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5

2012.09.17

살려? 죽여? 그것이 문제로다

사형제도

  • 입력2012-09-17 10:2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살려? 죽여? 그것이 문제로다

    ‘제인 그레이의 처형’, 들라로슈, 1833년, 캔버스에 유채, 246×297,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요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칼부림을 하는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아동 대상 성폭행 사건이 잇따르면서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라는 여론이 높다.

    사형제도는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한다는 취지로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됐지만, 범죄자의 생명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현대에 와서는 많은 나라가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사형제도가 있지만, 김대중 정권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잠정적 사형폐지국에 속한다.

    사형은 범죄자의 생명을 어떻게 박탈하느냐에 따라 교수형, 참수형, 총살형으로 나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수형을 시행했지만, 과거 대부분 나라에서는 참수형을 선택했다. 유럽에서는 참수형을 귀족이나 부유층에게만 시행했는데, 죽음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귀족의 참수형을 그린 작품이 폴 들라로슈(1797∼1856)의 ‘제인 그레이의 처형’이다. 영국 왕 에드워드 6세가 죽은 후 제인 그레이가 여왕에 오르지만 9일 만에 폐위되고 가톨릭교도이던 메리 튜더가 여왕이 됐다.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혀 있던 제인은 1554년 참수형에 처해진다.

    가톨릭 사제가 눈을 가린 제인의 팔을 잡고 참수대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참수대 아래에는 짚이 놓였으며, 도끼를 든 사형 집행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제인과 사제를 바라본다. 왼쪽에 있는 시녀들은 충격에 빠져 제인을 바라보지 못한다.



    제인이 입은 순백의 옷은 가톨릭교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그녀의 순결함을 상징한다. 사제와 사형 집행인의 붉은색 옷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사제가 입은 가운의 붉은색 깃과 사형 집행인의 붉은색 바지는 제인의 피를 상징하며, 검은색은 그녀의 죽음을 암시한다. 참수대 앞에 놓인 붉은색으로 물든 짚은 그녀가 흘릴 피를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제인의 손을 잡고 참수대를 가리키는 사제 모습은 분쟁을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종교의 위선을 나타낸다.

    망나니가 죄인의 목을 치는 방식은 프랑스혁명 당시 단두대가 등장하면서 바뀐다. 해부학 교수이자 국민의회 의원이던 조제프 기요탱 박사는 범죄자에게 고통 없이 죽을 권리가 있다며 외과의사 앙투안 루이가 고안한 단두대를 입법화했다. 처음에는 단두대를 설계자 이름을 따 루이종이라고 불렀지만, 기요탱 박사를 못마땅하게 여긴 신문기자가 기요틴(기요탱의 여성형)이라고 칭하면서부터 바뀌었다. 잘 알려진 대로 1793∼1794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해 2만여 명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단두대에서 처형을 기다리는 사람을 그린 작품이 찰스 베나제크(1767~1794)의 ‘단두대로 향하는 루이 16세’다.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20일 단두대에서 처형됐으며, 단두대가 설치된 장소는 파리 튈르리 궁 맞은편 광장이었다.

    살려? 죽여? 그것이 문제로다

    (위) ‘단두대로 향하는 루이 16세’, 베나제크, 1793년, 캔버스에 유채, 41×56, 프랑스 국립 베르사유 궁 소장. (아래) ‘교수대 위의 까치’, 브뤼헐, 1568년, 패널에 유채, 46×50, 다름슈타트 헤센 주립박물관 소장.

    흰색 셔츠를 입은 왕이 한 손으로 계단을 잡고 있다. 계단을 붙잡고 얼굴을 돌리는 모습이 단두대에 올라가고 싶지 않은 루이 16세의 심정을 드러낸다.

    왕 왼쪽에 자리한 고해 신부가 왕과 반대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부는 실제로 왕에게 “하늘로 오르십시오”라고 말했다는데, 화가는 그 말을 표현하려고 신부 손을 하늘로 향하게 그렸다.

    오른쪽에 말을 탄 사람은 혁명대 대장 상테르다. 호송대를 지휘하는 그는 당시 왕의 비명이 들리지 않게 하려고 호송대에게 계속해서 북을 치라고 명했다. 그가 칼을 든 모습은 호송대를 지휘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뒤에 있는 삼색기는 프랑스 혁명군의 깃발이다. 왕에게서 민중에게로 세력이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나제크는 이 작품에서 자신이 왕을 지지하고 있음을 나타내려고 혁명 주체인 민중을 희미하게 묘사했다. 또한 왕을 순교자로 표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흰색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렸다.

    대중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려고 귀족이나 정치사범은 공개적으로 처형했지만, 가난한 범죄자는 비공개 교수형에 처했다.

    가난한 범죄자의 처형 방식을 그린 작품이 피터르 브뤼헐(1525~1569)의 ‘교수대 위의 까치’다. 그림 중앙 나무로 만든 조잡한 교수대 위에 까치가 앉았고 교수대 오른쪽에는 나무로 만든 초라한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그림 왼쪽에 서 있는 두 남자는 교수대 아래서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멀리 교수대를 향해 걸어오는 마을 사람들 행렬이 보인다.

    교수대 아래서 춤추는 모습은 ‘위험을 알지도 두려워하지도 마라’는 속담을 나타내며, 죽음을 개의치 않음을 보여준다. 까치는 수다쟁이나 소문을 내고 다니는 사람을 상징한다.

    브뤼헐은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정치 상황을 표현했는데, 새로운 교리를 설교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교수형을 당하던 시절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어두운 주제를 마을 풍경과 함께 서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하지만 법은 죄인의 경제력에 따라 평등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인 것이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