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1

2012.08.20

어이구, 그거 두었다 뭐에 쓸 거냐

밤이 무서운 남자

  • 입력2012-08-20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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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구, 그거 두었다 뭐에 쓸 거냐

    ‘그리고 신랑은’, 프로이트, 1993년, 캔버스에 유채, 232×196, 개인 소장.

    남자는 소유하기 위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지만 일단 소유하고 나면 유지, 보수하는 데는 흥미가 없다. 그래서 남자는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내에게 관심이 없다. 이 여자가 확실하게 자기 사람임을 온 동네에 공표했으니 아내의 어떤 점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아내에게 관심이 없는 남자를 그린 작품이 루치안 프로이트(1922~2011)의 ‘그리고 신랑은’이다. 뚱뚱한 남자가 벌거벗은 채 침대에 큰 대(大) 자로 누워 잠들어 있다. 왜소한 체구의 아내는 옆으로 누워 한쪽 다리를 남자 허벅지에 올려놓았다. 남자의 편안한 자세와 대조적으로 여자의 누운 자세는 불편해 보인다. 여자가 아직 잠들지 않았음을 나타내며, 남자 허벅지에 올려놓은 다리는 그녀의 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남자의 처진 페니스와 대비된다.

    남자의 거대한 몸집으로 더욱 좁아 보이는 침대는 두 사람이 섹스가 중심인 신혼부부임을 나타낸다. 하지만 구김이 거의 없는 침대 시트를 통해 이들이 섹스를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남자 허벅지에 올려놓은 여자 다리도 그 점을 강조한다.

    이 작품의 모델은 오스트리아의 퍼포먼스 예술가인 리 워버리와 그의 아내 니콜라 베아트먼이다. 두 사람은 워버리가 에이즈로 사망하기 직전 결혼했다. 제목 ‘그리고 신랑은’은 A. E. 하우스먼의 시구(詩句) ‘그리고 신랑은 밤새도록/ 신부를 돌아보지 않았네’에서 따왔다.

    프로이트는 유화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방식으로 살갗의 질감을 살렸다. 인물 골격은 휴식과 무방비 상태에 놓인 신체적 특징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창문을 가린 검은색 파티션은 한낮임을 의미하는 동시에 두 사람의 누드를 더욱 강조한다.



    여자는 결혼생활 내내 세포 하나하나의 관심이 남자에게 향하지만, 중년 남자는 관심은커녕 아내 그림자조차 피하려 든다. 남편이 그림자 일부만 밟아도 아내는 관심을 받고 있다 생각하고 대뜸 거시기에 좋다는 음식을 식탁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중년 남자에게 보양식 먹은 다음 날은 공포영화를 찍는 날과도 같다. 젊고 탱탱한 여자와 있어도 발기가 잘 안 되는데 하물며 유지, 보수가 전혀 안 된 아내 앞에서 가능이나 하겠는가. 중년 남자는 생존하려면 아내 그림자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어이구, 그거 두었다 뭐에 쓸 거냐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 반 에베르딩겐, 1655년, 캔버스에 유채, 크기 미상, 스트라스부르 미술관 소장(왼쪽). ‘2인 누드 초상화 : 화가와 그의 두 번째 아내 혹은 양의 다리 누드’, 스펜서, 1937년, 캔버스 유채, 91×93,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아내에게 무시당하는 중년 남자를 그린 작품이 카사르 반 에베르딩겐(1617~1678)의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다. 소크라테스는 계단에 편히 기대 앉아 팔로 얼굴을 괸 채 먼 곳을 바라보고, 그의 아내 크산티페는 항아리에 담긴 물을 그의 머리에 쏟아붓고 있다. 이웃집 여자와 개를 끌고 지나가던 소녀가 크산티페의 행동에 놀라 바라본다.

    신발을 신지 않은 남루한 옷차림은 소크라테스의 검소했던 생활을 나타내며, 그가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은 철학 세계에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개는 부부간 충절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개가 소크라테스를 보고 있는 것은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의미다.

    이 작품에서 크산티페가 소크라테스 머리 위에 물을 붓는 행동은 살림에 도움이 안 되는 남편을 깨우치려는 의도다. 반 에베르딩겐은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의 이야기를 17세기 네덜란드 가정을 배경으로 묘사해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그렇다고 중년 남자가 아내 외에 다른 여자와 관계를 할 때 무조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 중년의 밤은 안에서나 밖에서나 무섭긴 마찬가지다.

    중년 남자의 신체적 변화를 그린 작품이 스탠리 스펜서(1891~1959)의 ‘2인 누드 초상화 : 화가와 그의 두 번째 아내 혹은 양의 다리 누드’다. 남자는 쭈그리고 앉아 음부가 보이도록 다리를 벌린 채 누워 있는 여자를 바라본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시선을 두지 않는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여자 음부는 남자와의 섹스가 없었음을 암시하며, 여자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두 팔과 꽉 다문 입술은 성적 불만족을 나타낸다. 남자의 축 처진 페니스는 여자가 벗고 있어도 발기가 안 되는 중년 남자의 현실을 보여준다. 고개 숙인 남자 얼굴은 여자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한 미안한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오른쪽 구석에서 불타는 가스불은 남자의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상징한다. 그림 앞쪽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는 발기하지 않는 남자 페니스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남자 피부색이 잿빛을 띠는 것은 죽음을 암시한다. 발기가 안 되는 것은 남자에게 죽음과 같다는 의미다. 남자와 달리 핑크빛으로 표현한 여자 육체는 성적 욕망이 살아 있음을 나타낸다. 핑크빛은 여자에게 빠진 남자 심리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펜서는 첫눈에 반해 이혼 나흘 만에 패트리샤 프리스와 결혼하지만 두 사람은 한 번도 같이 산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이혼한 것도 아니다. 스펜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린 몇몇 작품을 통해 동성 애인을 둔 아내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표현했다. 그는 노화로 신체 변화를 겪는 자기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제목에 양(lamb)이 아닌 양고기(mutton)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다. 밤이 무서울수록 립서비스라도 잘해야 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만들 뿐 아니라 중년 남자에게 집 밥을 편히 먹을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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