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7

2012.07.23

르메트르 “볼트 게 섰거라”

프랑스 ‘백색 탄환’ 런던올림픽서 폭풍 질주 예고

  • 백연주 파리 통신원 byj513@naver.com

    입력2012-07-23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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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8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 육상선수권대회 100m 남자부 결승에서 프랑스의 크리스토프 르메트르가 10초09의 기록으로 유럽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몇 해 전 프랑스 육상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수줍음 많은 소년 르메트르가 지금은 세계 챔피언 우사인 볼트의 기록에 도전하는 ‘백색 탄환’이 됐다.

    르메트르는 1990년 6월 11일 프랑스 오트사부아 지방의 안시에서 태어나 퀼로즈에서 성장했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소년은 비교적 힘겨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룹을 지어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시합을 벌이던 체육시간에는 늘 어느 팀에도 선택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았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스포츠 전문지 ‘레키프’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항상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남의 눈을 의식해서 말하고 행동했다”며 “친구들의 따돌림에 반항할 만한 무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학급 친구들의 외면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는 일찍이 럭비와 축구, 핸드볼 등 다양한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러던 2005년 지역 스포츠 페스티벌에 우연히 참가했다. 스포츠에 열정을 지닌 청소년과 일반인이 자유롭게 각종 육상 종목을 체험할 수 있는 행사였다.

    자신의 능력을 검증해보고 싶은 호기심에 그는 모든 연령의 아마추어들이 섞여 뛰는 50m 육상 경기에 참가했다. 이것이 그가 육상계에 첫발을 내딛는 운명적 기회로 바뀔 줄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육상 코치 장 피에르 네르는 어린 그를 전격 발탁해 지역 벨레 육상클럽에 등록시켰다.

    몇 달간의 전문적인 훈련을 거치자 말 없고 조용하기만 하던 소년은 프로 선수로 성장했고, 엑스레뱅 지역에 있는 엑소아 육상협회의 정식 회원이 됐다. 그리고 지금의 감독 피에르 카라즈와 첫 만남을 가졌다. 당시 그의 100m 기록은 11초88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장속도는 눈부셨다. 한 달 후 그는 11초46으로 기록을 경신했고, 훈련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돼 100m를 10초96에 완주했다. 프랑스의 16세 미만 주니어급 육상 선수로는 드문 기록이었다.



    수줍음 많았던 소년의 무한 변신

    2007년 프랑스 육상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그는 60m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고, 200m에서는 21초08로 프랑스 청소년부 기록을 경신했다. 2008년에는 폴란드 세계 청소년 육상선수권대회에 프랑스 대표로 참가해 200m 세계 챔피언의 영광을 안았다. 그로부터 몇 주 후 열린 국내 대회에서는 100m를 10초26에 완주하며 개인 신기록을 달성했다.

    2009년은 그야말로 르메트르의 해였다. 7월 24일 유럽 청소년 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그는 개인 기록을 10초04까지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록은 프랑스 육상 역사상 최고 기록 순위 3위, 세계 육상 주니어급에서는 4위에 해당했다. 이로써 세계 24위까지 치고 올라온 그는 유럽 육상연맹에서 선정한 ‘주목되는 신인’ 타이틀을 거머쥐며 영광의 한 해를 마무리했다.

    각종 대회를 석권했지만 성인 국가대표로서의 출발은 기대에 못 미쳤다.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그는 10초24로 100m 예선을 가볍게 통과했지만 두 차례의 부정출발로 준준결승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400m 릴레이에도 참가했지만 프랑스팀은 결승 8위라는 참담한 결과에 만족해야 했다. 아쉬움을 남긴 채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오로지 훈련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1년 후 프랑스는 물론, 세계 육상 역사에 획을 그은 2010년이 열렸다. 세계대회에서 대패한 후에도 국내외 각종 대회에서 개인 기록 경신에 집중한 그는 7월 발랑스에서 열린 프랑스 육상선수권대회에서 100m 기록을 10초 미만으로 단축했다. 9초98! 이는 프랑스 최고 기록인 로날드 포뇽의 9초99(2005년)보다 빠르다. 이로써 르메트르는 세계에서 72번째,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10초 미만의 기록을 달성한 스프린터가 됐다. 그뿐 아니다. 1968년 육상계에 전자 자동계시 장비가 등장한 이래로 최단시간에 100m를 질주한 최초의 백인 선수가 됐다.

    소년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프랑스 대표로 유럽 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그는 100m에서 우승하며 1950년 에티엔 발리, 1962년 클로드 피크말 이후 유럽 대회에서 수상한 세 번째 프랑스 선수가 됐다. 200m와 400m 릴레이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최초로 3관왕이 됐다. 한 달 뒤인 8월 개인 기록을 9초97로 경신한 그는 유럽 육상연맹 ‘최고선수상’을 받으며 프랑스의 위상을 드높였다.

    끊임없이 성장한 르메트르는 2011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육상 축제 골든 갈라에서 자메이카 군단과 처음으로 정면대결을 펼쳤다. ‘유럽에서만 통한다’는 편견을 깰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100m에 출전한 그는 9초91의 볼트, 9초93의 아사파 파월에 이어 10초로 3위를 차지했다. 그를 우물 안 개구리로 여겼던 선입견이 과감히 깨졌다. 이어 6월에 열린 몬트레이 육상대회에서는 9초95로 1위를 차지한 요한 블레이크에 이어 9초96으로 2위에 오르며 개인 신기록과 프랑스 신기록을 경신했다.

    2011년 6월 30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아틀레티시마 육상대회에서는 파월이 9초78을 기록해 9초95의 그를 제쳤다. 이어 7월 8일 아레바 대회에서도 그는 자메이카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0m에서 20초21이라는 시즌 최고 기록을 세웠지만 20초03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볼트의 기록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볼트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로 100m 개인 최고 기록이 9초58이다.

    100m 최고 기록은 9초92

    프랑스 육상 팬들은 볼트와 르메트르, 너무나도 다른 두 선수가 펼칠 경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매 경기마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자유로운 모습으로 시선을 끄는 볼트와 달리 르메트르는 항상 어린아이 같은 미소와 어수룩한 말투로 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외형적으로도 차이가 크다. 두 사람 모두 장신이지만 볼트는 우람한 근육질이고 르메트르는 마른 편이다. 100m 주법과 속도를 올리는 구간도 다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와 몇 차례 경합을 벌인 르메트르는 볼트의 아성을 넘고자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육상 전문가들은 매년 그의 기록이 경신되는 추세를 감안해 앞으로 볼트를 위협하는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르메트르는 현재 프랑스 영웅이다. 여전히 수줍음 많은 그는 “요즘 길거리에 다닐 때마다 사람들이 알아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친구들의 따돌림으로 외로웠던 소년은 너무 큰 키와 마른 체구가 단거리 경주에 적합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당당히 유럽 챔피언이 됐다. “매사 소극적이어서 마음속 말을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성격인데, 달리면 묻어둔 속마음과 분노가 시원하게 표출되면서 설욕하는 기분이 든다”는 그가 런던올림픽에서 어떤 폭풍 질주를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다. 그의 100m 최고 기록은 9초9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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