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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희숙의 미술관

“오늘 밤 책임져라” 은밀한 사인

아내의 붉은색 립스틱

“오늘 밤 책임져라” 은밀한 사인

“오늘 밤 책임져라” 은밀한 사인

‘메릴린 습작’, 로젠퀴스트, 1962년, 캔버스에 유채, 95×91, 개인 소장.



남자는 보통 젊고 아름다운 여자에게 눈길을 주지만, 그것이 꼭 섹시하다고 느끼는 감정 때문은 아니다. 남자는 여자의 외모와 상관없이 샴푸 후 젖은 머리, 스커트 위로 살짝 보이는 허벅지,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머리 몇 가닥, 샌들 사이로 보이는 발가락 같은 사소한 모습에서 더 섹시함을 느낀다.

또 하나, 남자는 거울을 보면서 붉은색 립스틱을 바르는 여자를 보면 섹시하다고 느낀다. 입술에 붉은색 립스틱을 바르는 여자의 손이 마치 자신이 여자의 입술을 어루만지고 있는 듯한 착각과 함께 키스하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남자가 키스하고 싶은 여자의 입술을 그린 작품이 제임스 로젠퀴스트(1933~)의 ‘메릴린 습작’이다.

컵으로 눈을 가린 여자는 살짝 벌린 입술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색 막대를 대고 있다. 붉은색 입술은 뽀얀 피부와 대비를 이루면서 벌어진 입술을 강조하며, 붉은색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은 회색 막대에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에로틱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벌어진 붉은 입술은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를 상징하고 회색 막대는 남자를 암시하며, 여자 얼굴의 반을 가린 컵은 에로티시즘을 이용한 광고를 나타낸다.

로젠퀴스트의 이 작품은 광고에서 이미지를 차용한 팝아트로, 메릴린 먼로로 짐작되는 여자의 얼굴을 컵으로 가린 것은 현대 도시 사회를 구성하는 광고의 힘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로젠퀴스트가 작품에 광고를 사용한 것은 초기에 미국 곳곳에서 광고 게시판을 그리며 생활했던 경험 때문이다. 그는 작품에 대중적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팝아트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남자는 시각적 자극에 상상력이 곁들어질 때 성욕을 느낀다. 남자가 성욕을 최고로 느끼는 순간은 바로 여자가 스타킹을 벗을 때다. 여자의 스타킹은 남자에겐 곧 섹스 진입로다. 남자는 벌거벗은 여자의 스타킹만 보고 있어도 자연스레 섹스를 상상한다. 에로 영화나 B급 잡지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벌거벗었으면서도 스타킹만은 꼭 신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수들은 안다. 다 벗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때로는 스타킹이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보다 더 남자를 자극한다는 것을.

“오늘 밤 책임져라” 은밀한 사인

‘흰색 스타킹을 신는 여자’, 쿠르베, 1861년, 캔버스에 유채, 65×83, 필라델피아 반스 재단 소장(왼쪽). ‘남성용 셔츠를 두 단계에 걸쳐 벗는 여성’, 오피, 2003년, 캔버스에 유채, 239×178, 런던 리슨 갤러리 소장.

스타킹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의 ‘흰색 스타킹을 신는 여자’다.

해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벌거벗은 여자가 옷을 깔고 앉아 흰색 스타킹을 신고 있다. 가슴에는 블라우스를 대충 걸쳐놓고 입술을 비쭉 내민 채 정면을 바라본다. 신지 못한 붉은색 구두 한 짝은 풀 위에 뒤집어져 있다.

어두운 배경과 석양은 여자가 스타킹을 신은 이유를 설명하지만,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깔고 앉은 흰색 옷과 가슴에 있는 블라우스는 섹스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전통적으로 구두는 섹스를 상징하는데, 이 작품에서 구두와 스타킹을 신은 다리는 섹스가 끝났다는 것을 암시하지만 뒤집어진 구두와 발에 신고 있는 스타킹은 섹스에 만족하지 못한 여자의 심리를 암시한다. 쿠르베는 고야 작품 ‘벌거벗은 마하’에서 영향을 받아 바다를 배경으로 흰색 스타킹을 신은 누드화 몇 점을 그렸다.

‘팬티 위에 커다란 남성용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여자’를 보면 남자들은 대부분 여자가 섹시하다고 느낄 것이다. 아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와이셔츠는 여자의 부드러운 몸을 상상하게 만들면서 지난밤의 뜨거웠던 섹스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여자도 ‘연속타’를 기대하면서 남자의 셔츠를 입는다. 이럴 때 남자들이여, 제발 눈치 없이 출근하지 마라.

남성용 셔츠를 입은 여자를 그린 작품이 줄리언 오피(1958~)의 ‘남성용 셔츠를 두 단계에 걸쳐 벗는 여성’이다.

왼쪽 여자는 남성용 흰색 셔츠를 열어젖혔으며 오른쪽 여자는 셔츠를 팔목에 걸치고 서 있다. 셔츠를 벗은 여자가 몸에 걸친 거라고는 손바닥만한 삼각 끈팬티 하나다.

옷을 젖혀 풍만한 가슴을 그대로 드러내놓은 여자의 도발적인 자세와 삼각 끈팬티는 성적 유혹을 암시한다.

몸에서 분리됐지만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는 얼굴은 여자의 당당한 태도를 보여준다. 팔목에 우아하게 걸친 셔츠와 발목 부분에 끈이 달린 하이힐, 그리고 포즈는 여자가 패션모델임을 드러내는데, 이는 포즈만 보고도 여자가 모델일 거라고 생각하는 일반 사람들의 의식을 나타내는 효과도 있다.

오피는 단색조 바탕에 검은 윤곽선 몇 개를 사용해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 특징으로, 여자를 검은색 윤곽선과 붉은색으로 단순하게 표현한 이 작품 역시 그런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하지만 단순화한 여자의 이미지는 교통 안내 표지판처럼 보이게 한다.

여자가 붉은색 립스틱을 바르면 외롭다는 증거다. 젊은 여자들은 나이 들어 보인다고 붉은색 립스틱을 좋아하지 않지만, 중년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립스틱이 붉은색이다. 이는 남자에게 성적 관심을 받기 위해서다. 아내가 붉은색 립스틱을 바르거든 쥐 잡아 먹었다고 타박하지 말고 아내의 소리 없는 사인을 알아차려야 한다. 노동할 시간이 왔다는 의미다. 노동은 언제나 신성하다.



주간동아 2012.08.13 850호 (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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