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7

2012.07.23

“그래도 농업은 희망 여야 떠나 농민만 생각할 것”

최규성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2-07-23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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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과 농업이 갖는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엄중하다. 세상이 바뀌어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변하지 않는다. 먹고사는 일만큼 중요한 건 없다. 수십 년 동안 도시로만 향하던 발길이 ‘귀농’ ‘귀촌’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이치인지도 모른다. ‘주간동아’는 각계 명사를 만나 그들에게 남아 있는 농촌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기로 했다. 또한 농업과 관련한 각종 현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들어봤다.

    19대 국회 전반기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이하 농식품위원회) 위원장에 오른 인물은 최규성(63) 민주통합당 3선 의원이다. 17, 18대 국회에서 농식품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한 그는 현재 민주통합당 농어촌특별위원장도 맡고 있다.

    최 위원장의 고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곡창지대인 전북 김제다. 시내에서 약 4km 떨어진 작은 농촌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경찰이던 부친은 그가 두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머니와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그의 집안은 일제가 패망한 뒤 일본인이 갖고 있던 농지를 불하받아 농사를 지었다. 매년 농사를 지어 그 절반을 땅값으로 냈다. 1960년대까지 그랬으니 삶은 더없이 팍팍했다. 최 위원장은 “농사를 지어도 땅값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쌀을 팔아봐야 학비도 내기 힘들었다. 땅을 6필지나 갖고 있어 동네에서는 그런대로 상위권에 드는 집안이었는데도 그랬다. 봄만 되면 먹을거리가 없었고, 겨울엔 밤마다 가마니를 쳤다”고 회상했다.

    ▼ 전형적인 농민 아들인데, 농촌·농업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겠다.



    “당연하다. 대학에선 농법학회에도 들어가 공부했다. 출세하고 싶어 서울대 법대에 갔는데, 1학년 때 서울 판자촌 실태조사를 나갔다가 열 받아서 운동권에 들어갔다. 서울 판자촌에 사는 사람 대부분이 호남 사람들이었다. 고시공부를 해서는 이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왜 농민은 못사나’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조부모는 나를 볼 때마다 ‘박정희 못 이긴다. 그냥 대충 싸워라’라면서 말리곤 했다(웃음).”

    ▼ 이젠 우리나라 농업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무엇을 하고 싶나.

    “농업은 다른 게 없다. 세계화다 개방이다 하는데, 이게 다 돈이다. 소득에 도움이 된다고 방울토마토도 심고 수박도 심는데, 그래 봐야 비 한 번 세게 오면 다 망한다. 배수 펌프장 하나 잘 지어놓으면 끝날 문제인데. 농업을 기계화하려면 도로 포장이 먼저다. 농업과 농민을 위해 쓸 돈을 끌어오는 일에 매진할 생각이다.”

    ▼ 우리나라 농업도 많이 발전했다.

    “그래도 농업은 희망 여야 떠나 농민만 생각할 것”
    “개방이다 뭐다 해서 정신은 없지만, 농업은 그래도 희망이 있다. 그동안 정부도 농민과 농업을 살리는 정책을 많이 추진했다. 부정할 수는 없다. 농기계를 살 때 보조해주고 축사를 지을 때 도와주는 나라는 별로 없다. 소가 병들어 죽었다고 정부가 소 값을 보상해주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요즘은 조금 어려워졌다고 해도 소 100마리 키우면 연봉 1억 원 이상은 벌 수 있다. 이제 농민도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귀농과 귀촌, 나는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 농촌이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얘기하면 농민들이 서운해할 텐데.

    “그게 아니라 농민이 노력해야 할 부분도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정부는 물가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농업 문제를 다뤘다. 삼겹살 가격이 오르면 무관세 물량을 풀어 가격을 잡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 지금은 농산물 가격이 물가를 결정하는 시대가 아니다. 농산물 가격도 어느 정도 시장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는 2008년 쌀직불금 부당수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때 민주당 간사를 맡은 바 있다. “필요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출석을 요구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불렀다. 농민과 농업을 위한 일이라면 같은 편과도 타협하지 않았다. 동료 의원들과도 여러 번 싸웠다. 쌀직불금 부당수령은 농민 밥그릇을 빼앗는 짓이라고 그는 믿었다.

    관세로 미국 쌀 수입 막았어야

    ▼ 쌀직불금 문제 때 많이 싸웠는데.

    “그랬나. 반드시 진상조사가 필요했다. 김학용 전 의원, 이봉화 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은 내가 직접 현장조사까지 했다. 문제가 많다고 봤다. 그런데 그거 아나? 언론사 간부 중에도 부당수령자가 많았다. 특히 KBS는 8명인가 10명인가 그랬다. 그런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조선일보’는 쌀직불금 부당수령자가 한 사람도 없어 좀 놀랐다.”

    ▼ 쌀직불금 부당수령 문제는 다시는 반복 안 되나.

    “제도가 많이 개선됐다. 그래도 한 번쯤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쌀직불금은 그 자체보다 양도세 면탈 목적이 크다. 그래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자경농이 아니면 땅을 팔 때 양도세를 많이 낸다. 양도세를 면탈하려고 쌀직불금을 받아가는 것이다.”

    2004년 미국 쌀 수입 개방 문제로 논란이 일 때, 그는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좇았다. 당시 정부와 농민단체는 ‘무조건 쌀수입 반대’만 외쳤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개방하되 관세를 높이자”는 안을 내놨다. 그렇게 하면 사실상 쌀수입을 막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쌀시장 개방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다면 적극 대응하는 게 맞는다고 봤다. 시장을 개방하면서 동시에 관세율을 300~400% 매기면 사실상 수입 제한조치 효과가 있다. 그런데 정부는 10년간 최소수입물량(MMA)을 무관세로 들여오고 나머지는 막는 쪽으로 갔다. 2014년 완전 자유화하기로 하고 말이다. 형식적으로는 수입을 막았지만 매년 늘어나는 최소수입물량을 무관세로 사주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 정부와 농민단체를 더 설득할 수 없었나.

    “말주변이 없어 의원총회에서 졌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했다. 열심히 설명하면 ‘그래서 지금 미국 쌀을 수입하자는 얘기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무역회사를 30년간 운영한 사람이다. 장삿속으로 계산하면 답이 나온다.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진다. 나도 미국 쌀 한 톨도 수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농협은 더 열심히 감독해야

    ▼ 19대 국회 농식품위원회에서는 지주회사로 나뉜 농협 관련 이슈도 많을 것 같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분리됐고 지주회사도 만들어졌으니 일이 많아졌다. 여하튼 경제사업에 많이 지원하자는 취지로 정부와 농민단체가 원해서 이뤄진 일이니까 잘돼야 한다. 다시 돌이킬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농협 회장을 중심으로 농협 지주회사들이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나뉘어 있지만, 운영은 통합해서 하는 것이 좋겠다. 농협 회장에게도 업무보고 때 그렇게 말했다. 경제사업을 잘하는지에 대해서는 감독을 더 강화할 것이다. 경제사업 잘하라고 정부에서 매년 1500억 원씩이나 지원해주는 것 아닌가. 더 열심히 감독해야 한다.”

    ▼ 상임위원회 구성이 끝났다. 농식품위원회 분위기는 좋은가.

    “역대 국회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농식품위원회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오로지 ‘농민만 생각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이니 뭐니 해서 앞으로 일이 많을 텐데, 잘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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