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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희숙의 미술관

농부의 굵은 땀방울을 생각합니다

추석

농부의 굵은 땀방울을 생각합니다

농부의 굵은 땀방울을 생각합니다

‘추수하는 농부들’, 브뤼헐, 1565년, 나무에 유채, 118×160,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추석이다. 추석은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수고한 농부의 노고가 보답 받는 때다. 결실을 본 오곡백과를 추수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추수는 농부 혼자 하기엔 힘에 부친다. 여러 사람이 품앗이해야 일을 마칠 수 있다.

농부가 모여 함께 추수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피터르 브뤼헐(1525년경~1569)의 ‘추수하는 농부들’이다. 쉬고 있는 농부들 뒤쪽에서는 여인들이 이삭을 줍는다. 왼쪽에는 추수하는 농부 사이로 한 농부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황금 들판을 나오고 있다. 그 뒤로 여인들이 곡물더미를 들고 황금 들녘 사이를 오간다.

황금 들판을 걸어 나오는 농부의 처진 어깨와 발걸음이 노동에 지친 일상을 짐작케 한다. 농부들이 일하는 모습 뒤쪽에 펼쳐진 전원에는 집들이 모여 있고 멀리 항구가 보인다. 집 사이 초록 들판에선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놀고 있다. 들판에 모여 노는 사람은 중산층이다. 추수하는 농부들과 대조를 이루며 경제적 풍요를 암시한다.

이 작품은 브뤼헐의 ‘계절’ 연작 가운데 하나다. 풍경화가로 미술사에 이정표를 세운 브뤼헐의 ‘계절’은 현재 5점만 남았는데, 계절당 작품 2점을 제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요즘 높은 인건비는 도시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문제다. 인건비가 부담스러운 가난한 농부는 추수할 때 일손이 부족해도 사람을 살 수 없다. 그러니 추수는 오로지 가족 몫이다.



가난한 농부의 추수를 그린 작품이 토머스 폴록 안슈츠(1851~1912)의 ‘추수하는 농부와 아들’이다. 숲 속 언덕 위에 있는 경작지에서 아버지는 농기구를 들고, 아들은 풀밭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물을 마신다.

우거진 숲과 한 채밖에 없는 집은 이곳이 오지임을 나타내며,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경작지가 추수 시기임을 말해준다. 농부가 농기구 날을 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숲은 여전히 초록색으로 뒤덮였지만 흰색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청명한 하늘에서 가을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들이 물을 마시는 모습은 초가을 더운 날씨를 반영하는 동시에 어린아이에게 추수는 힘든 노동임을 암시한다.

아들이 쉬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농기구 날을 세우고 있다. 농부에겐 쉴 틈이 없음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배려를 표현한다.

농부의 굵은 땀방울을 생각합니다

(위) ‘추수하는 농부와 아들’, 안슈츠, 1879년, 캔버스에 유채, 61×43, 개인 소장. (아래) ‘이삭 줍는 사람들’, 밀레, 1857년, 캔버스에 유채, 83×111,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이 작품에서 비탈진 경작지는 가난한 농부 가족의 힘든 노동을 더욱 부각한다. 안슈츠는 미국 노동자에게 관심이 많아 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화가로서 성공했다.

곡식 한 알이 여무는 데는 농부의 엄청난 노동이 수반된다. 낱알 하나도 귀하게 여기는 농부를 그린 작품이 장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이삭 줍는 사람들’이다. 추수가 끝난 농장 들판에서 여인 3명이 허리를 굽힌 채 낱알을 줍는다. 뒤에서는 농부들이 추수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곡식을 가득 실어놓은 짐수레와 수확이 끝난 건초 더미가 쌓였다. 그림 오른쪽 말을 탄 사람은 감독관을 나타내며, 건초더미 주변에 있는 농부들은 소작농이다. 높이 쌓인 건초더미가 풍년임을 드러낸다.

농부들과 떨어져 이삭을 줍는 여인들은 건초더미와 전혀 상관이 없다. 여인들은 이 농장에서 일하는 소작농이 아니다. 당시 이삭을 주우려면 농부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농부들이 시의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했다.

여인들이 입은 낡고 뻣뻣한 옷은 가난한 형편을 나타낸다. 밀레는 노동으로 망가진 여인들의 손을 강조하려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청색, 노란색, 빨간색 등 모자 색깔로 여인을 구분했다.

그림 중앙, 여인들의 모습은 고전주의 형식인 ‘삼미신(三美神)’ 구도를 지닌다. 하지만 밀레는 고전에서 느낄 수 있는 귀족적 분위기 대신 노동자의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노동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 작품은 1857년 살롱에 전시되면서 보수층으로부터 ‘누더기를 걸친 허수아비’ ‘빈곤을 관장하는 세 여신’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1848년 프랑스혁명 이후 중산층은 노동자들을 두려워했다. 비평가들은 밀레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농부의 고된 노동을 묘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농촌 출신인 밀레는 농부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작품을 제작했다.

올해처럼 태풍 4개가 잇따라 한반도를 강타하기는 1962년 이후 50년 만이라고 한다. 태풍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농민과 어민은 풍요로운 추석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울 듯하다. 올 추석엔 먹고 놀 궁리만 하지 말고, 태풍 피해를 입은 농어민을 어떻게 도울지 한 번 생각해보자.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주간동아 856호 (p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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