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6

2012.07.16

그 귀한 산나물 제발 비비지 말라

울릉도의 맛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입력2012-07-16 11:1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그 귀한 산나물 제발 비비지 말라

    울릉도 식당에서 나오는 산채비빔밥. 비빔밥에 여러 산나물이 들었는데, 그 옆에 내놓은 반찬에도 산나물이 있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평소와 다른 풍경과 더불어 낯선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가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라면 그 기대와 즐거움은 더 커진다. 울릉도는 즐거운 음식 여행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린다. 강원 동해 후포항이나 경북 포항에서 뱃길로 서너 시간을 가야 닿는 그 섬에는 맛있는 무엇이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막상 울릉도 음식은 그다지 별스럽거나 맛있지 않았다. 토종 홍합인 섭, 현지에서는 따개비라 부르는 삿갓조개 같은 특이한 재료로 만드는 음식이 있긴 하지만, 갖은 양념으로 비벼 그 맛을 죽이고 있었다. 울릉도를 대표하는 오징어는 여느 동해안처럼 회로 먹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징어 내장을 끓이는 국은 다소 특이하게 보일 뿐 다시 먹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울릉도 호박엿도 요즘 호박 함량이 줄어 예전 맛이 아니다. 그나마 건질 만한 것은 산나물인데….

    울릉도 산나물은 확실히 맛있다. 울릉도 자연환경 덕분이다. 울릉도는 위도상 북쪽에 있는 편이지만 난류 영향으로 대체로 온난한 기후를 보인다. 그래서 울릉도 숲은 한반도 남녘땅과 비슷하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데, 이 눈 덕분에 나무와 풀이 잘 자란다. 나무와 풀 가운데 식용 풀, 그러니까 산나물이 끼여 있다. 봄이면 울릉도 전체가 산나물 밭으로 변한다. 봄날의 극심한 일교차는 산나물을 연하게 하고, 바다에서 올리는 해무가 섬을 수시로 덮어 산나물 향을 짙게 한다. 삼나물, 부지깽이, 미역취, 명이(산마늘), 고비, 고사리 같은 울릉도 산나물은 부드러움과 향에서 육지의 것이 따르지 못하는 그 무엇을 갖고 있다.

    울릉도 식당에서는 이 산나물을 으레 반찬으로 낸다. 육지에서는 귀하지만 울릉도에서는 흔한 것이 산나물이다. 요즘엔 산나물을 많이 재배해 그 양이 넉넉한 편이기도 하다. 사실 이 산나물 몇 종류와 울릉도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 요리 하나 정도면 훌륭한 울릉도식 밥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울릉도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내기 시작했다. 산나물이 흔하니 이를 비빔밥으로 만들어 관광객에게 팔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산나물이 맛있으니 비빔밥도 맛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비빔밥 조리법이 과연 울릉도 산나물의 맛을 극상으로 이끄는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 든다. 각종 산나물을 넣고 참기름에 깨소금, 고추장 양념으로 비비면 산나물 맛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비빔밥 안의 나물이 울릉도 산나물이든 육지 밭나물이든 각종 양념으로 비벼놓으면 그 맛이 비슷해진다.



    울릉도 식당은 산채비빔밥을 내면서도 반찬으로 또 산나물을 낸다. 그 산나물의 종류가 다른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비빔밥에 산나물이 들었을 텐데 여기에 더해 또 산나물 반찬을 내놓으니 ‘허비 밥상’이라 할 수 있다.

    지역 향토음식 가운데 제일 흔한 것이 비빔밥이다. 산간이면 산채비빔밥, 뽕나무가 많으면 뽕잎비빔밥, 약초시장이 있으면 약초비빔밥, 치즈가 유명하다고 치즈비빔밥, 멍게 난다고 멍게비빔밥, 낙지가 잡히면 낙지비빔밥…. 온갖 재료를 넣고 양념을 쓱쓱 비비기만 하면 먹을 만하니 다들 이러는 것이다.

    그러나 비빔밥은 정말 좋은 음식재료를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울릉도 산나물은 소금간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