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6

2013.02.25

‘문화’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문화 재정 2%로 확대·문화기본법 등 예술인 복지가 1차 과제

  • 이광형 국민일보 문화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

    입력2013-02-22 1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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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는 넓고 할 일은 많다

    1월 16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뽀로로 극장판슈퍼썰매 대모험’ VIP 시사회에 참석해 어린이들에게 꽃다발을 받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다양한 문화·예술 정책이 도입됐다. 문학, 미술, 음악, 공연, 출판, 영화, 방송 등 각 분야 기반시설이 마련되고 대통령도 문화현장을 자주 찾는 편이었다. 서예 실력이 뛰어난 박 전 대통령은 전통예술 분야에도 많은 애정을 쏟았다. 박 전 대통령의 휘호가 미술품 경매에 단골 메뉴로 나오는 것도 그의 예술적 감수성이 높았다는 점을 방증한다.

    원로 문화·예술인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지금도 추억하는 사람이 많다. 극장이나 전시장을 격의 없이 찾아 격려하던 그의 모습을 잊지 못하는 문화인도 더러 있다. 후임 대통령들은 말로만 ‘문화 대통령’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문화를 즐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가. 부전여전(父傳女傳)이라는 말이 있는 만큼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선거(대선) 기간에 내놓은 문화공약에 현실적인 내용이 별로 없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의 주변에 문화·예술 관련 공약이나 문화 정책을 전반적으로 조율하는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 명예교수인 일랑(一浪) 이종상 화백이 5만 원권 지폐에 신사임당 초상화를 그렸을 때 다소 논란이 있었다. 머리를 올린 신사임당 모습이 “주모(酒母) 같다”느니 “기생처럼 보인다”느니 뒷말이 무성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육영수 같다” “박근혜를 닮았다”는 얘기가 사람들의 입을 타고 확산됐다. 이 화백은 이에 대해 “‘박근혜 같다’는 얘기는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현모양처인 신사임당에 비유한 것”이라며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로서, 그림을 사랑한 예술가로서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하지 않은 신사임당을 박 대통령이 본받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화에 관심 없는 편?



    하지만 평소 박 대통령 행보를 보면 지나치게 정치적이며,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편이라고 한다. 그의 문화공약 가운데 대표적인 내용이 2017년까지 문화 재정 2%를 달성하는 것이다. 정부 재정 대비 문화 재정 비율은 2012년 기준 1.14%(3조7194억 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9%)에 크게 못 미친다. 1999년 1% 달성 후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1% 안팎에서 정체된 실정이다. 이에 박 대통령은 대선 때 문화 재정을 2%로 확대해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와 문화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콘텐츠 및 관광산업 육성, 전통문화의 보존과 활용 등 문화강국 실현을 위해 재정을 확충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또 문화·예술, 영화, 관광, 콘텐츠산업, 문화재 문화예산기금을 확대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문제는 돈이다. 문화재청 예산을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 예산에 편입시켜 ‘2%’를 달성한다는 복안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그럴 경우 ‘쌈짓돈이 주머닛돈’이라는 속담이 재현되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공약은 ‘문화기본법’ 제정 등 문화 기반 조성과 관련한 것들이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모든 국민이 문화를 누릴 수 있는 문화기본권을 보장하려고 ‘문화예술진흥법’에서 ‘문화기본법’을 분리하겠다고 밝혔다. 문화복지 전문 인력을 양성해 시도 및 시·군·구 등 문화 소외 지역에 배치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이는 법 제·개정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박근혜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또 다른 분야는 장애인 문화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사회·문화 활동 수준은 비장애인에 비해 매우 낮고 취약하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장애인 문화·예술 창작아트페어를 개최하고, 문화·예술 강사를 장애인 시설에 파견하며,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한편, 문화예술센터에 장애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시설 개·보수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보조금관리법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며, 단계적으로 예산을 확보하는 일도 급선무다. 이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정부’를 표방한 박근혜 정부 공약 실천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현안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실현하려면 장애인의 문화 활동에 대한 실태 파악이 먼저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정책만 개발한다면 탁상공론이 될 것이 뻔하다.

    현재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됐으나 실효성 있는 복지 도입은 미흡하다. 예술인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창작단체 등에 대한 세제 혜택은 물론이고, 기업의 문화·예술 기부를 늘릴 필요가 있다. 예술인 창업 및 취업 지원 프로그램 운영을 확대하고, 공연·영상 분야 스태프 처우 개선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시·도립 문화예술단체 최저임금 보장도 마찬가지다.

    행복하게 창작활동 지원 기대

    ‘문화’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대통령 교육문화수석 비서관에 내정된 모철민 인수위 여성 문화분과 간사.

    콘텐츠 원형인 문학, 음악, 무용, 미술 등 순수예술 분야와 영화 등 비주류 예술 분야의 창작활동에 대한 국가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새 정부는 순수 기초예술 분야 창작지원 강화, 우수 학술서와 교양 도서 선정 및 구입 지원 확대, 전자책 제작 강화, 독립·예술·다양성 영화 제작 지원 및 전용관 확대, 인디밴드 및 뮤지션 창작지원 강화 같은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아동·청소년·가족용 영상콘텐츠 제작 지원 확대, 5대 글로벌 킬러콘텐츠(게임, 음악, 캐릭터, 영화, 뮤지컬) 집중 육성, 문화기술(CT) 연구개발(R·D) 예산 확대 등을 강조한다. 문제는 단계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역설할 뿐 구체적인 계획이 결여됐다는 점이다. 과거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의 ‘재탕 삼탕’식이고 ‘장밋빛 전망’에 불과하다는 여론도 없지 않다.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같은 문화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 권역별 체류형 의료·문화관광 클러스터 조성, 문화 콘텐츠와 접목한 노후시설 재생사업 추진, 문화도시 및 문화마을 선정 및 지원, 문예회관 기획공연 지원 강화, 문예진흥기금의 지역 문화·예술 지원 확대, 국공립 문화시설 공연 및 전시 ‘지역 순회제’ 강화 등 지방문화 공약도 이전에 많이 듣던 내용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을 이끌 양대 수장이 내정됐다. 유진룡 문화부 장관 후보자와 모철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내정자다. 2006년 문화부 차관에서 경질된 후 7년 만에 화려하게 컴백한 유진룡 장관 후보자나 20년 넘게 문화부에서 잔뼈가 굵은 모철민 수석 내정자 모두 정통 관료 출신으로, 문화행정에 밝은 만큼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문화·예술인 실태를 보면 열악하기 그지없다. 문화부가 최근 발표한 ‘2012년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개인 창작활동으로 월 1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문화·예술인이 66.5%이고, 수입이 전혀 없는 예술인도 26.2%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는 문화 정책은 문화·예술인이 이런 현실을 딛고 행복하게 창작활동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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