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1

2012.06.11

한숨 절로 나는 ‘등골브레이커’

경조사비 부담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2-06-11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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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숨 절로 나는 ‘등골브레이커’
    “봄가을이면 결혼식 축의금 때문에 허리가 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달에 쓰는 경조사비는 얼마나 될까. 통계청에 따르면 가구당 한 달 평균 5만2800원을 경조사비로 쓴다고 한다. 2005년 3만7900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40% 정도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소득증가율 33%를 넘어섰다. 경조사비가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경조사비가 대개 3만 원, 5만 원, 10만 원 단위로 매겨진 관행 탓이 크다. 더욱이 2009년 5만 원권을 발행한 이후 경조사비 최소 금액이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오르면서 그 전 같으면 5만 원 내던 곳에 10만 원을 내는 경조사비 인플레까지 발생했다.

    은퇴자들이 쓰는 생활비에서 경조사비는 무시 못 할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한 생명보험사가 50세 이상 은퇴자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은퇴자 10명 중 8명이 경조사비로 골머리를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은퇴자들이 한 번에 내는 축의금은 평균 7만 원, 부의금은 7만3000원이었다. 연간 경조사비로 지출하는 총금액은 116만 원으로 매달 10만 원 정도를 쓰는 셈이다. 별다른 소득이 없는 은퇴자들에겐 적잖은 부담일 터. 퇴직 후 국민연금 외에 별다른 소득이 없는 김성갑(63) 씨는 “봄가을이면 참석해야 할 결혼식이 한 달에 서너 건이나 된다”면서 “국민연금 80만 원 받아서 축의금으로만 20만~30만 원을 쓴다”고 말했다.

    50세 이상 은퇴자 연 116만 원 지출

    은퇴로 소득이 크게 줄었는데도 경조사비는 생각처럼 줄어들지 않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경조사비가 상호부조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과거에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고 나 몰라라 하면 욕을 먹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득이 줄어도 경조사비를 줄이기 어렵다. 거꾸로 결혼 안 한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경조사비 지출을 투자로 여기기도 한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느냐에 따라 혼주나 상주의 사회적 지위와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사회 분위기도 경조사비 부담에 한몫한다. 동네슈퍼를 운영했던 최성호(64) 씨는 “먹고살기 바빠 친구들 경조사에 자주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면서 “곧 막내아들이 결혼하는데 하객이 얼마나 올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대형화하는 경향도 문제다.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이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장례식이니 온갖 정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고급화, 대형화하면서 하객이나 조문객의 부담도 커진다는 점이다. 얼마 전 옛 직장동료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박석철(62) 씨는 “호텔에서 결혼식을 해 식대만 1인당 10만 원이 넘을 텐데 봉투에 달랑 5만 원만 넣을 수 없어 5만 원을 더 넣었다”고 말했다.

    은퇴 시기는 앞당겨지는 데 반해 결혼은 늦춰지는 것도 높은 경조사비 부담의 원인이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퇴직연령은 55세 전후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조조정과 희망퇴직 등으로 직장인이 체감하는 정년은 이보다 훨씬 이르다. 그에 반해 자녀의 결혼연령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최근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 거주하는 남녀의 초혼연령이 모두 30대(남 32.3세, 여 30세)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의 결혼연령이 높아지면서 요즘에는 퇴직 후에야 자녀를 시집장가 보내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내 자식뿐 아니라 친구들의 자식도 결혼을 늦게 해 은퇴 후 축의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숨 절로 나는 ‘등골브레이커’

    요즘은 가족끼리 치르는 ‘엄마표 돌잔치’가 대세다(왼쪽). 꽃 장식 비용만 2000만 원이라는 호텔 결혼식.

    수명연장도 부의금 부담을 은퇴 후 시점으로 몰리게 만드는 원인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망하는 연령을 최빈사망연령이라고 하는데, 한국인의 경우 최빈사망연령이 85세를 넘어섰다. 은퇴한 다음에 부모상을 치를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내 부모뿐 아니라 친구나 친지의 부모도 사정이 비슷하니 은퇴 후 부의금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경조사비를 줄이려면 결혼식이나 장례식 식대부터 줄여야 한다. 장례식만 해도 비용의 절반이 음식값이고 결혼식도 식대가 전체 비용의 60~70%를 차지한다. 식비만 줄여도 결혼식이나 장례식 비용이 크게 줄어들 테고, 그러면 비싼 밥값 신경 쓰느라 마음이 편치 않은 하객들도 부담을 덜 수 있다.

    가족 중심으로 꼭 와야 할 사람만 초대

    결혼식과 피로연을 분리해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모든 하객에게 식사를 제공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식사를 대접해야 할 사람들을 따로 모아 별도의 피로연을 갖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면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초대받은 사람 모두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가족과 가까운 지인 중심으로 치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본인의 1회 경조사비는 최소 1만 엔(약14만4000원)으로 시작해 평균 3만 엔 정도라고 한다. 사회지도층은 5만~10만 엔을 쓰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회적 문제가 될 만큼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은 꼭 와줬으면 하는 사람만 초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초대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인맥관리를 위해 경조사에 참석하는 일도 없다. 청첩장을 보내고 반드시 참석 여부를 확인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결혼 당일 하객이 얼마나 올지 가늠이 안 돼 마음 졸이는 일도 없다.

    가족 중심의 장례와 결혼 문화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자리잡을 수 있다. 자녀 돌잔치를 예로 들어보자. 3~4년 전만 해도 자녀 돌잔치에 친척과 친구, 직장동료까지 초대해 떠들썩하게 치렀다. 하지만 요즘 돌잔치는 조촐하게 가족과 함께하는 추세다. 웬만해서는 직장동료를 초대하지 않는다.

    한숨 절로 나는 ‘등골브레이커’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장례식도 가족 중심으로 치를 가능성이 높다. 앞서 살펴봤듯 평균수명이 늘면서 상주가 은퇴한 뒤 부모상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상주가 직장에 다닐 때야 조문객이 많을 수 있지만, 일단 명함이 없어지면 조문객 수도 줄게 마련이다.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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