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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희숙의 미술관

CEO가 읽는 책 보면 졸리는 이유

휴가지에서의 독서

CEO가 읽는 책 보면 졸리는 이유

CEO가 읽는 책 보면 졸리는 이유

‘숲에서 휴식을 취하는 톨스토이’, 레핀, 1891년, 캔버스에 유채, 60×50,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많은 사람이 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난다. 해마다 휴가철이면 언론에 물놀이 위험성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것이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휴가지에서 읽는 도서 목록이다. CEO는 휴가를 정신 재충전 기회로 여기고 책을 읽는 것이다.

휴가지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는 사람을 그린 작품이 일리야 레핀(1844~1930)의 ‘숲에서 휴식을 취하는 톨스토이’다. 헐렁한 흰색 옷을 입은 톨스토이가 나무 그늘에 푸른색 천을 깔고 편안하게 누워 손에 든 책을 읽고 있다. 푸른색 천은 가운을 벗어놓은 것이며, 입고 있는 흰색 옷은 실내복이다. 톨스토이의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흰색 모자와 우거진 나무는 한여름임을 나타내며, 상체를 나무에 기댄 자세는 편안하게 책을 읽는다는 의미다. 덥수룩한 수염은 위대한 작가의 연륜을 드러내며, 나무 아래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는 모습은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톨스토이의 의지를 표현한다.

이 작품은 1891년 여름, 레핀이 톨스토이 영지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머물면서 제작한 것이다. 그는 영지에서 톨스토이의 모든 일상을 스케치했으며 특히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가 평범한 농부처럼 지내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레핀은 이 작품에서 톨스토이가 평상시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작가임을 표현하려고, 한여름의 무더운 열기를 피해 잎이 무성한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면서도 책을 읽는 톨스토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두 사람은 톨스토이가 죽기 30여 년 전부터 친분을 맺었는데, 톨스토이는 자신을 위대한 인물로 묘사한 레핀에게 끌렸으며 레핀은 톨스토이 사상에 매료돼 오랜 우정을 나눴다. 레핀은 톨스토이가 초상화의 이상적인 모델이라 여기고 드로잉과 조각을 포함해 톨스토이 초상화 70여 점을 제작했다. 하지만 레핀이 너무 솔직하게 묘사한 톨스토이의 모습은 위대한 작가의 신비감을 떨어뜨린다는 단점이 있다.

CEO가 휴가지에서 읽는 도서 목록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이유는 일반인이 가진 성공 욕망 때문이다. 평범한 직장인의 로망은 CEO다. 성공한 CEO의 생각을 알면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CEO의 생각을 알려고 그들이 휴가지에서 읽는다는 책을 구입한다.

CEO가 읽는 책 보면 졸리는 이유

(왼쪽)‘책벌레’, 슈피츠베크, 1850년경, 캔버스에 유채, 49×27, 독일 슈바인푸르트 게오르크 셰퍼 미술관 소장. (오른쪽)‘신체 부분-프랑스어 단어수업’, 리버스, 1961∼62년, 캔버스에 유채, 182×121, 개인 소장.

책에 욕심이 많은 사람을 그린 작품이 카를 슈피츠베크(1808~1885)의 ‘책벌레’다. 천장에 닿을 듯한 책장 한가운데에서 노학자가 사다리 위에 올라가 책을 읽고 있다. 그 모습이 책에 몰두했음을 보여주는 한편, 노학자가 옆구리에 끼고 있거나 들고 있는 책은 책에 대한 탐욕을 암시한다.

책장 한가운데를 비추는 밝은 빛은 그림에 나타나진 않았으나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다.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풍경이다.

사다리 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책에 빠진 노학자의 모습은 지식인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그림 왼쪽 하단에 있는 지구의는 다양한 책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당시 인기를 끌어 많이 복제됐다.

슈피츠베크는 독일 비더마이어 시대(1815~1848)에 화가로 활동하면서 중산층의 평범한 생활을 정확히 포착해 명성을 얻었다. 비더마이어 시대 화가들은 편안함과 안정, 가정생활을 작품 주요 소재로 삼았다. 1815년 나폴레옹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단순한 일상생활을 묘사한 작품이 중산층의 취향에 잘 맞아 인기를 끌었다.

슈피츠베크는 특히 중산층의 일상을 표현하면서도 희극적 요소를 강조해 독일의 호가스(18세기 영국 풍자화가)라고도 부른다.

휴가지에서 CEO처럼 생각하고 싶다면 책 속 요점만 읽어라. 책 읽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다. 무조건 정독한다고 책 속에 있는 지식이 내 것이 되진 않는다.

요점만 정리한 책을 그린 작품이 래리 리버스(1923~2002)의 ‘신체 부분-프랑스어 단어수업’이다. 벌거벗은 여자의 다양한 신체 부분에 밑줄이 그어져 있고, 그 옆에 프랑스어 단어가 적혀 있다. 인쇄물 활자로 표현한 프랑스어는 단어수업을 나타내는 것이며, 여자 누드는 교육용 삽화라는 의미다.

배경에 대충 한 듯한 붓질은 추상표현주의 양식을 따른 것이다. 콜라주 형식으로 인쇄물을 그린 것은 팝아트와의 연관성을 나타낸다. 콜라주 형식으로 표현된 단어는 진부한 소비문화를 의미한다.

리버스는 추상화가로 활동했으나 후에 구상작가로 변신하면서 작품의 직접적인 내용보다 이미지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 작품은 성적인 초상화와 실제 교육적인 단어를 결합해 이미지의 관계를 보여준다.

리버스는 비디오와 조각을 제작하고 시를 썼으며 무대 디자이너로도 활동했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는 절충주의적 작품을 창조했다.

같은 책을 읽어도 CEO는 아이디어를 얻는 반면, 평범한 사람은 졸음부터 찾아온다. 졸음이 오는 것은 취향이나 목적에 맞지 않는 책을 읽기 때문이다. CEO처럼 생각하고 싶다면 먼저 자기 취향에 맞는 책을 골라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CEO가 읽은 책이라도 자신의 흥미와 동떨어진 것이라면 불면증에 특효약일 뿐이다.



주간동아 2012.08.06 849호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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