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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폭염에 고양이 탈 “알바 살려”

한여름 ‘인간 간판’ 대학생 아르바이트 더위에 녹초

  • 이여진 인턴기자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4학년 iamherehihi@gmail.com

폭염에 고양이 탈 “알바 살려”

폭염에 고양이 탈 “알바 살려”

고양이 인형탈을 쓰고 고양이카페를 홍보하는 대학생.

고양이는 울부짖고 싶었다. 35℃에 육박하는 뙤약볕 아래 벌써 6시간째 일하고 있다. 몸에는 땀이 흥건하다. 귀엽게 보이려고 끼워 넣은 솜과 그 위의 고양이털옷을 합하면 한 뼘 두께나 된다. 한 달 동안 빨지 않은 인형탈에선 걸레 냄새마저 난다.

폭염특보가 있었던 8월 2일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신촌점(이하 유플렉스)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날도 A고양이카페 아르바이트생은 쉬지 않고 오전 12시부터 밤 9시까지 일했다. 고양이카페란 고양이들과 놀 수 있는 카페다. 최근 며칠 동안 연이어 폭염주의보가 있었지만 그는 하루도 쉰 적이 없다. 신종 마케팅으로 퍼포먼스가 인기를 끌면서 어떻게든 행인의 눈길을 끌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 한 달 70만 원 수령

이곳에서 100m 떨어진 대학약국 앞 횡단보도에서는 커다란 새 캐릭터(앵그리 버드) 인형을 머리에 쓴 사람이 춤을 춘다. 새로 문을 연 노래방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빨간불에 행인이 멈춰 서면 바람잡이가 불러 세워 새 캐릭터 인형과 함께 퀴즈를 맞혀보라고 수작을 건다. 사람들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덮은 커다란 새 인형 아래 드러난 맨다리를 보고 깔깔깔 뒤로 넘어간다.

유플렉스를 기준으로 몇백m 안에 퍼포먼스형 아르바이트생 7명이 있다. 인형탈을 쓰는 일보다 커다란 간판을 들고 길 한복판에 서 있는 일이 더 많다. 일명 ‘인간 간판’은 유학원, 떡볶이 가게, 스시 가게 등 점포 위치를 정확히 가리키고 행인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화살표 모양의 간판에는 ‘○○건물 ○층’이나 ‘장학금 ○○지급, ○○어학원 수강료 할인’ 따위의 광고 문구가 적혀 있다. 그것을 든 사람은 밀짚모자를 쓴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무표정으로 서 있거나 휴대전화만 하염없이 쳐다보는 모습은 보는 사람도 불편하게 한다.



서울 지하철 신촌역 인근에서 일하는 7명은 모두 대학생이다. 고양이 탈을 쓴 사람은 26세 곽모 씨다. 그는 서울 소재 대학 디자인학과 학생이다. 그의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부터 켜서 이것저것 확인한다. 10시 반이 되면 집을 나서 고양이카페로 향한다. 카페에서 고양이들과 놀면서 점심식사를 해결한다. 12시가 되면 고양이털옷을 챙겨 입고 백화점 앞으로 간다. 고양이카페 입간판을 든 손에는 노끈이 감겨 있다. 백화점 앞에 노끈으로 입간판을 달고 뭇사람의 고양이가 된다. 이렇게 밤 9시까지 일한다. 집에 들어가면 밤 10시. 디자인 책을 펴볼 새도 없이 쓰러져 잠에 빠진다.

곽씨는 이렇게 주5일을 일해 한 달에 70만 원가량을 받는다. 여기에 30만 원을 얹어 아버지에게 준다. 부모는 이 돈으로 납부기한이 2년 남은 곽씨의 학자금 상환금을 내고 남은 돈은 용돈으로 쓴다. 곽씨 자신의 생활비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충당한다. 8개월 동안 이 일을 쉬어본 적이 없지만 모이는 돈은 없다. 스스로도 일하는 양에 비해 급여가 적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폭염에 고양이 탈 “알바 살려”

햄버거 탈을 쓴 아르바이트생.

신촌 인근 고양이 탈 아르바이트생의 처우는 시급 6000~7000원대로 비슷하다. 이화여대 근방 B고양이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모(23) 씨는 곽씨보다 조금 많은 시급 7000원을 받는다. 단, 식대는 제외다. 식사시간은 따로 없고 매시간 10분 쉴 때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한다.

“요새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어서 이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이마저도 비 오면 일을 못 한다. 그는 장마철 일주일 동안 일을 못 하는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그럴 때는 피에로나 서커스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에게 일거리를 부탁한다.

고양이 탈 아르바이트생의 주요 업무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때리고 엉덩이를 차고, 탈을 벗기려고 하는 것이 스트레스다. 옷이 두껍고 얼굴에 무거운 탈을 써야 하는 것도 힘들단다. 날씨가 더워 카페 안에서 얼린 얼음조끼를 탈 안에 입지만 이내 녹아버린다. 남씨는 일한 지 한 달 남짓밖에 안 되지만 그사이 다리에 어린이 주먹만한 땀띠가 나서 한동안 고생했다. 너무 더우면 사장에게 더워서 못 나가겠다고 직접 말해야 한다.

‘때리면 맞아라’ 인형의 규칙

고양이 탈 아르바이트도 그 나름대로 경쟁이 치열하다. 날라리 같아 보이는 사람, 여자, 나이 어린 사람은 사장이 선호하지 않는다. 더위를 잘 타는 것도 결격 사유다. 곽씨는 70대 1 경쟁을 뚫고 이 아르바이트에 합격했다고 한다. 계약은 문서 없이 사장 말로만 이뤄졌다.

“절대 말을 하거나 얼굴을 보이지 말 것, 사람들이 싸움 걸면 대응하지 말 것, 때리면 피하거나 그냥 맞을 것, 정해진 자리에서 10분 이상 이탈하지 말 것.”

곽씨는 사장이 지키라는 규칙은 꼭 지킨다. 그와의 인터뷰도 ‘인형의 규칙’에 따라 한 시간 넘게 필담으로 진행했다.

하루 종일 간판을 드는 이른바 ‘인간 간판’은 시급이 8000~1만 원 선으로 인형탈 아르바이트보다 높은 편이다.

유명 Y유학원 앞에서 일하는 김형돈(22·가명) 씨는 군 입대를 앞두고 단기 아르바이트로 유흥비를 마련하려고 이 일을 시작했다. 주3일 4시간씩 일하고 시간당 8000원을 번다. 그가 선 자리는 햇빛이 많이 비쳐 평소 선크림을 두세 겹 바르고 삿갓을 쓴다. 삿갓을 쓴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다른 아르바이트와 달리 사장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 마음에 든다고 했다. 같은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으면 다리가 아프다.

폭염에 고양이 탈 “알바 살려”

어학원 홍보간판을 들고 서 있는 아르바이트생.

사람이 대형 간판을 드는 행위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및 관련 조례에 따르면 모든 간판 및 현수막은 사전에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한다. 건물에 고정되지 않은 간판은 그 종류와 상관없이 불법이다. 2011년 시행된 대통령령에 의해 옥외광고물이 제한되면서 변종된 간판이 횡행한다. 점포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간판이 얼마나 되는지 통계수치가 나온 적은 없다. 서울시 디자인과 관계자는 “인간 간판을 몇 개 보기는 했지만 단발적이라 단속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촌역 인근에서는 오늘도 대학생 7명이 등록금을 벌려고 거리 퍼포먼스를 한다.

변종된 신종 마케팅인 만큼 기존 법이 정한 보호조치에서 벗어난다. 아르바이트생들은 행인에게 얼굴이 노출되고 몸을 구타당하거나 놀림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추세를 고려해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을 가리거나 행인의 지나친 접근을 막는 보호 장치를 법으로 강제하지는 않는다. 얼굴 사진이 인터넷에 함부로 돌아다닐 경우 초상권 침해나 신상정보 노출의 위험성이 있다. 감정 노동을 할 때 불특정 다수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우려된다.

휴식시간 없어 탈진하기도

휴식시간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실외에서 장시간 반복하는 일이라 더위 때문에 일사병이나 어지럼증, 탈진을 겪을 우려가 있다. 서울응급의료센터 관계자는 “요즘 같은 고온에 오랜 시간 서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4시간 근로 후 30분 휴식 규정은 지켜지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규정한 휴식 조항에 위반되지는 않는다. 근로 및 산재 관련법에서 날이 아주 더울 때 아르바이트를 제재하는 기준을 따로 정해놓지 않아 폭염특보에도 아르바이트를 쉴 수 없다. 곽씨는 “지난해 고양이 탈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람이 일하다 쓰러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도 고된 일에 지난 6개월 새 10kg이 빠지고 허리는 5인치 줄었다.

일사병을 예방하려면 일하는 중간중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얼음조끼 등으로 체온을 낮추는 것도 좋다. 얼굴을 가릴 수 없다면 피부 보호를 위해 선크림은 필수이고 사진이 함부로 찍힐 위험에 대비해 모자를 쓰는 것이 좋다. 업무 중에는 음악을 듣거나 시원한 것을 마셔 과도한 스트레스를 방지하는 것이 안전하다.

주로 취업 경쟁력이 낮은 20대 대학생이 퍼포먼스형 아르바이트를 한다. 단기간에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거나 취직 준비를 하는 동안 한시적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최저임금보다 시급 1000~5000원이 더 높은 아르바이트는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업주도 아르바이트생이 어리면 그만큼 귀엽게 행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선호한다.

그렇다면 마케팅 효과는 있을까. 이런 걸 보면 재미있기보다 불쾌하다는 시민이 꽤 많다. 대학생 아들을 둔 박모(48) 씨는 무더위에 고양이 탈을 쓴 사람을 보고 “저렇게 열심히 사는 청년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고 말했다. 이들과 같은 대학생인 정혜진(24) 씨도 “왜 굳이 그런 식으로 마케팅을 해야 하는지 반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곽씨를 고용한 카페 사장에 따르면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동원하는 날은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매출이 20~30% 증가한다고 한다.

퍼포먼스형 마케팅은 하는 사람도 부끄럽고 보는 사람도 민망하다. 여름 뙤약볕에 신음하는 인형탈 마케팅과 불법 ‘인간 간판’업을 다시 생각해볼 때다.



주간동아 850호 (p38~40)

이여진 인턴기자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4학년 iamherehih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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