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7

2012.05.14

“난 홍콩 거주자…‘인사 좀 하라’ 국세청 간부 은밀한 제안”

인터뷰-탈세 재판 앞둔 시도상선 권혁 회장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2-05-11 1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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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외탈세 재판 쟁점은 국내 거주 여부

    ● “‘혐의 인정하면 세금 500억으로 깎아준다’했다”

    ● 국세청 “정중한 조사… 재판서 시시비비 가릴 것”


    “난 홍콩 거주자…‘인사 좀 하라’ 국세청 간부 은밀한 제안”
    권혁(62) 시도상선 회장의 탈세 사건에 대한 첫 재판이 5월 17일 열린다. 원래 4월 19일 예정이었지만, 검찰 측 증인인 국세청 관계자들이 출석하지 않아 한 달간 미뤄진 것.

    역외탈세 사건은 국세청이 사활을 걸고 추적하는 분야다. 특히 이현동 국세청장의 의지가 대단하다. 이 청장은 차장 시절이던 2009년 11월 국세청에 역외탈세추적전담센터를 신설하고 스스로 센터장이 됐다. 국세청은 지난해 초 역외탈세담당관실을 상설조직으로 만들었다.



    권 회장 사건은 역외탈세 조사에 본격 착수한 뒤 국세청이 내놓은 대표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일단 탈세 규모가 크다. 국세청은 권 회장이 2006년부터 4100억 원 넘는 종합소득세 등을 탈루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초 국세청은 권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지난해 8월 31일 권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그가 4100억 원의 탈루금액 가운데 소득세 1600억 원, 법인세 600억 원 등 2200억 원은 탈세했고 900억 원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두 번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이때까지가 검찰 및 국세청 대 권 회장의 1라운드 전쟁이었다면 이제 시작하는 재판은 2라운드인 셈이다.

    권 회장은 1990년까지 현대자동차에 다녔는데, 주로 자동차 수송을 담당했다. 1993년 일본인 사업가들의 도움으로 중고자동차 전용선을 사서 빌려주는 사업을 처음 시작한 그는 이후 승승장구했다. 그는 한때 250척이 넘는 선박을 보유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100척 넘는 배를 정리해 지금은 128척만 운영한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재판의 쟁점은 ‘권 회장이 국내 거주자냐, 아니냐’는 것이다. 만약 권 회장이 국내 거주자가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나오면, 그간 국세청과 검찰이 제시한 증거 및 판단은 물거품이 된다. 국세청과 검찰은 △권 회장이 사실상 국내에 거주하며 기업을 운영했고 △선박 발주 과정에서 조성한 커미션을 외국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은닉했으며 △국내 기업을 해외 기업의 대리점인 것처럼 속여 개인소득세와 법인세를 탈루했다고 주장한다.

    권 회장에 대한 재판은 국세청이 지금까지 해온 역외탈세 조사에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국세청은 권 회장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조사했던 ‘완구왕’ 박종완, ‘구리왕’ 차용규 사건에서 이미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이번에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국세청은 앞으로 역외탈세 조사를 더는 진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간동아’는 재판을 앞둔 권 회장과 최근 세 번 만나 재판의 쟁점에 대한 그의 주장을 들었다. 국세청과 검찰이 작성한 고발서, 공소장도 꼼꼼히 살폈다. 그는 인터뷰에서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조사 과정에서 세무공무원들이 부적절한 처신을 보였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세무조사의 핵심 관계자가 법무법인을 통해 ‘왜 인사를 하지 않느냐’며 은밀한 만남을 제의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국내 거주자 여부 제대로 조사 안해”

    ▼ 권 회장은 국내 거주자가 아닌가.

    “아니다. 거주자 여부를 판단하려면 내가 한국에서 얼마나 생활했느냐가 중요하다. 또 내가 어디서 사업하는지, 해운업을 하면서 내가 선박 금융을 어디서 일으켰는지, 배를 소유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어디에 뒀는지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건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았다. 그런 부분을 조사해달라고 국세청과 검찰에 얘기하면 ‘그런 건 나중에 하자’고 했다. 나는 홍콩에 거주하면서 사업하는 사람이다. 내가 국내 거주자로 인정받으려면 1년 중 최소 절반 이상을 국내에 거주하면서 2년에 걸쳐 1년 이상 머물러야 한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거주한 기간은 그렇게 안 된다.”

    검찰 측 자료에 따르면, 권 회장의 국내 체류일수는 2004년 150일, 2005년 139일, 2006년 135일, 2007년 194일, 2008년 104일, 2009년 128일이다.

    ▼ 권 회장 가족은 국내에 오래 거주하지 않았나.

    “장모가 혈액암이라 집사람이 오랫동안 간병했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 거주자가 되는 건가. 한국에 오래 머물렀지만, 집사람은 일본 거류증이 있는 일본 거주자다.”

    권 회장은 2006년 4월 오랫동안 사업 기반을 다졌던 일본을 떠나 홍콩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는 “일본을 떠날 때 외국인 등록증도 반납했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2006년 6월 홍콩에서 취업허가서를 받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 국세청은 그가 일본을 떠난 뒤인 2007년 개인소득세 20억 엔 등을 부과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국세청은 그가 일본을 떠나 홍콩으로 간 시기부터 사실상 한국에 거주하며 사업을 했다고 주장한다.

    ▼ 세금을 회피하려고 일본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것 아닌가.

    “일본에서 세금을 낸 건 2007년이고, 홍콩에 간 건 2006년이다.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미래에 닥칠 세무조사에 대비해 홍콩으로 갔다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국세청은 내가 일본에 거주하던 시기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내가 홍콩으로 본사를 옮긴 뒤부터 갑자기 한국 거주자가 됐다는 주장이다. 이해할 수 없다.”

    ▼ 그럼 홍콩으로 본사와 거주지를 옮긴 이유는 뭔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홍콩에서 3년 이상 사업하면 중국 본토 진출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홍콩으로 옮겼다.”

    “국세청이 무섭지 않다”

    “난 홍콩 거주자…‘인사 좀 하라’ 국세청 간부 은밀한 제안”

    지난해 7월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는 권혁 회장.

    ▼ 국세청과 검찰은 권 회장이 선박 발주, 윤활유 구매 과정에서 받은 어드레스 커미션을 문제 삼는다(검찰 자료에 따르면, 조선사가 선박을 발주하는 선주의 요구에 따라 선박건조 대금 가운데 일부를 선주에게 리베이트로 돌려주는 것을 선박중개브로커에게 지급하는 커미션과 구별해 일명 ‘어드레스 커미션’이라고 부른다).

    “해운업을 하다 보면 커미션은 당연히 발생한다. 국제적 관례다. 배 발주 시 발생하는 커미션은 배를 발주해서 건조할 때까지 2~3년간 배 건조 과정을 감리하고 관리하는 데 쓴다. 나는 커미션을 관리하는 회사(뉴 브릿지 에이전시)를 따로 만들어 운영했다. 그 돈으로 홍콩에 직원들을 위한 아파트도 샀다. 필요하면 배 계약금으로도 썼다. 국세청은 내가 이 돈을 개인적으로 착복했다고 하는데, 절대 아니다.”

    ▼ 국세청과 검찰은 어드레스 커미션은 조선업계의 관행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아니다. 국세청과 검찰이 조선소 직원들을 불러 그렇게 진술하라고 강요했다고 들었다. 만일 관행이 아니라면 조선소들이 왜 나에게 어드레스 커미션을 줬겠는가.”

    ▼ 어드레스 커미션을 개인적으로 쓴 적은 없나.

    “2007년 일본에 세금을 낼 때 이 돈으로 낸 게 있다. 그러나 빌려서 냈고 현재 갚고 있다. 차용증이 있다. 아들 영주권 취득 자금도 내가 회사에서 빌려서 썼고, 지금 갚는 중이다. 차용증이 있다. 그리고 국세청과 검찰이 나에게 횡령·배임을 했다고 하는데,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배를 발주하는 시도홀딩과 시도탱커홀딩의 지분은 내가 100% 갖고 있다. 피해자가 없는데 어떻게 배임이 성립하나.”

    권 회장의 주장과 달리, 지분을 100% 소유한 경우에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게 현재의 판례다. 엄연히 법인격이 있는 데다, 채권자나 거래인 등 그 회사 이해관계자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국내에 재산은 없나.

    “골프장 회원권 2장을 갖고 있었는데, 국세청이 압류했다. 국내 재산은 2007년 모두 처분했다.”

    ▼ 국내 거주자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국내 재산을 처분한 건 아닌가.

    “부동산을 매각한 이유는 절을 짓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장모의 평생 소원이었다. 그래서 2002~2003년 일본에서 돈을 조금씩 송금했고, 2007년쯤 건물을 지으려고 부동산을 모두 처분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저기 흩어진 부동산을 팔기 힘들어서 삼일회계법인의 평가를 받아 홍콩의 법인(멜보 인터내셔널)에 넘겼다. 세금도 다 냈고 절도 지었다.”

    ▼ 절은 어디에 있나.

    “구기동에 있다. 문수원이라고.”

    ▼ 국세청과 검찰은 권 회장이 지속적으로 의료보험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권 회장을 국내 거주자로 판단한다.

    “의료보험 혜택 문제는 거주자, 비거주자 문제와 관련 없다. 외국인도 3개월 이상 국내에 체류하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받은 혜택보다 의료보험료를 더 많이 냈다.”

    ▼ 국세청과 검찰은 권 회장 개인 외에 시도카캐리어서비스(CCCS)라는 이름의 법인에 대해 법인세 추징을 결정했다. CCCS는 어떤 회사인가.

    “CCCS는 자동차 전용선을 운영하는 홍콩 회사다. 한국에 있는 유도해운에 포괄적 대리점 계약을 맺어 운영한다. CCCS는 페이퍼컴퍼니가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회사다. 해운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일을 하는 곳이 본사다. CCCS가 바로 배를 마련하는 회사다. 유도해운이 하는 것은 그 외의 일이다. 국세청은 홍콩 법인인 CCCS에 세금을 매기려고 강제로 CCCS를 국내 법인으로 등록시켰다. 결국 자기들이 유도해운이 본사고 CCCS는 페이퍼컴퍼니라고 해놓고선 세금은 페이퍼컴퍼니에 매겼다. 그리고 나는 CCCS를 국내에 법인 등록하는 데 동의한 적이 없다.”

    ▼ 세무조사 과정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먼저 18개월 넘게 출국금지를 풀어주지 않는다. 사업에 막대한 지장이 생겼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당시 120박스가 넘는 서류를 갖고 가서 돌려주지 않았다. 세무조사가 끝난 뒤에도 여러 차례 공문을 넣었는데 안 돌려줬다. 그리고 검찰에 우리 서류를 그대로 보냈다.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행위다.”

    ▼ 또 다른 문제는.

    “작년 4월 12일자 국세청 보도자료에는 내가 스위스 은행 등에 수천억 원의 자금을 은닉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자료 어디에도 그런 것은 없다. 한 국세청 직원은 조사 과정에서 우리 직원 가운데 하나가 회사 돈을 횡령한 것이 드러나자 나에게 ‘회장님, 저도 돈 좀 주십시오. 하하하’ 그러더라. 어이가 없었다. 또 다른 직원은 ‘한국에서 사업하려면 검찰, 국세청, 국회의원, 시민단체 같은 힘 있는 곳을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세무공무원이 할 소리인가.”

    ▼ 국세청 측이 권 회장 측에 협상을 제안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국세청 관계자가 나를 두 번이나 불러서 ‘국내 거주자라는 걸 인정하면 세금을 500억 원 정도 깎아주고, 10년에 걸쳐 분납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세무조사가 끝나가던 지난해 3~4월경의 일이다. 한 국세청 고위 간부는 우리 측 법무법인 소속 세무사를 통해 ‘왜 인사를 오지 않느냐’는 얘기를 전해왔다. 나는 ‘조용히 한번 만나자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법무법인을 통해 만날 의향이 있다는 뜻을 전했더니 그때는 또 ‘오지 마라’고 연락이 왔다. 2010년 10월 세무조사를 시작한 이후 잠시 출국금지를 해제해줘 홍콩에 갔다 온 일이 있는데, 가기 전 국세청 직원이 나에게 여러 차례 ‘국세청 간부 ·#52059;·#52059;·#52059;에게 잘 갔다 온다고 전화하라’고 종용했다. 기분이 안 좋았지만 전화했다. 그 국세청 간부는 나에게 ‘사업 잘하셔야죠’라고 말했다.”

    ▼ 국세청 직원들의 언행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하여간 보도자료 문제부터 국세청 직원들의 언행까지 모두 이번 재판이 끝나는 대로 책임을 물을 생각이다. 한국 기업이야 국세청 눈치 보느라 할 소리를 제대로 못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사업하는 사람도 아니다. 무서울 게 없다.”

    ▼ 이제 재판이 시작되는데.

    “20년 가까이 해운업을 하면서 한국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 조선소에서 70척가량을 건조했다. 금액으로는 3조5000억 원 정도 된다. 일본이 보험료가 싼데도 한국에서 매년 100억 원 정도의 보험료를 낸다. 그런 부분이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에서는 전혀 감안이 되지 않아 아쉽다.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 그리고 재판이 끝나면 세무조사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생각이다.”

    국세청 주장

    “워낙 민감한 사안… 스위스 계좌 확인 어려워”


    “난 홍콩 거주자…‘인사 좀 하라’ 국세청 간부 은밀한 제안”

    지난해 7월 13일 검찰은 시도상선의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했다.

    세무조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권혁 회장의 주장에 대해 국세청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역외탈세담당관실 관계자는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다고 충분히 예측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우리 직원들을 충분히 교육했다. 정말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재판을 앞둔 상황에서 권 회장의 주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국세청 측은 예치조사 후 압수한 서류를 돌려주지 않고 검찰로 보낸 이유에 대해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적법하게 가져간 것이다. 국세청이 내준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4월 12일자 보도자료에서 밝힌, ‘권 회장이 스위스 계좌 등에 수천억 원의 은닉자금을 보유했다’는 내용에 대해 국세청 측은 “굳이 그렇게 스위스 계좌를 강조할 필요는 없었고 재판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계좌가 확인됐는지에 대해선 “확인해주기 어렵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재판 과정에서 다 얘기가 될 부분”이라며 즉답을 회피했다.

    국세청 고위 간부가 권 회장 측에 은밀한 만남을 제의해왔다는 권 회장의 주장에 대해 국세청 측은 “그런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은밀한 만남을 제의했다는 의혹을 받는 국세청 간부는 ‘주간동아’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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