티오피아 다이어리’, 2012년 9월 20일)

▼ 지난 3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무래도 환자다. 한센병에 걸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찾아온 10대 소녀,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병 때문에 죽어간 두 살 어린이도 있었다. 이런 환자들을 만나면서 의사의 길을 생각했고 겸손을 배웠다.”

에티오피아의 에이즈 감염자 비율은 5~9% 정도다. 그러나 에이즈보다 더 심각한 건 결핵이나 한센병이다. 영아 사망률도 30%가 넘는다. 치료약은 부족하고 비싸다. 최씨는 “평생 병원에 가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태반이다. 6개월 정도만 꾸준히 약을 먹으면 나을 수 있는 간단한 병 때문에 죽어가는 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 생활은 어렵지 않은가.

“편한 게 없다(웃음). 그 덕에 기술이 많이 늘었다. 간단한 집수리는 물론이고 전자제품과 자동차 수리도 어지간한 건 이제 혼자 한다. 흥정도 잘하고….”

▼ 에티오피아에 살면서 느낀 점은.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에 대해 느껴온 내 오만과 편견이 사라졌다. 후진국 사람은 게으르다는 식의 편견 말이다. 기부, 봉사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뭔가를 갖다 주는 일이 그들을 돕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섣부른 기부가 그 나라 산업기반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기부한 신발 때문에 그 나라 신발회사가 문을 닫고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무조건적 기부는 그 나라 국민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한다.”

▼ 그러면 어떻게 돕는 게 좋을까.

“나는 에티오피아 물건을 많이 사고, 그곳을 많이 찾아가는 게 돕는 길이라고 얘기한다. 에티오피아는 나일 강이 시작하는 곳으로, 수많은 산과 호수를 가진 아름다운 고원(高原)의 나라다. 또한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아 전통문화를 잘 지켰다. 한 번쯤 가볼 만하다.”



주간동아 2013.04.15 883호 (p40~41)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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