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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초일류기업 여(女)팀장 열전

“시골 유학생처럼 뜨겁게 후회 없이 산다”

포스코 원료구매실 제강원료구매그룹 이유경 리더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시골 유학생처럼 뜨겁게 후회 없이 산다”

“시골 유학생처럼 뜨겁게 후회 없이 산다”


“조직 구성원들과 관계가 좋고, 근무시간 동안 알차게 일하는 바람직한 리더입니다. 유연한 리더십을 대표하는 분이죠.”

포스코 박성은 인재혁신실 글로벌HR그룹 팀리더는 포스코를 대표하는 여성 팀장으로 이유경 제강원료구매그룹 리더(45·부장급·팀장)를 추천했다. 그는 포스코 공채 출신 첫 여성 팀장으로 1990년 여성 공채 1기로 입사했다. 수출부서에서 동남아 냉연수출과 수출계획을 담당하고 구매부서에서는 외자관리과, 선강설비계약과, 압연설비계약과에서 일했다. 뒤이어 설비매각팀 리더, 비철팀 리더, 합금철팀 리더를 거쳐 올해 철원류팀과 합금팀, 비철팀을 관할하는 제강원료구매그룹 리더가 됐다.

직접 만나본 이유경 리더는 아담한 체구와 가녀린 목소리 때문에 코스모스를 연상하게 했다. 하지만 그는 보기와 달리 2남 2녀를 둔 다산의 여왕이었고, 그만큼 다부졌다.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1년 동안 외국계 기업에 근무했는데, 국내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포스코 공채에 응시했다고 한다. “능력 있는 여성을 차별하지 않고 키워주겠다”는 포스코 공채 캐치프레이즈에 꽂혔기 때문이다. 한 사립고 교사 채용 최종면접에서 자신보다 분명 능력이 부족한 남성이 합격한 것을 본 터라 문구의 의미가 절실히 다가왔다.

“우리나라 기업에 입사하니까 가슴이 벅찼어요. 내가 가고자 한 세계에 간 느낌이랄까요. 전에 있던 회사에서는 한국인이 핵심 관리직에 오른 경우가 없었거든요. 대학 때 뚜렷한 꿈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길이 열리니 신날 수밖에요.”



맨 처음 그가 맡은 일은 동남아 수출 담당. 영어 실력은 부족했지만 전화로 동남아 현지 바이어들과 열정적으로 통화하며 성과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회의 차 포스코에 방문하자 선임은 그에게 회의 주도권을 주지 않고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저를 총괄 매니저로 여긴 바이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뭐라고 생각했겠어요. 정말 황망하더라고요. 그래서 선임한테 커피 심부름은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담당 바이어가 방문할 때는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건의했죠. 이후 그렇게 개선됐고, 나중에는 회의실에 커피포트를 비치해 원하는 사람이 가져다 마시게 됐어요. 대졸 여직원을 처음 채용한 회사도, 우리(대졸 여성 공채 1기 49명)도 어설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조율됐죠.”

넷째 임신하며 퇴사 고려

그는 입사 이듬해 결혼해 첫애를 낳고, 연년생으로 둘째와 5년 터울로 셋째를 출산했다. 다행히 시어머니와 육아 도우미의 도움으로 육아는 한시름 놨다. 문제는 셋째를 출산한 지 5년이 지나 생각지도 않은 넷째를 임신하면서 불거졌다.

“그때가 회사 다니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부끄러워서 회사에 다닐 수 없더라고요. 동료들이 저를 보고 ‘대체 회사에서 일하려는 의지가 있나’ 생각할까 봐 그만두고 싶었어요. 남들은 대학원도 다니고 자격증도 따는데 저는 제 업무 소화하는 것도 벅찼으니까요. 게다가 임신하곤 식사를 거의 못했기 때문에 심신이 지쳤어요.”

다행히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직속상관이 그에게 “조직에 당신이 없으면 안 된다”고 격려하며 “어려운 시기는 금방 지나니 휴직하라”고 권한 것이다. 결국 그는 넷째를 낳고 8개월 동안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전업주부의 삶을 살았어요. 그동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열망 같은 게 있었거든요. 아이들 뒷바라지하면서 열정적으로 살자 싶었죠. 그런데 1~2개월 게을리 살다 보니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기관리를 못하는 나란 사람은 회사라는 틀 안에서 관리받는 게 낫겠다 싶었죠.”

복직한 그는 신생 부서인 설비매각팀 리더가 돼 열정적으로 일했다. 공채 출신 첫 여성 팀장이란 자리는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여팀장이 되니 여러모로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팀원들에게 함께 성장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신생팀이라 업무 방식을 만들어내고 성과를 내야 하니 일도 두 배가 됐죠. 업무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사원은 주어진 업무만 잘하면 되는데, 팀장은 팀 성과를 내고, 조직원에게 동기부여도 잘해야 하니까요.”

그가 선택한 방식은 맞춤형 리더십. 팀원 성격에 맞춰 강한 사람에게는 유하게, 유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대했다. 또한 유약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려고 가끔씩 단호하게 행동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기본 태도’. 업무 시간에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지각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다. 사소한 업무 태도가 전체 업무 실적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팀원에게 기억에 오래 남는 상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후배들이 ‘그 상사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있구나’ 느끼도록 당근과 채찍을 함께 쓰는 것도 그래서다.

농부 딸로 고군분투

“후배들에게 전임자보다 조금이라도 잘해보라고 말해요. 저만 해도 다른 사람이 세 개를 하면 한두 개라도 더 하려고 하죠. 한 예로 복직 후 비중이 작은 페로니오븀(FeNb·합금철의 한 종류) 구매 업무를 맡았을 때 의기소침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조건으로 구매할지를 생각했죠. 그러다 결제 수단을 엔으로 하는 관행을 따르지 않고 달러로 대체해 5억 원을 절감할 수 있었죠. 엔 가치가 점점 오르고 달러는 떨어지고 있었거든요. 이 같은 작은 노력이 더해져 구매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었어요.”

회사에 다니며 별다른 자기개발을 하지 못한 그가 택한 방법은 지하철 타는 시간 잘 활용하기다. 회사에서 집까지 가는 40분 동안 경영서를 읽고, 단 10분이라도 CNN을 들으며 영어 감을 놓지 않았다. 회사는 우수인재 육성차원에서 그에게 MBA 과정을 지원했다. 1년 동안 학비와 월급을 받으며 이화여대 MBA를 마친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책을 펼친다.

이유경 리더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까. 그는 빙긋 웃으며 “시골 유학생 마음으로 산다”고 답했다. 농사꾼 집안에서 7남매 중 셋째(장녀)로 태어나 일찌감치 살아남는 기술을 체득했다는 얘기다.

“전남 진도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전교 1등이었는데, 광주로 유학 오니까 성적이 곤두박질쳤어요. 처음으로 위기를 느꼈죠. 하지만 이를 악물고 공부해 1년 만에 전교 5등이 됐어요.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문화 충격을 받았죠. 뛰어난 사람들을 보니까 주눅이 들더라고요. 돌이켜 보면 그 덕에 자만심을 갖지 않고 노력할 수 있었어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하니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주일에 성당에서 미사 드리고 동네 친구들과 차 한잔 마시며 수다 떠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데, 친구들이 ‘힘들어도 끝까지 버티라’고 해요. 저도 하는 데까지 해보려고요. 나이 들어서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나 자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웃음).”



주간동아 2012.11.26 864호 (p30~31)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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