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2

2017.06.14

특집| 영화계 지각변동 시작됐다

영화 ‘옥자’가 던지는 새로운 화두

오프라인 극장 vs 온라인 스트리밍, 공존 가능할까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6-09 17: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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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영화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세계적 스트리밍 서비스업체 ‘넷플릭스’가 제작한 오리지널 영화 ‘옥자’의 극장 상영 여부다. 넷플릭스가 제작비 560억 원을 투자해 만든 ‘옥자’는 봉준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강원도 산골의 한 소녀가 옥자라는 이름의 거대 돼지를 구하러 떠나는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턴, 제이크 질런홀과 한국의 안서현, 변희봉 등이 출연한다.

    많은 팬의 기대에 부응하듯 ‘옥자’는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 가운데 최초로 칸영화제에 입성하는 쾌거를 거뒀다. 이로써 봉 감독의 위상 또한 한 단계 높아졌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전통적 영화제작사가 아닌 온라인 스트리밍서비스 업체라는 점 때문에 ‘옥자’의 칸영화제 진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프랑스 극장협회 등은 “극장 상영을 하지 않는 영화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할 수 없다”며 넷플릭스의 유통 방식을 문제 삼았다. 이에 칸영화제 측은 ‘옥자’를 경쟁부문 후보로 내세웠음에도 “어떤 영화든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려면 프랑스 극장에서 상영을 약속해야 한다”는 새로운 규칙을 공표했다. 내년부터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는 영화는 칸영화제에 참가할 수 없다.

    이렇게 ‘옥자’는 칸영화제 내내 ‘전통 대 변화’를 상징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국내 개봉(6월 29일)을 앞두고는 온라인 대 대형멀티플렉스의 싸움으로 논란이 증폭되는 모습이다. 원래 넷플릭스는 온라인 스트리밍으로만 작품을 공개하지만 봉 감독의 특별 요청에 따라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 극장 개봉도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한국 극장 배급은 NEW가 맡았다.

    5월 중순 넷플릭스 측이 ‘옥자’를 국내 극장과 넷플릭스 사이트에서 동시 개봉하겠다고 밝히자 CGV 등 국내 대형멀티플렉스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CGV 측은 “온라인 스트리밍서비스와 극장 개봉을 동시에 한다는 건 영화 생태계를 교란하는 행위”라며 “넷플릭스가 계획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도 ‘옥자’를 상영하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지켜오던 ‘선(先)극장-후(後)온라인’ 서비스 원칙이 깨지는 데 대한 반발인 것이다.





    “넷플릭스, 영화계 생태계 교란”

    그동안 개봉작은 극장에서 2~3주가량 먼저 상영되고 그 후 IPTV(인터넷 프로토콜을 이용한 TV)나 케이블TV 등 부가 플랫폼에서 유통됐다. IPTV의 등장으로 ‘홀드백’(hold back·한 작품을 극장에서 개봉한 뒤 다른 플랫폼에서 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거나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개봉하면 극장 측은 더욱 관객이 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CGV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극장에 자신들의 작품을 걸기로 결정했다면 업계 관행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CGV 역시 그 룰을 깨면서까지 작품을 상영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멀티플렉스인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업계 1위인 CGV의 동향을 보고 갈 길을 정하겠다는 태도다.

    한편 서울극장이나 대한극장 같은 중소멀티플렉스나 단일 개봉관은 ‘옥자’ 상영을 반기는 눈치다. ‘옥자’의 국내 첫 언론시사회도 6월 12일 대한극장에서 진행된다. 상업영화는 대부분 CGV 같은 대형멀티플렉스에서 시사회를 진행하지만 극장 상영 자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옥자’는 결국 대한극장을 택했다.

    ‘옥자’ 홍보를 맡고 있는 퍼스트룩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를 충무로 부흥기를 이끌었던, 한국 영화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대한극장에서 처음 공개함으로써 전통과 변화는 상호 공존한다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홍보사 측의 의미 부여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전체 영화 상영관의 91%를 차지하는 대형멀티플렉스의 ‘보이콧’ 덕에 나머지 9%에 해당하는 대한극장 측에 시사회 기회가 돌아간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옥자’ 상영 논란은 그동안 대기업 체인 영화관의 독과점 문제를 재조명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래전부터 CGV 등 대형멀티플렉스는 ‘스크린 몰아주기’ 등으로 영화계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5월 31일 개봉한 영화 ‘대립군’ 역시 비슷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6월 6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대립군’은 박스오피스 5위다. 개봉 후 ‘원더우먼’ ‘캐리비안의 해적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등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착실히 관객몰이를 해왔지만 6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미이라’ 개봉과 동시에 영화관 입성 1주일 만에 상영관 수가 대폭 줄었다. 이에 정윤철 ‘대립군’ 감독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다양한 영화를 골라 볼 관객의 권리는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자본 폭력을 잊지 않겠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실제로 CGV 강남점의 상영시간표를 보면 7일 ‘미이라’는 총 27번 상영하지만 ‘대립군’은 딱 3번만 잡혀 있다. 그것도 오전 7시 55분, 11시 45분, 밤 25시 25분 등 ‘외진’ 시간대다.

    국내 영화산업은 제작과 배급, 마케팅 등 생산에서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CJ와 롯데는 각각 CJ CGV와 롯데시네마라는 대형멀티플렉스를 갖추고 있다. 영화배급사는 마케팅을 포함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거나 TV에 방영될 때까지 유통 전반을 담당하는데, 대형멀티플렉스를 가진 배급사는 상당수 상영관을 확보해 단기간 내 많은 관객을 확보할 수 있다. ‘대립군’도 그동안 한국 시장에 여러 편의 영화를 선보인 20세기폭스가 제작과 배급을 맡았지만 대형멀티플렉스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대형멀티플렉스, ‘옥자’ 거부할 권리 있나

    또한 대형멀티플렉스 측이 주장하는 홀드백 시스템에 대한 정의도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일부 수입 영화는 IPTV로 동시에 서비스되기도 했고, 한국 영화 역시 극장 흥행에 실패한 경우 IPTV 공개 시점을 앞당기는 방식으로 수익 보전을 위해 애써왔다.

    심지어 성인영화나 B급 영화는 극장에 하루만 걸리고 바로 스트리밍서비스 채널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계 한 인사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대형멀티플렉스 측은 “규모가 큰 상업영화와 저예산 혹은 성인영화는 애초 기획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반박한다.

    넷플릭스는 여전히 극장과 넷플릭스 사이트 동시 개봉을 고수하고 있다. 넷플릭스 코리아 홍보 담당자는 “넷플릭스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온라인 스트리밍서비스고, 2015년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Beasts of No Nation)’이 미국 일부 극장에서 동시 상영된 바 있다. 영화 개봉 전까지 극장과 협의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봉 감독 역시 칸영화제 기자회견장에서 극장 개봉 논란과 관련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극장 상영과 스트리밍서비스는 결국 공존하리라 본다. 넷플릭스의 역사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지금은 어떻게 공존하는 게 가장 아름다운 방식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영화관에 갈 수도 있고 블루레이 디스크나 DVD, 넷플릭스, IPTV, 인터넷 합법 다운로드 등 유통채널은 점점 늘어난다. 이런 과정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일 뿐,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처음 한국에 상륙한 넷플릭스는 현재 한국 가입자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애플리케이션) 분석업체 와이즈앱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13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유료 동영상서비스 가운데 가입자가 가장 많은 ‘옥수수’(SK브로드밴드)가 950여 만 명, 지상파 콘텐츠 연합 서비스 ‘푹’이 130여 만 명, CJ E&M ‘티빙’이 60만 명을 보유한 것에 비하면 넷플릭스의 한국 성적은 초라한 편이다. 그 대표적 이유로 한국 콘텐츠 부족과 경쟁 서비스들 대비 비싼 요금이 꼽힌다.

    하지만 ‘옥자’가 칸영화제에 초청됐다는 사실만으로 넷플릭스는 상당한 홍보 효과를 거뒀다. 넷플릭스 자체 제작 드라마인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가 대성공을 거둔 것처럼 ‘옥자’는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영화를 대표하는 ‘킬러 콘텐츠’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또한 넷플릭스는 한국시장을 겨냥한 콘텐츠를 잇따라 선보일 예정이다. 영화 ‘터널’의 김성훈 감독과 케이블TV채널 tvN 드라마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가 만드는 8부작 드라마 ‘킹덤’, 그리고 천계영 작가의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를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넷플릭스는 새로 진출한 모든 국가에서 최소 3년 안에 수익을 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에 맞서 국내 업체들도 서비스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마녀를 부탁해’ 등 옥수수 독점 콘텐츠 10편을 선보인 SK브로드밴드는 올해 자체 제작 규모를 20여 편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LG유플러스는 원래 5000원이던 U+비디오포털의 월 요금을 3000원으로 낮췄고, 티빙은 tvN·엠넷·온스타일 등 CJ E&M 자사 채널의 실시간 방송을 1월부터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번 ‘옥자’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넷플릭스의 행보는 동종 업계뿐 아니라 영상 콘텐츠를 생산·유통하는 모든 업계에 상당한 위기감을 안겨주고 있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현재까지는 전통적 영화 상영 매체인 극장이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손안의 스크린, 즉 모바일을 통해 영상 대부분을 섭렵하는 요즘 전통 고수만이 살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도 “온라인 스트리밍 시대는 이미 현실을 넘어 미래로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콘텐츠를 생산하는 감독 처지에서는 넷플릭스처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그것도 전 세계에 동시에 개봉되는 온라인 시스템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심 영화평론가는 영화제작사만 영화를 만든다는 편견도 곧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극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온라인게임 업체가 영화를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미 영화 못지않은 최첨단 영상과 완벽한 스토리텔링을 구현하고 있지 않나. 영화의 모든 우선권이 제작사 혹은 극장에 있다는 생각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이러한 전망이 오프라인 극장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영화 전문가는 대부분 “영화관은 대형스크린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존력을 가졌다”고 말한다. 김성철 교수는 “매체 역사상 그 어떤 것도 소멸된 바 없다. 공존할 뿐이다. 극장이 주는 효용성은 시대가 어떻게 변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극장에 간다’는 건 단순히 영화를 보러 가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여가와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행위인 만큼 결코 극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극장들은 아이맥스, 4D, 스크린X 등 다양한 기술이 가미된 스크린을 도입해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극장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체험으로 온라인 스트리밍과 차별화를 꾀하는 것.

    아이맥스 영화는 촬영 단계에서부터 일반 35mm 필름이 아닌 70mm 대형 필름을 사용한다. 관객은 30~45도 각도의 층계식 좌석에 앉는데, 화면 크기가 압도적이어서 마치 화면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평면인 영화 스크린에 특수안경으로 공간감을 더한 3D 영화도 꾸준히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여기서 더 진화한 형태가 4D이다. 물, 바람, 안개, 버블, 향기 등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환경 효과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션체어’가 결합된 형태다. 또한 최근 가장 주목받는 관람관은 스크린X. 2013년 CGV와 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공동개발에 성공한 다면상영시스템이다. 기존 정면스크린에 좌우측 벽면 스크린까지 더해져 3면 270도로 영상이 펼쳐져 입체감과 몰입도가 높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파워풀한 콘텐츠를 확보하느냐다. 결국 대중은 화면 크기와 별개로 짜임새 있고 감동적인 스토리에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선규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는 “플랫폼이 오프라인이냐, 온라인이냐보다 어떤 콘텐츠를 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소프트웨어, 콘텐츠 개발자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결국 흥행의 키는 작품 자체가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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