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2

2017.06.14

국제

북핵이 불러온 미·중·러 핵 군비경쟁

미국 ICBM 요격 시험 성공으로 핵전력 균형 붕괴 우려에 대응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7-06-09 17: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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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타바버라 카운티의 롬폭 시에서 북서쪽으로 14.8km 떨어진 반덴버그 공군기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최초로 실전배치된 곳이다. 이 기지에선 1957년부터 지금까지 각종 군사용 인공위성과 미사일을 발사해왔다. 미국에선 민간용 우주선 등을 발사하는 플로리다 주 케이프커내버럴에 있는 케네디우주센터는 ‘이스턴 레인지(Eastern Range)’로, 반덴버그 공군기지는 ‘웨스턴 레인지(Western Range)’로 부른다.

    공군 제30우주비행단이 관할하고 있는 이 기지는 약 330km2 규모로 우리나라 대전시 넓이의 75%에 해당한다. 이 기지는 1959년 세계 최초로 극궤도위성 디스커버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는 등 그동안 군사위성과 ICBM 개발에서 중추적 구실을 수행해왔다.

    특히 이 기지의 지하 격납고에는 세계 최강이라는 ICBM 미니트맨II뿐 아니라 미사일방어(MD)체계의 일환인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Ground-Based Interceptor)이 24시간 발사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총알을 총알로 맞히다

    이 기지에선 5월 30일 역사적인 요격 시험이 진행됐다. 당시 국방부 산하 미사일방어청(MDA)은 이곳에서 ICBM의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체를 격추하고자 GBI를 발사했다. MDA가 ICBM을 대상으로 한 시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태평양 마셜군도 부근에서 미국 본토를 향해 날아오는 가상의 ICBM을 요격하는 것이었다. GBI는 태평양 상공 외기권에서 가상의 ICBM을 타격하는 데 성공했다. 제임스 시링 MDA 청장(해군 중장)은 “GBI의 ICBM 요격 시험 성공은 엄청난 성과이자 중대한 이정표”라며 “미국은 어떤 미사일 위협도 당장 격퇴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시링 청장이 이처럼 호언장담한 것은 GBI로 ICBM을 요격하는 것이 “날아가는 총알을 총알로 맞히는 격”이라고 말할 정도로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9년 이후 17차례나 GBI 요격 시험에 나섰지만 이 가운데 9번만 성공했다. 최근 4차례 시험에서는 3번 실패한 끝에 2014년 6월 성공했다. 성공률이 낮은 이유는 그만큼 요격이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하 20 이상 속도로 날아가는 ICBM을 격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까지 제기돼왔다. GBI는 길이 16.8m, 무게 1만2700kg, 최대 고도 2000km인 3단계 로켓과 탄두로 구성된 미사일이다. 

    ICBM 요격 시험 성공은 시링 청장의 말처럼 두 가지 면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ICBM 공격에 대비할 수 있다. 북한은 5월 14일 준(準)ICBM인 KN-17(북한명 화성-12형)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해 미국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미국 국방부와 정보기관들은 KN-17의 최대 사거리가 6700km, 최대 속도는 마하 16∼17일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군사 전문가들은 KN-17이 대기권에 재진입하는 과정에서 전소되지 않았다면서 이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이 상당히 진전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기권 재진입은 ICBM의 핵심 기술로 지금까지 북한이 갖추지 못한 능력이다. 북한이 앞으로 2~3년 내 ICBM을 개발해 실전배치할 경우 미국으로선 안보적으로 엄청난 위협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의 ICBM 요격 시험 성공은 북한에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이자 대북 억제 카드가 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이 앞으로 북한의 보복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군사 행동을 감행할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중국과 러시아의 ICBM 공격을 견제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의 ICBM 요격 시험 성공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유관국이 MD 문제와 관련해 신중히 행동함으로써 전 세계 안전과 지역 안정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미국이 북한보다 자국과 러시아의 핵 반격 능력 약화를 노린 것 아니냐는 경계심에 따른 것이다.

    중국 군사전문가 웨이둥쉬는 “미국이 강력한 핵무기로 상대를 위협할 수 있게 된 것과 동시에 미사일 방패로 상대의 핵전력을 약화시키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시험 성공은 스타워즈의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나 다름없다”며 “핵보유국들이 새로운 군비경쟁을 벌일 개연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탄도미사일 기술전문가이자 양자국방사무 수석과학자인 양청쥔도 “이번 요격 시험 성공은 다른 강대국의 핵전력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공포의 균형 깨지나

    핵 강대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은 ‘상호확증파괴(MAD·Mutual Assured Destruction)’ 전략에 따라 ‘공포의 균형’을 유지해왔다. MAD는 적이 ICBM 등으로 핵공격을 감행할 경우 남아 있는 핵전력으로 상대방을 보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미국의 ICBM 요격 시험 성공은 이런 MAD 전략을 무력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일방적인 전략적 우세를 저지하고자 더욱 효과적인 견제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GBI에 대응해 ICBM의 탄두에 장착할 수 있는 다핵탄두미사일(MIRV·Multiple Independently Targetable Reentry Vehicle)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MIRV는 ICBM이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탄두 여러 개가 각자의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분리탄두를 지칭한다. ICBM에 탑재된 핵탄두 8∼12개가 각각 개별의 목표에 유도되는 장치에 따라 다수의 목표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동북지역에 사거리 1만4000~1만5000km인 DF-41을 실전배치했다. DF-41은 핵탄두에 MIRV 10개를 탑재할 수 있다. 중국은 또 최근 MIRV를 10개까지 탑재할 수 있는 사거리 1만2000~1만5000km의 DF-5C를 시험발사한 바 있다.

    중국보다 ICBM 개발 기술이 우위에 있는 러시아는 최신예 ICBM을 속속 실전배치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올해 말까지 전략미사일군이 운영하는 ICBM 전력 70% 이상을 기동력이 뛰어난 RS-24(나토명 SS-29) 야르스(Yars)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RS-24는 이동식 발사대로 발사할 수 있으며, 사거리가 1만1000km나 된다. 3단계 고체연료로 발사되는 RS-24는 MIRV를 4~10개 탑재할 수 있는데, 각 탄두의 위력은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최고 53배에 달한다. 러시아는 대형 핵탄두 10개, 소형 핵탄두는 15개까지 장착할 수 있는 초대형 차세대 ICBM인 RS-28(나토명 SS-30) 사르마트(Sarmat)를 2018년부터 실전배치할 계획이다. 마하 20 속도로 비행하며 사거리는 1만km에 무게가 100t인 RS-28의 핵탄두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2000배나 크다

    미국도 ICBM 요격 시험 성공을 바탕으로 다중목표요격체(MOKV·Multi-Object Kill Vehicle) 개발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MOKV는 다탄두나 유인용 가짜 탄두(decoy)를 동시에 파괴할 수 있는 요격미사일을 말한다. 미국은 2025년까지 MOKV를 전력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모순(矛盾·창과 방패) 게임’으로 자칫 인류 최후의 날을 상징하는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 분침이 지구의 종말인 자정에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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