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8

2012.07.30

“오죽하면 안철수에 열광 지려고 나가겠나…곧 결론 낼 것”

‘동반성장 전도사’ 정운찬 전 총리의 대권 꿈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2-07-30 0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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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죽하면 안철수에 열광 지려고 나가겠나…곧 결론 낼 것”
    정운찬(66) 전 총리의 사무실이 있는 구로디지털단지 거리는 깨끗하고 한적했다. 그가 창립한 동반성장연구소 직원들은 자원봉사자다. 이제 막 회원을 모으는 중이고 기업 후원금도 적어 재정이 빈약하지만, 직원들은 의욕이 넘친다.

    정 전 총리는 2010년 12월, 기자와 퇴임 후 첫 인터뷰(‘신동아’ 게재)를 할 때보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머리는 더 희끗희끗해졌지만 활기가 넘치고 안색도 좋았다. 진한 보라색 넥타이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비쳤다.

    대통령선거(이하 대선) 출마 여부가 무엇보다 궁금했지만, ‘동반성장 전도사’로 불리는 만큼 그 얘기부터 꺼냈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그는 6월 중순 동반성장연구소 설립 직후 바쁘게 움직였다. 언론도 많이 접촉하고 강연도 자주 했다. 동반성장연구소는 7월 1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소상공인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그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문제는 양극화의 결과”라면서 “향후 한국 사회의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라고 말했다.

    “동반성장론은 단순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빈부 간, 도농(都農) 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남북 간 문제다. 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소책자를 곧 발간할 예정이다.”



    그는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그만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정부에서 좀 더 도와줬다면 계속했을 거다. 그랬다면 대통령 지지도가 그토록 하락하지 않았을 거다. 대통령 지지도가 떨어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양극화 심화, 둘째는 편중인사.”

    이어 그는 ‘재벌장학생’이라는 표현으로 재벌에 관대한 지도층 인사들을 꼬집었다.

    “빌헬름 뢰프케(독일 경제학자)는 ‘사회가 잘되려면 법률가와 학자, 언론인이 각자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사법부와 대학, 언론계, 정부에 재벌장학생이 너무 많다.”

    동반성장을 강조하는 이유를 묻자 어린 시절 가난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점심을 먹은 적이 없다. 쌀밥 구경도 못 했다. 스코필드 박사가 학비를 대주지 않았다면 중·고교에 다니지도 못했을 거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경제적 약자의 처지를 잘 이해했다.”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 의학자이자 선교사다. 3·1운동 때 일제 잔악상을 세계에 널리 알렸고, 이후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다. 1969년 한국에 영주한 후 외국인 최초로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경제학자로서 20년간 연구해온 주제가 재벌개혁, 금융개혁 두 가지다. 2009년 가을 총리가 되자마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평등 관계를 개선하려 애썼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체 대표 2명으로부터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가 너무 심하다. 한국에선 도저히 사업할 수 없어 이민 가야겠다’는 얘기를 들은 게 계기였다. 2010년 봄 대통령에게 동반성장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건의했다. 그때는 별 반응이 없었다. 총리를 그만둔 후인 그해 12월 동반성장위원회가 발족했고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해서 수락했다.”

    “내가 경제민주화 주장의 원조”

    “오죽하면 안철수에 열광 지려고 나가겠나…곧 결론 낼 것”

    2009년 10월 3일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 유가족과 대화하는 정운찬 총리.

    그는 새누리당,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비판해왔다. 그 이유를 물으니 흥미로운 비유를 들었다.

    “경제학 흐름은 크게 두 가지다. 정치경제학과 근대경제학이다. 정치경제학은 마르크스 경제학이고, 근대경제학은 영미식 경제학이다. 정치경제학은 문제의식은 있는데 푸는 방법을 모른다. 근대경제학은 푸는 방법은 아는데 문제의식이 없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지만 새누리당은 근대경제학자, 민주당은 정치경제학자의 생각과 비슷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는 새누리당이 내놓은 정책에 대해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정상적인 시장질서 확립 정책”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대기업 담합 처벌 강화, 일감 몰아주기 근절,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은 현상유지를 전제한 공정거래 정책이다. 경제민주화란 경제 주체들이 시장에서 대등한 관계로 교환하는 거다. 이를 위해선 경제적 약자,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 지금은 헤비급 선수와 플라이급 선수가 싸우는 상황이다. 지금부터 룰을 공정하게 운영하고 심판도 공정하게 볼 테니 체급이 다른 선수끼리 싸우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민주당에 대해서도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민주당은 재벌총수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춰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순환출자 금지, 산업자본의 은행소유지분 한도 강화를 내세운다. 재벌 문제점만 생각하지, 경제적 약자를 키워 대기업과 대등한 관계를 확립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성장에 대한 얘기가 없는 것도 문제다.”

    그는 자신이 “경제민주화 주장의 원조”라고 말했다.

    “지금 정치권과 언론에서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데 실은 내가 1990년대에 그 개념을 정의했다. 경제민주화론은 내 경제철학의 바탕이다. 지금까지 재벌회사 사외이사를 한 번도 맡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인, 관료, 오피니언 그룹에 재벌권력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중 가장 잘못된 점을 꼽는다면.

    “2008년 발생한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환경의 변화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친(親)대기업 정책을 추진한 것이 문제다. 그 결과 양극화가 심해졌다. 시급한 위기를 극복했다면 중소기업과 서민경제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수정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내가 총리로 들어간 것은 균형추 노릇을 하기 위해서였다. 감세(減稅)는 경기부양에도 도움이 안 되고 소득분배 구조도 악화시킨다. 내가 총리가 된 뒤 감세를 막았다.”

    ▼ 재벌 문제의 정점은 삼성이다. 삼성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첫째는 삼성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크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조금만 실수하면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이건희 회장이 순환출자를 통해 지분 0.52%로 그룹을 장악하는 것도 문제다. 개인 판단에 거대 기업의 미래와 한국 경제가 막대한 영향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우리 사회 곳곳에 삼성장학생이 많다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 공동체와 함께 발전하겠다는 정신이 부족한 것도 아쉽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와 동반성장위원회가 공동으로 대기업의 동반성장 지수를 매겼는데, 삼성전자가 1등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안철수에 열광 지려고 나가겠나…곧 결론 낼 것”

    2010년 1월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는 정운찬 총리.

    “비박연대 킹메이커? 천만의 말씀”

    ▼ 재벌의 편법상속에 대해선.

    “재벌을 비판하면 배가 아파서 그런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미국은 부자의 80%가 맨주먹으로 시작한 사람들이다. 한국은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부자가 많기 때문에 비판받는 거다.”

    ▼ 이명박 정부는 조세포탈, 배임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건희 회장을 단독 특별사면했다.

    “(웃음) 내가 총리 때 한 일이라….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유치를 위해 그렇게 한 걸로 이해한다. 그 얘긴 이 정도로 하자.”

    그의 활발한 움직임은 정치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선 후보로 나설 가능성 때문이다. 2007년에도 그의 출마 여부는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지만 가능성을 닫아두지는 않았다.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그가 ‘비박(비박근혜)연대 킹메이커’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같은 관측에 대해 그는 “나는 새누리당과는 맞지 않는다”며 명확히 선을 그었다.

    “성장 배경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다. 역사관도 다르다. 나는 5·16을 군사쿠데타로 본다. 경제관도 다르다. 나는 케인스주의에 가깝고 그쪽은 신자유주의다.”

    ▼ 그럼 민주당 쪽과 접촉하나.

    “별다른 접촉이 없다.”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과의 연대 가능성도 거론된다.

    “동반성장 가치에 동의하는 분이라면 안 원장뿐 아니라 누구와도 도움을 주고받을 거다. 내가 언론과 인터뷰하는 목적은 딱 하나다. 동반성장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 심각한 상황이다. 중소기업, 자영업자, 소상공인은 부도 상태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이 동반성장이다. 안 원장이 ‘삼성동물원’이라는 표현을 쓴 걸 보면 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 같다.”

    ▼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기성 정치인들 책임이다(웃음). 얼마나 정치를 못하고 국민 실망이 컸으면.”

    ▼ 사실 비정상적인 현상 아닌가.

    “오죽하면 저렇게 열광하겠나. ‘여러분 힘드시죠. 같이 문제를 풀어봅시다’ 이 말에 다 넘어간다는 것 아닌가. 안 원장은 젊은 층이 닮고 싶은 인물 1위로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린다.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했다면 ‘한국의 스티브 잡스’로 족했을 거다.”

    ▼ 안 원장은 최근 펴낸 책에서 4대강 사업과 제주 해군기지, 용산참사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총리 시절 주변의 만류에도 용산참사 유족을 찾아가 사과했다. 국가가 뭔지,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뭔지 깊이 생각하게 됐다. 정부는 많은 사람에게 득이 되는 일이면 집행한다. 하지만 소수를 중요시하고 존중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국민 개개인의 생활이 안정되는 안전한 사회를 추구했다면 재개발정책을 그토록 일방적으로 진행하지 않았을 거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심사숙고해야 한다. 천혜 자연경관을 갖춘 평화의 섬에서 해군기지만 부각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관광미항에 중점을 둔 복합개발이 필요하다. 4대강 사업은 대선 공약이던 ‘한반도 대운하’가 바뀐 것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운하는 나도 반대했다. 4대강 사업의 경우 동시에 진행하지 말고 규모와 속도를 조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천천히 하자고 건의했다가 외려 대통령에게 설득당했다. 생태계 파괴라는 비판론 가운데 일부는 현실로 나타났다. 하지만 잘된 면도 있다. 지난해 엄청난 홍수가 있었는데 4대강 사업 덕분에 피해가 적었다.”

    ▼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장단점을 꼽는다면.

    “말이 없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말수가 적으니 실수할 가능성이 낮다. 반대로 소통이 안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도 장점이자 단점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점에선 장점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과오, 심지어 쿠데타조차도 미화하는 건 큰 문제다. 객관적 사고를 못하는 거다. 대화와 타협은 없고 결단만 있는 것도 단점이다.”

    ▼ 박 의원은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원안을 고집해 관철했다.

    “국가 미래를 생각해 잘못된 약속은 고쳐야 하는 게 용기 있는 지도자다.”

    “새누리당 보면 공화당이 연상돼”

    “오죽하면 안철수에 열광 지려고 나가겠나…곧 결론 낼 것”
    그는 새누리당에 대해 “민주정당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당은 국민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이해만 대변하는 1인 정당이다. 새누리당에서 내놓는 모든 정책과 활동 기준은 박근혜다. 박근혜에게 도움이 되느냐 걸림돌이 되느냐. 박근혜의 생각에 맞느냐 어긋나느냐. 과거 유정회 의원들이 생각나고 공화당이 연상된다.”

    민주당에 대해서도 “자기반성이 부족한 정당”이라며 거리를 뒀다.

    “참여정부는 법인세와 특별소비세 감소, 금산분리 완화, 의료민영화 도입, 출자총액제한제 완화 등을 주도했다. 그런데 지금은 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꾸고 보편적 복지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를 주장한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말했듯이 ‘반성 없이 돌아온 참여정부’는 문제가 있다.”

    ▼ 대선 출마하나. 최근 언행을 보면 2007년 상황과 비슷하다.

    “대통령은 국가정책의 최종 결정권자다. 국가와 국민, 미래세대에도 영향을 끼치는 자리다. 그 자리를 향해 움직이려면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다. 5년 전엔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서울대 총장 경험만 있었다. 그때보다 유리한 건 총리를 지내 국정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아직 결심을 못 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결론을 내리겠다.”

    ▼ 나온다면 야권 단일후보가 돼야 (당선)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웃음) 머릿속으로 모든 가능성을 그려보고 있다.”

    ▼ 박근혜 의원을 이길 것 같나.

    “그걸 어떻게 알겠나(웃음).”

    ▼ 나오려면 그 정도 자신감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웃음) 지려고 나오겠나. 내가 나온다면 자신 있으니 나오는 걸로 보면 된다.”

    ▼ 안철수 원장은 책 출간을 통해 출마 의지를 드러냈다.

    “나도 책을 낼 거다. 8월 10일쯤 먼저 동반성장론에 관한 책을 낸다. 야구 책도.”

    이 엄중한 시국에 야구 책이라니. 하긴 그는 알아주는 야구광이다. 그에 따르면 원고는 거의 다 됐는데 마무리가 안 된 모양이다.

    “내 인생에서 야구가 갖는 의미를 풀어놓은 책이다. 야구로 외로움을 달랬다든지, 패자부활의 묘미를 배웠다든지… 재미있는 얘기가 많다. 동반성장론은 국민 서비스 차원에서 내는 거다. 내 세계관을 담은 책도 낸다. 5년 전 출간한 ‘가슴으로 생각하라’를 지금 찾는 사람이 많다. 그 책에는 서울대 총장 할 때까지의 내 삶이 담겨 있다. 여기에 총리를 할 때까지의 얘기를 추가해 증보판을 낼 예정이다.”

    그는 “뭔가 단단히 준비하는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그렇게 보지만 말고…”라며 허허 웃었다. 그의 측근은 “주변에서 출마를 권유하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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