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5

2012.09.17

박지원 겨눴던 칼끝, 문성근 향하나

양경숙 공천헌금 의혹 사건… 중수부, 문성근 측으로 유입된 돈 사용처 추적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2-09-17 09:2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박지원 겨눴던 칼끝, 문성근 향하나
    인터넷 라디오 방송 ‘라디오21’의 대표를 지낸 양경숙(51) 씨의 공천헌금 의혹 사건은 처음부터 박지원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원내대표를 겨냥했다. 사건을 수사하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중수부)는 양 전 대표와 양 전 대표에게 돈을 건넨 3명을 긴급체포한 직후 “이 사건은 공천헌금 의혹 사건”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8월 27일 대검 핵심 관계자는 “돈을 건넨 3명 모두 민주당 공천을 받고자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양씨에게 돈을 건넨 세 사람(강서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이양호, H세무법인 대표 이규섭, 부산의 한 부동산 시행업체 대표 정일수)은 검찰에서 “박지원 대표를 보고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이들이 양씨에게 건넨 돈은 32억8000만 원이다. 양씨는 4월 총선 이전에 이 돈을 받아 어딘가로 보냈다.

    겉으로는 양씨와 이 3명은 투자계약서까지 작성하고 돈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처음부터 정치적 돈거래로 봤다. 선거 관련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안부나 특수부가 아닌 중수부가 직접 수사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번 사건을 중수부가 담당한 데는 한상대 검찰총장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그 얼마 후 슬그머니 발을 빼기 시작했다.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박지원이 밀겠습니다. 12번, 14번 확정하겠습니다. 이번 주 8개는 꼭 필요하고, 다음 주쯤 10개 완료돼야 일이 스무스하게(부드럽게) 진행됩니다’ 등의 내용을 담은 박 원내대표 명의의 2월 9일자 문자메시지를 양씨가 조작한 것으로 확인했기 때문. 8월 29일 대검 핵심 관계자는 “특정 정치인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수사가 아니다”라며 한 발 물러났다. 사건 초기 나온 “친노(친노무현) 인사 6명에게 양씨 돈이 전달됐다”는 언론보도도 그즈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중수부가 직접 나서서 언론 오보를 바로잡기도 했다.

    사적 관계 의심 ‘헛발질’



    그렇다고 이번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최근 검찰은 양씨와 관계된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양씨가 받은 돈 가운데 일부가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검찰은 야권 통합을 목적으로 문성근 민주당 상임고문이 만들어 운영해온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하 ‘민란’)에 주목하고 있다. 양씨는 ‘민란’ 집행위원을 맡았다.

    현재 검찰은 양씨 돈 가운데 상당 금액이 ‘민란’으로 흘러들어간 것을 확인한 상태다. 검찰은 그중 일부가 문 고문 측에 전달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의심한다. 이에 대해 최근 검찰은 “(양경숙 사건과 관련해) 추가 조사 필요성이 있는 사람 수가 2~3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수사 대상자 명단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문 고문도 대상에 들어 있다는 얘기가 조심스레 나온다. 검찰은 관련자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씨는 문 고문 측에 전달한 돈에 대해 “개인적 관계로 건넨 돈”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돈 성격과 금액에 대해 “좀 더 조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문 고문의 설명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문 고문은 총선 당시 양씨로부터 공식 후원금 5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돼 이미 이번 사건 초기 이름이 오르내린 바 있다.

    8월 14일 양씨가 지인들에게 발송한 문자메시지에 ‘민란에 7억8000만 원, 4·11 총선에 11억 원 후원, 이해찬 당 대표 네티즌 및 독려에 7억9000만 원, 한화갑 대표에 2억8000만 원, 교민에 2억3000만 원’이라고 적혀 있다는 사실도 의혹을 증폭하는 원인이 된다.

    박지원 겨눴던 칼끝, 문성근 향하나

    4월 25일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 대행이 서울시립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정책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만약 이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번 사건은 대선을 앞두고 중요한 정치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지원 대표의 경우에서 보듯 검찰이 헛발질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관측도 있다.

    양씨를 체포할 때만 해도 검찰은 금방이라도 박 대표까지 치고 올라갈 기세였다. 언론도 앞다퉈 양씨와 박 대표의 관계를 부각했다.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양씨와 박 대표의 사적 관계를 의심했다. 일반적인 관계라고 보기에는 통화 횟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았기 때문. 검찰은 양씨로부터 압수한 휴대전화 속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삭제한 문자메시지를 복구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검찰 판단은 틀렸다. 통화내역 등에서 사적 관계를 의심할 만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솔직히 남녀관계일 수 있다고 의심했다. 그러나 주고받은 문자에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양씨 돈이 박 대표에게 흘러간 흔적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초기부터 민주당 주변에서는 “박 대표가 4월 총선에서 친노 세력에 밀려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처지가 아니어서 양씨가 박 대표에게 돈을 줬다는 것은 상식 이하”라는 얘기가 있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양씨는 이번 사건에서 챙긴 32억8000만 원 가운데 상당 부분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특히 개인 빚을 갚는 데 많은 돈을 썼다. 돈을 받기 시작한 1~2월경부터 최근까지 인터넷 쇼핑 등으로 사용한 금액만 1억 원이 넘는다는 사실도 검찰 수사과정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 명의 계좌로 흘러간 1억4000만 원도 사실 양씨가 사용한 것으로 중수부는 판단하고 있다.

    양씨는 최근까지 여러 대학을 다니며 인맥을 넓혀 왔다. 그러나 올해 초까지만 해도 등록금을 내지 못해 쩔쩔맬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양씨가 석사과정을 다녔던 서울 소재 한 대학 관계자는 “등록금을 못 내서 여러 번 독촉할 정도였다. KBS에 다니는 양씨 동료가 학교에 찾아와 돈을 대신 내고 갔다”고 전했다. 반면 양씨와 가까웠던 민주당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씨는 예전부터 씀씀이가 컸다. 노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서울에서 내려간 참여정부 인사들을 챙기느라 자기 돈을 많이 쓴 걸로 안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