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2

2017.06.14

안보

“北·中 관계 갈수록 악화”

베스타 美 하버드대 교수, 中 지도층 “강대국의 길을 북한이 방해” 여겨

  • 조종엽 동아일보 기자 jjj@donga.com

    입력2017-06-09 17: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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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4일 북한이 KN-17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시험발사했다. 이날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9개국 정상과 130여 개국의 고위 인사를 베이징(北京)으로 초청해 ‘일대일로(一帶一路 ·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개막한 ‘잔칫날’이었다. 중국 외교부는 긴급 성명을 내고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발사 관련 움직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반대한다는 원론적이고 의례적인 성명이었을까.

    오드 아르네 베스타(Odd Arne Westad·영어식 발음은 오드 안 웨스타드)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사진)가 최근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주최로 ‘오늘날 중국과 두 개의 한국(China and the Two Koreas Today)’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했다. 그는 최근 일주일간 중국을 방문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외교 전문가들을 만나고 왔다. 베스타 교수는 강연에서 “북한은 중국이 좌시할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며 “몇 달 전과 비교하면 중국 내 분위기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사면초가 북  ·   중 관계

    베스타 교수는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지금처럼 악화된 적은 없으며, 계속 악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 가지 징후가 북한 당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비공개적으로 쓰는 ‘중국은 북한의 적’이라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중국을 대상으로 한 북한 측의 표현이 악화돼 중국 지도부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중국은 부상하는 강대국으로 존중받고 싶어 합니다. 동맹은 서로 존중해야 하는데, 북한은 심지어 중국에 의지하고 있는데도 공개적으로 중국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한 외교 자문가는 ‘만약 북한이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필리핀이나 베트남이 우리를 존중할 것이라고 어떻게 기대하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베스타 교수는 문화혁명 때도 중국과 북한은 서로 모욕적인 언사를 주고받았다며 표현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이라고 했다.

    “베이징에서 만난 여러 관계자는 북한이 중국의 대외정책을 방해하려 한다고 봅니다. 시 주석이 베이징에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진행하는 동안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굉장한 도발입니다. 또 중국이 말레이시아와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김정남을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에서 암살한 점도 그렇죠.”

    그는 중국이 비난 표현은 참을 수 있지만, 강대국을 추구하는 길에 방해가 되는 행동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북한이 세계 골칫거리가 된 것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중국의 지위를 높인 측면도 있다.

    “중국 처지에선 국제적으로 북한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게 이익일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중국의 역할이 중요해지니까요. 그런데 지금 중국 당국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동아시아 국가의 관계 재편이 아니라, 북한과 중국의 관계입니다. 중국 공산당 고위급 사이에서 북한에 대한 회의론이 많아졌습니다.”

    북·중 관계의 이 같은 변화가 한반도 정세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중국이 무엇을 우려하는지 보면 중국과의 협력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중국은 아직까지는 북한 정권의 붕괴를 막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놓쳐서는 안 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중국은 북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데 신경 쓰고 있어요. 이런 상황을 잘 이용하지 못하면 앞으로 더 어려운 문제가 다가올 것입니다. 북한의 핵개발이 더 진전되면서 무시할 수 없게 될 테고,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내부 상황도 어찌될지 모르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베스타 교수는 베이징이 북한의 내부 개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고도 했다.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의미 있는 개혁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났다고 봅니다. 북한 사회의 구조가 너무 쇠퇴해 개혁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거죠. 중국 측은 개혁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북한의 급작스러운 붕괴에 두려움도 갖고 있는 듯이 보여요. 물론 중국은 김정은 체제의 몰락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중국의 이해를 저해하는 것을 멈추기를 원하죠.”

    베스타 교수는 “시진핑 체제와 북한의 관계가 너무 나빠져 중국이 김정은 체제에 개입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드, 한중관계 위협 안 돼”

    그는 당장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주변국들과 대화를 서두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은 6자회담과 비슷한 형태의 대화를 조건 없이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최종적으로는 폐기해야겠지만, 적어도 당면 목적은 즉각적인 동결로 보고 있습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과 관련해 그는 “북핵 문제 등 다른 문제가 안정화되면 양국관계에서 사드의 중요성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 국방을 위해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중국에 피력해야 합니다. 사드는 어떻게 프레임을 잡느냐의 문제입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사드는 한중관계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은 사드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소될 문제라고 판단합니다.”

    그는 “중국 역시 강대국이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아시아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영국은 지난날 이를 해결하는 법을 배웠고,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대국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중국 정부는 한국과 관련된 문제들이 자국의 대외정책 의제에서 이렇게 중요성을 띠게 된 사실이 불만입니다. 내부적으로 한국 통일과 관련된 정책을 아직 갖고 있지 못한 것 같고,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지도 많은 이견이 있어요.”

    그는 미국과 중국의 급속한 관계 개선을 점치기도 했다.

    “‘닉슨 쇼크’를 생각해보세요. 미국의 정책은 예기치 못한 변화가 매우 빠르게 생기기도 합니다. 미·중, 북·미 관계를 잘 지켜보는 게 좋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은 이런 상황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오드 아르네 베스타 교수는… 노르웨이 출신의 미국 하버드대 미국 · 아시아 관계 ST Lee 석좌교수다. 현대 국제관계사 및 동아시아지역 전문가로 런던 정경대 국제사 교수와 국제문제 · 외교 · 전략연구소(IDEAS) 소장을 지냈다. 냉전과 현대중국사에 정통한 학자로, 냉전이 제3세계에 끼친 영향을 새롭게 조명하는 한편 ‘폐쇄된 중국’이라는 통념을 깼다고 평가된다. 저서 ‘글로벌 냉전 : 제3세계 개입과 우리 시대의 형성’은 15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컬럼비아대에서 수여하는 밴크로프트상을 받았다. 근작 ‘잠 못 이루는 제국 : 1750년 이후의 중국과 세계’는 한국어로도 번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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