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5

2012.09.17

“구걸도 비즈니스 中企 CEO가 달라졌어요”

10년간 지식비타민 보낸 이경만 청와대 행정관

  • 김민경 전략기획팀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12-09-17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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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걸도 비즈니스 中企 CEO가 달라졌어요”

    이경만<br>●1965년 경남 하동 출생<br>●부산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br>●1994년 38회 행정고시 합격<br>●부산시청, 공정거래위원회 근무

    만약 당신이 구걸하는 처지라고 가정해보자. 어떤 생각이 들까. 부끄러움? 절망감? 이경만 청와대 행정관은 구걸도 “비즈니스로 생각하라”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구걸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더 많은 돈을 구걸할 수 있을지 연구해보라는 것이다.

    “요즘은 카드를 많이 사용해서 동전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적어요. 불쌍하게 보이려고 바구니에 10원짜리 동전 한 개를 넣어두면 행인은 자신에게 10원짜리 동전이 없다는 생각부터 하죠. 그렇다면 지폐가 보이는 투명한 박스를 사람 손 높이에 맞춰 놓으면 어떨까요? 호소력 있는 적절한 카피도 필요하겠고요. 구걸하는 사람도 세상의 트렌드를 연구한다면 수입이 늘어날 겁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남다른 이 행정관은 공정거래위원회 소속으로 현재 대통령실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행정고시(38회)에 합격해 공직에 들어올 때부터 정보와 경영, 그리고 ‘정보를 통한 전략적 경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때로는 일과 관련해, 때로는 업무와 상관없이 경영에 관한 정보를 모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2002년 부산시청 정보기획담당 계장 시절에 시작한 일이니, 올해 10년이 됐다.

    인터넷 사이트 회원 수 3만여 명

    그는 매일 아침 신문과 잡지에서 뽑은 정보(기사) 2개에 ‘지식비타민’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메일 주소를 아는 이들에게 배달한다. 관료도 있고 기자도 있지만, 대부분 중소기업 경영인이다. 내용은 발췌한 것이지만, 이메일 제목은 그가 붙인다.



    예를 들어 ‘영상 19도에서 얼어죽은 사연’ ‘빈대 같기만 해도’ ‘CEO가 조심해야 할 이혼 사유 7가지’…. 쏟아져 들어오는 이메일 속에서 그가 보내는 지식비타민을 열어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한마디로 ‘낚는’ 솜씨가 탁월하다. 맛도 좋은 약이 몸에도 좋으니 받는 이들이야 고마울 수밖에 없다. 기업경영인 사이에서 지식비타민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자 체계적으로 지식비타민을 보고 경영인끼리 직접 정보도 교환할 수 있도록 인터넷 사이트(www.1234way.com)도 개설했다. 현재 회원 수는 3만7000명이 넘는다.

    ▼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보통 사람이라면 읽고 잊어버리는 기사를 재정리해 ‘지식비타민’으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요.

    “제가 젊었을 때 친형 두 분이 사업에 실패했어요. 대기업에서 잘나갔는데 자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부도가 났죠. 거리에서 손수레를 끄는 형의 모습이 제 인생도 바꿔놓았어요.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후에 부산시청에서 정보기획 업무를 담당하며 부산 최고경영자(CEO)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는데, 경영에 대한 기본 학습이나 준비도 전혀 없이 회사를 주먹구구로 운영하는 분이 많아 또 한 번 놀랐어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일과 직접 관련은 없어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해보자는 결심을 굳혔죠.”

    ▼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가진 문제는 무엇인가요.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새로운 사업도 직접 구상하고, 투자도 받으러 다니고, 직원들도 직접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정말 바쁘죠. 현장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 경영과 전략은 간과하게 돼요. 신문에 좋은 정보가 많다고 아무리 이야기해줘도, 신문 볼 시간이 어디 있느냐며 한가한 소리라고 말하죠. 놀랍게도 신문 보는 경영인이 많지 않아요.”

    ▼ 중소기업 경영의 성패가 경영자 개인에게 달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공정거래위원회 소속이기 때문에 대기업 내부거래라든지, 문어발 확장이라든지, 불공정한 하도급이나 프랜차이즈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 잘 알아요. 이런 문제들을 고쳐야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커지고 국가경쟁력이 강화되죠. 이를 위해서라도 중소기업 경영자의 역량이 높아져야 해요. 기업 환경은 일종의 정글인데, 중소기업 경영자는 맹수와 함정을 피해가며 살아남아야 합니다. 대출 등 지원도 경영자의 담보나 연대보증이 아니라 경영 능력을 평가해서 해줘야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어요. 만약 공정거래위원회로 복귀하면 이런 문제에 집중하고 싶어요.”

    ▼ 신문 읽는 CEO는 어떻게 다른가요.

    “매일 신문 5개를 읽는 패션디자이너가 있어요. 그분은 신문을 통해 시대 변화를 배우고,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죠. 그는 해외 브랜드가 밀려오는 시장 변화 속에서도 고객을 잘 지키고 있어요. 한 헤어디자이너는 젊은 시절부터 신문과 경영학 서적을 탐독했는데, 지금 독특하고 모범적인 방식으로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둘 다 시사와는 무관해 보이지만 신문을 통해 디자이너로서의 역량도 키웠다고 할 수 있어요.”

    “구걸도 비즈니스 中企 CEO가 달라졌어요”

    7월 17일 서울 여의도에서 지식비타민 사이트 개설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경쟁과 행복’ 연구하고 나누고

    ▼ 최초의 지식비타민 고객은 누구였나요.

    “물론 저 자신이죠. 그다음은 제가 처음 발령받았던 구청의 장이었어요. 신문스크랩을 하면서 매일 구청장에게 필요한 내용을 보냈죠. 물론 구청에 신문스크랩을 올리는 직원이 있지만 그쪽에선 행사, 구청의 업적 홍보, 높은 분 동정 등을 스크랩했고, 저는 구청 경영을 위한 전략, 국외 환경 변화, 트렌드 관련 정보를 보냈어요. 어느 순간 ‘구청장님이 달라졌어요’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더군요.”

    ▼ 7월 지식비타민 10년을 축하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오프라인에서도 활발하게 교류하는 회원들의 열의가 인상적이었어요.

    “‘지식비타민포럼’이라는 오프라인 모임이 부산에 있어요. 월 1회 자체적으로 포럼을 여는데, 저는 회원 간 전략자문위원회 구실을 합니다. 지식비타민 10년을 계기로 서울에서도 ‘CH포럼’을 만들기로 했어요. ‘경쟁과 행복(Competition · Happiness)’이라는 의미죠. 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되, 행복을 잊지 말자는 겁니다. 그런 방법들을 연구하고 나누는 모임이 될 거예요.”

    딱딱한 공직에서 이 행정관이 매일 아침 경쟁이라는 정글 속에 사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 보내는 지식비타민은 차가울 것 같지만 따뜻하고 절절하다. 걸인을 포함해 누구에게나, 바로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찾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이미 그의 독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의 비타민은 잔혹한 승리가 아니라, 행복을 위한 처방이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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