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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서양화가 박희숙의 미술관

비즈니스가 뭐기에 “부어라, 마셔라”

룸살롱

비즈니스가 뭐기에 “부어라, 마셔라”

비즈니스가 뭐기에 “부어라, 마셔라”

‘탕아의 편력-선술집’, 호가스, 1733∼1734년, 캔버스에 유채, 62×75, 존 손 경 박물관 소장.

우리나라 남자들의 중요 사교모임 중 하나가 술자리다. 어색한 관계였던 사람들도 술자리에서 금세 형과 아우가 되니, 친분을 돈독하게 만드는 데 필수 코스로 여긴다. 이 때문에 어떤 술집에서 사교모임을 갖느냐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술집을 구분하는 기준은 술값이 아니라 접대부다. 접대부 미모에 따라 술집 등급이 매겨진다. 미모의 젊은 접대부를 다수 확보한 룸살롱일수록 최상위층이 애용하는 고급 술집으로 분류한다.

고급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남자를 그린 작품이 윌리엄 호가스(1697∼1764)의 ‘탕아의 편력’ 중 ‘선술집’이다. 이 작품은 ‘탕아의 편력’ 시리즈 8점 중 세 번째 작품으로 방탕한 남자의 몰락을 다루고 있다. 술집의 난잡한 풍경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그림 오른쪽에 옷차림이 단정치 못한 남자가 다리를 탁자에 올려놓은 채 한 손에 술잔을 들고 있다. 옆에 있는 매춘부가 한 손으론 그의 가슴을 더듬으면서 다른 한 손으론 옆에 있는 매춘부에게 시계를 건넨다.

남자는 런던의 유명 선술집 로즈 테번에서 술을 마시는 톰 레이크웰이다. 그는 구두쇠 아버지가 평생 모은 돈을 유산으로 받아 런던 사창가를 전전했다. 단정치 못하지만 최신 유행을 반영한 옷차림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매춘부가 그의 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더듬는 모습은 시계를 훔치기 위해서다. 시계가 3시를 가리키는 것은 새벽 3시가 되도록 술을 마시고 있다는 얘기다.

원탁에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왼쪽 구석에는 하프와 나팔을 연주하는 악사들이 조용히 서 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스트리퍼는 쇼를 앞두고 스타킹을 벗고 있고, 문 입구 쪽 남자는 스트리퍼가 탁자 위에서 옷을 벗고 춤출 수 있도록 초와 쟁반을 들고 서 있다. 그의 곁에서는 임신한 소녀가 노래를 부른다. 그 소녀는 가수다.

벽에는 로마시대 황제들의 초상화와 세계지도가 걸렸다. 거울 앞 촛대에 꽂으려고 초를 들고 있던 매춘부가 세계지도에 불을 붙인다. 다행히 로마 황제 네로의 초상화만 손상되지 않았는데, 네로 황제의 초상화는 톰의 방탕한 생활을 암시한다.

호가스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을 통해 대중에게 도덕적 교훈을 주고자 이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유혹의 희생물이 되는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하려고 연극처럼 장면마다 줄거리에 변화를 줬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사교를 목적으로 술을 마시지만 평범한 사람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마신다. 한 잔의 술로 고단한 현실을 잊고 싶어서다.

비즈니스가 뭐기에 “부어라, 마셔라”

‘맥솔리의 선술집’, 슬론, 1912년, 캔버스에 유채, 66×81, 디트로이트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왼쪽). ‘주연 후’, 피에트로, 1928년, 캔버스에 유채, 140×180, 개인 소장.

평범한 남자들이 찾는 술집을 그린 작품이 존 슬론(1871∼1951)의 ‘맥솔리의 선술집’이다. 어두운 술집 안에서 중절모를 쓴 남자 두 명이 생맥주를 앞에 놓고 얘기를 나누고, 스탠드 안쪽에선 웨이터가 술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 뒤로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는 남자들이 보인다.

천장에 매달린 희미한 전구는 싸구려 술집임을 상징하며, 중절모를 쓰고 있으나 허름한 옷차림은 이들이 노동자임을 암시한다. 여자가 보이지 않는 것은 남성 전용 선술집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웨이터를 밝게 표현한 것은 술집에서 유일하게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임을 나타내려는 의도다. 고급 술집이든 싸구려 술집이든 끝은 하나다. 취하면 자기 몸조차 가누지 못한다는 것.

술자리를 마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카나치오 디 산 피에트로(1897∼1946)의 ‘주연 후’다. 여자 3명이 벌거벗은 채 다양한 포즈로 방 안에 누워 잠들어 있다. 붉은색 양탄자 위에는 술잔과 쓰러진 샴페인 병, 담배꽁초, 카드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녹색 커튼은 반쯤 열렸고, 그림 오른쪽 쿠션 위에는 하얀색 장갑과 중절모가 있다.

여자들은 다양한 포즈를 취하지만 창백한 피부, 날씬한 몸매, 밤색 머리가 동일 인물임을 나타낸다. 술에 취해 무방비 상태로 잠이 든 한 사람을 세 가지 시점에서 그린 것이다.

남자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두 개의 샴페인 병과 술잔, 필터까지 타고 있는 담배, 중절모, 카드 등에서 벌거벗은 여인이 남자와 함께 질펀한 파티를 즐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여인의 세 자세는 외부 세계와 상관없이 자기 안으로 움츠러든 상태를 나타낸다. 신나게 파티를 즐겨도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고독을 보여주는 것이다.

붉은색 양탄자 위 물건들은 1920년대 이탈리아 경제위기로 무력해진 부르주아를 상징하며, 물건이 흐트러진 모습은 방탕한 파티였음을 나타낸다. 그림 오른쪽 하단에 있는, 양끝이 말려 올라간 미색 종이에 쓴 글이 작가 서명이다. 피에트로는 이탈리아 사실주의 대가다. 그는 살롱 그림과 미래주의 기법의 회화에 매료됐다가 다시 전통 회화 형태로 작업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남자들이 고급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이유는 대개 비즈니스 때문이다. 비즈니스를 위해 룸살롱에 갔으나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건 대단한 내공이다. 오랜 시간 술도 안 마시고 술 따르는 접대부의 손만 바라보고 있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주간동아 2012.09.03 853호 (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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