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2

2017.06.14

특집| 영화계 지각변동 시작됐다

‘넷플릭스 어페어’ 저항과 봉합 사이

“프랑스와 한국의 넷플릭스 사태는 다르다”

  • 전찬일 영화평론가  ·  조선대 초빙교수 filmtogether@naver.com

    입력2017-06-09 17: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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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의 완승! 제70회 칸영화제(현지시각 5월 17∼28일)를 지나 목하 국내 극장가를 후끈 달구고 있는 이른바 ‘넷플릭스 어페어(Netflix Affair)’를 겪으며 내린 필자의 결론이다. 비즈니스 논리상 명분 대 실리 싸움에서 으레 후자가 전자를 압도해왔고, 향후로도 그럴 터이기에 도달한 판단이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국 2575개 영화 상영관의 93%를 장악하고 있는 국내 3대 멀티플렉스 CGV(39%), 롯데시네마(31%), 메가박스(23%)가 6월 29일 영화 ‘옥자’의 온라인 스트리밍서비스와 극장 개봉을 동시에 진행하겠다는 넷플릭스의 전략적 방침을 끝까지 거부할 수 있을까. 다른 감독도 아닌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대형스크린에서 보고 싶어 애타고 있을, 적잖은 이 땅의 관객에게 크고 작은 실망, 불만 등을 안기면서까지?
       


    넷플랙스, 극장 동시 개봉 진짜로 원할까

    프랑스의 경우는 우리와 판이하다. 영화 영상과 관련해서는 실리보다 명분을 우선시하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나라다. 미국과 무역전쟁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 분야는 결코 양보하지 않으며 지켜냈다. 4개월이란 홀드백(hold back) 기간도 엄격하게 지킨다.

    또한 프랑스 극장협회는 극장주들이 주축이 돼 만든 일종의 ‘노동조합’ 성격을 띤다. 중소극장뿐 아니라 멀티플렉스까지 아우르며 가입 극장 수는 5500여 개, 즉 프랑스 내 극장 대부분이 여기에 포함된다. 1945년 설립돼 70년 넘는 세월 동안 전통을 이어오며 영화계 주요 현안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올해 칸영화제의 넷플릭스 어페어는, 따라서 지독히 프랑스적인 사태였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접근돼야 이번 사태의 의미와 전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이번 넷플릭스 사태가 어떻게 귀결되든 변하지 않는 건 승자가 넷플릭스라는 사실이다. 국내 대표 멀티플렉스들이 명분을 포기할 경우 넷플릭스가 얻을 반사이익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한편 그들이 명분을 고수할 경우에도 볼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여길 적잖은 관객은 넷플릭스 측보다 국내 극장계의 권력집단에 분노의 화살을 날릴 공산이 크다. 한국 서비스 개시 1년 6개월여 동안 가입자 수가 13만 명에 그친 넷플릭스 코리아로서는 가입자 증가의 호기가 아닐 수 없다. 그 증가폭이 폭발적이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프로모션 효과만으로도 그들에겐 만족할 만한 성과일 테니.



    그뿐 아니다. 넷플릭스는 내심 온라인 스트리밍서비스와 극장 동시 개봉이 불발에 그치기를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넷플릭스는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서비스 주력 업체 아닌가. 봉 감독의 간청 등을 수용해 정체성에 반하는 결정을 마지못해 내렸을 법한 그들로서는 극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옥자’가 소수 극장에서만 선보인다면 낭패일 리 없다. 외려 쾌재를 부를 결과일 테다. 이래저래 ‘재주는 봉이 부리고, 욕은 한국 극장들이 먹고, 돈은 넷서방이 벌게 됐다’는 한 매체의 진단은 이번 사태의 핵심을 간파한다.   

    널리 보도됐다시피 보안검색(Security)과 더불어 올 칸영화제를 주도한 것은 넷플릭스 이슈였다. 칸영화제에서 화제의 중심에 서기 전까지만 해도 넷플릭스는 우리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 등 드라마가 인기를 끌며 가입자 수가 늘자 영향력이 한층 더 커졌고, 이 와중에 ‘마르코 폴로’ 시리즈에 약 100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지만(이하 나무위키 참고), 그건 어디까지나 미국 등 저들의 사정이었다.

    그럼에도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은 넷플릭스의 행보 및 존재감은 세계 영화산업 및 문화 지형도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해왔음이 분명하다. 그 영향력은 향후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넷플릭스 어페어는 그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어찌 보면 예정된 사태다.



    영화계 주도권 싸움, 역사적 과도기일 뿐

    이쯤에서 넷플릭스의 연혁을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넷플릭스는 ‘온라인 영화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997년 설립됐다.

    98년에는 ‘최초의 DVD 대여 및 판매 사이트인 netflix.com을 시작’했다. 99년에는 ‘저렴한 단일 월별 요금으로 DVD 대여를 무제한 제공하는 이용 가입 서비스’를 선보였으며, 2000년에는 ‘모든 넷플릭스 회원의 시청 취향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 넷플릭스 회원 등급을 이용한 영화 추천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다 2007년 가입자들이 개인용컴퓨터(PC)로 TV 프로그램과 영화를 바로 볼 수 있게끔 하면서, 사업의 무게중심을 스트리밍서비스로 전격 이동했다. 이후 10년의 세월을 거치며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서비스 업체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는 물론 영화까지 자체 제작하기 시작한 바, 영화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봉준호 감독의 5000만 달러(약 560억 원)짜리 ‘옥자’인 것이다. 

    넷플릭스 어페어 사태는 과거 영화 대 TV, 영화 대 비디오테이프, 영화 대 DVD의 긴장, 갈등, 분쟁 등과 맥을 같이한다. 그때마다 영화는 위기를 맞는 듯했으나 생존했고, 외려 더 번창했다. 싸워 이기거나 공존 · 공생 등을 통해서였다. 극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가 ‘유료 대중 영사’라는 전통적 개념에서 벗어나 PC, 스마트폰 등을 통한 개인 관람으로 개념이 확장됐음에도 극장은 예상과 달리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멀티플렉스 및 광역 개봉 전략 등을 통해서였다. 미국을 위시해 중국, 인도, 멕시코, 프랑스 등 세계에서 스크린 수가 가장 많은 5개국의 2012년부터 5년간 평균 스크린 수 증가율을 보면 각각 2.4%, 33.1%, 3.9%, 3.8%, 1.5%였다. 지난해 기준 상기 5개국의 스크린 수는 4만3531개, 4만1179개, 약 1만1500개, 6225개, 5842개다.

    넷플릭스를 위시해 훌루(Hulu), 아마존 인스턴트 비디오 등 세계 굴지의 스트리밍서비스 기업들과 기존 극장들은 결국 공생의 길을 모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극장 이용객과 스트리밍 이용객은 일정 부분 겹치겠지만, 상당 정도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영화 체험은 개인적인 것인 동시에 집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크고 작은 충돌을 거치며 나아가기 마련이다. 최근 넷플릭스 어페어 사태 또한 그 역사의 소중한 일부로 간주되고 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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