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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저씨는 짜릿한 RC(무선조종)를 좋아해!

30~40대 키덜트, 자동차 비행기 등 모형기기 세상 주도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아저씨는 짜릿한 RC(무선조종)를 좋아해!

아저씨는 짜릿한 RC(무선조종)를 좋아해!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RC(Radio Control·무선조종) 자동차 국제대회에서 5위를 한 유재호(35) 씨. 현역 프로 볼러이자 RC 입문 15년차인 그는 7월 중 국내에서 열릴 국제대회 본선 참가를 앞두고 전의를 불태운다. “국내 예선에서 FF03(전륜구동 RC 자동차 모델) 종목에 출전해 1위로 본선에 진출하게 됐다. 지난해 5위 성적이 아쉬웠는데 올해는 꼭 우승을 노리겠다.”

유씨가 말한 국제대회는 RC 자동차부품 수출업체 한국타미야가 주최하는 ‘타미야 아시아컵’이다. 매년 아시아 8개국을 순회하며 열리는 이 대회의 본선을 한국이 12년 만에 다시 유치했다. 국내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한국 선수는 50명.

이 밖에 싱가포르, 홍콩, 대만, 필리핀 등 자국에서 예선을 거친 세계 랭킹 30위권의 아시아 선수 70명이 한국에서 열리는 본선에 참가한다. 대회 실무를 맡은 주최 측 경영기획부 윤대진 차장에 따르면, 본선에 출전하는 국내외 선수의 연령은 최연소 10세에서 최고령 62세까지 골고루 분포돼 있다. 그중 여성 참가자는 1%, 아동과 청소년이 12% 안팎이다. 나머지 참가자는 성인 남성이다.

유씨는 “RC 자동차 국제대회는 실제 차를 타고 경주하는 게 아니므로 위험하지 않고, 무선으로 내 뜻대로 자동차를 조종할 수 있어 신기하다. 대회에서 경쟁할 땐 짜릿한 스릴이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본선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긴 가뭄 끝에 굵은 장맛비가 쏟아져 폭염이 한풀 꺾인 7월 첫 일요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청을 지나 탄천으로 향하자 멀리서 쏜살같이 날아오던 비행기 한 대가 매끈하게 방향을 선회하며 창공을 가르는 모습이 보였다. 숲이 우거진 둑길을 지나 2년 전 성남시가 천변에 조성한 탄천모형비행장으로 가보자 중·장년 남성 한 무리가 떠들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 가슴 뛰는 간접 체험

이날 모인 사람은 인터넷 동호회 ‘토요비행’ 회원들로, 토요비행은 전국적으로 회원이 1만3000여 명이다. 그중 분당에 거주하는 오프라인 멤버들이 주축을 이뤄 정기모임을 가진 것. 동호회 부매니저(부회장)이자 RC 경력 10년차인 김길수(54) 씨에 따르면, 동호회 회원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RC에 관심을 갖고 취미로 즐겨온 이들이다. 김씨는 “20~30년 된 경력자도 있고 삶이 바빠 한동안 잊고 지내다 뒤늦게 다시 RC에 뛰어든 사람도 많다”면서 “남자들은 ‘우주전쟁’ 같은 공상과학(SF)영화를 좋아하고 하늘을 나는 데 관심이 많다. 그것을 직접 체험하려면 공군이 되거나 조종사 자격을 따야 하는데 현실에서 쉽지 않으니 RC를 통해 간접 체험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짜릿한 RC(무선조종)를 좋아해!

7월 1일 경기 성남시 탄천에서 정기 모임을 가진 ‘토요비행’ 회원들.

김씨의 독수리모형 RC 비행기는 눈 부분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있어 그는 대형 모니터를 통해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즉 그가 직접 하늘을 난다면 볼 수 있는 광경을 지상에서 그대로 체험하는 것이다.

분당 거주 토요비행 동호인들은 성남시 국민생활체육회 소속 항공연합회 클럽의 일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현재 항공연합회에는 비행기, 헬리콥터, 멀티콥터 등 기종별로 12개 지부가 있으며, 회원은 200여 명이다. RC 경력 7년차인 항공연합회 사무장 박창곤(37) 씨에 따르면, 항공연합회 회원들의 연령대는 초등학생부터 70대 중반까지 다양한데 그중 30, 40대 남성이 절반을 차지한다. 직업은 학생을 비롯해 의사, 교수, 사업가, 변호사, 공무원 등 다양하다. RC 비행기 10대를 보유한 박씨는 “어릴 적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면 나와 상관없고 접근하기 어려운 환상처럼 보였다. RC 비행기는 그런 환상을 충족시켜줄 뿐 아니라 내가 조종하는 대로 하늘에서 입체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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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타미야 아시아컵’ 대회.

주말이면 탄천뿐 아니라 한강 둔치 곳곳에서 무선 비행기나 자동차를 조종하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강변에는 3년 전 서울시가 공식 인가한 광나루모형비행장이 있다. 건축기사로 은퇴한 토요비행 오프라인 모임 맹석기(74) 매니저(회장)는 5년 전 탄천에서 자전거를 타다 우연히 RC 비행기를 접하고 입문했다. 그는 원래 프라모델 조립이 취미였다. 마니아인 조카가 “치매 예방에 좋다”고 권하는 바람에 시작했다 재미를 붙인 것. 그는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창공을 나는 RC 비행기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말했다.

한 마리 새처럼 자유자재로 창공을 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RC 항공기의 매력이라면, RC 자동차는 스피드와 스릴이 매력이다. 형형색색의 스포츠카가 굉음을 내며 경주장을 질주하는 모습은 마니아뿐 아니라 일반인도 강한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실제 자동차 경주 같은 짜릿한 스릴과 속도감을 맛볼 수 있는 것. RC 자동차대회에 수백, 수천 명의 관중이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RC 세계는 자유로움과 스피드에 대한 로망을 가진 대다수 남성에게 간접체험의 기회를 줄 뿐 아니라 대리만족도 선사한다. 인터넷에서 ‘RC’를 치면 ‘전동헬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무선 모형자동차 동호회 ‘온로드’ ‘RC보트’ ‘RC탱크·트럭’ ‘모형헬리콥터동호회’ ‘무선비행클럽’ 등 카페 4100여 개가 검색된다. 카페 대부분은 전국적인 동호회로,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1만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 RC 모형기기 230여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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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조종 비행기는 하늘을 날고 싶던 어린 시절의 꿈을 간접 체험케 해준다.

현재 국내 RC 동호인은 10만 명을 훨씬 웃돈다. 이 가운데 비행기와 헬리콥터 같은 항공기 동호인은 약 4만 명에 달하고 자동차는 6만5000명, 보트는 15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과거 RC 동호인은 주로 마니아들로 이뤄졌지만 4~5년 전부터 대형마트나 인터넷쇼핑몰에서 저가 중국산 RC 모형기기를 판매하면서 갈수록 RC 인구가 늘고 있다.

웬만큼 경제력을 갖춘 30, 40대 남성이 주축이 된 키덜트(kid-adult·장난감을 좋아하는 어른)가 증가하자 유통업체들은 이들을 새로운 소비문화 주체로 끌어들이려고 발 빠르게 움직인다. 서울 용산 아이파크백화점은 6월 초 키덜트 전문매장 ‘토이앤하비’를 오픈했다. 이곳에 입점한 다양한 장난감 업체 가운데 RC 모형기기 업체는 자동차를 취급하는 곳과 보트, 헬리콥터 등 여러 종류를 함께 취급하는 곳이 있다. 이들 업체가 판매하는 RC 모형기기 종류만도 230여 종.

# 수백만 원 아낌없이 지불

아이파크백화점 홍보마케팅팀 박희정 주임에 따르면, 개장 후 지난 한 달간 매장을 방문한 사람 수는 줄잡아 1만5000명에 달한다. 박씨는 “고객은 30, 40대 남성이 대부분인데 주말이면 아이들 손을 잡고 가족 단위로 매장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20, 30대 젊은 커플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한다. 올해 초 캐릭터 전문관을 새로 연 오픈마켓 11번가는 프라모델을 비롯해 RC 모형기기의 매출이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할 때 2배 이상 상승했다. 특히 경제 능력을 갖춘 30대의 구매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R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직접 RC 세계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면서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관련 업체들은 앞다퉈 각종 대회를 열고 있다. 인천광역시는 4월 ㈔한국모형항공과학협회 주관으로 송도컨벤시아에서 전국 초·중·고·대학생 및 일반인 1000여 명이 참가한 제8회 전국 청소년 실내모형항공기대회를 주최했다. 부산광역시가 주최한 ‘2012 부산국제모터쇼’에서는 부대행사로 벡스코와 한국무선조종모형자동차협회(KMRCA)가 주관한 무선조종자동차 경주대회가 열렸다.

이 밖에도 전국무선모형보트대회 등 해마다 전국에서 수십 개의 굵직한 RC 대회가 열린다. 최근엔 스마트폰에서 내려받은 애플리케이션(앱)을 조종기로 사용할 수 있는 RC 모형기기들이 출시돼 얼리어답터들의 폭발적 관심을 끈다. RC를 취미로 즐기려면 많게는 수백만 원이 들지만 어릴 적부터 품어온 은밀한 꿈을 떨치기란 쉽지 않다. RC를 즐기는 ‘아저씨’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이유다.



주간동아 2012.07.16 846호 (p40~42)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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