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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희숙의 미술관

돈 많이 벌고 다정다감? 5월에 아빠는 괴로워

가장의 현실

돈 많이 벌고 다정다감? 5월에 아빠는 괴로워

돈 많이 벌고 다정다감? 5월에 아빠는 괴로워

‘가족’, 레고, 1988년, 캔버스에 아크릴, 213×213, 런던 사치 미술관 소장.

남자는 자신이 사주(社主) 발뒤꿈치의 때보다도 못 한 존재라고 여기면서도 직장을 그만두지 못한다. 가족과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직장이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을 생각해 사표 쓰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아가며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가정에서도 결코 행복하지 않다. 만족을 모르는 가족이 가장에게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가장에게 요구하는 첫 번째가 무제한 쓸 수 있는 신용카드다. 가족은 갈고리 손을 가진 고리대금업자 같다. 가장이 신용카드만 쥐어주면 가족은 편안하고 행복해한다.

가정에서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가장을 그린 작품이 파울라 레고(1935~)의 ‘가족’이다. 여자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침대 끝에 앉은 남자의 옷을 벗기고, 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아이는 남자의 바지를 벗긴다. 창가에 서 있는 소녀가 그 모습을 지켜본다.

물 주전자가 놓인 고급스러운 탁자와 장식장이 있는 방은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살림살이다. 동시에 등장인물이 가족임을 암시한다. 창가의 꽃무늬 커튼과 그림이 그려진 장식장은 안주인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나타내며, 머리에 매단 분홍색 리본은 외모에 신경 쓰는 여자임을 보여준다. 상냥한 미소는 겉모습을 중시하는 여자의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며, 남편 손을 움켜쥔 건 남편에게 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동시에 남편의 저항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읽을 수 있다.



남자에게 몸을 밀착한 채 바지를 벗기는 여자아이의 모습은 근친상간을 암시한다. 창가에 선 소녀의 얼굴이 기도하는 손동작과 대조적으로 냉혹해 보이는 것은 가족 내 방관자를 의미한다. 소녀의 그림자는 가족의 어두운 일면을 상징하며 방을 밝게 비추는 햇살은 진실이 언젠가 드러나고 말 것임을 경고한다. 동물을 짓밟으면서 칼을 휘두르는 남자와 그 위에 우아하게 서 있는 여자가 그려진 장식장의 그림이 다시 한 번 이 가정의 불손함을 강조한다.

남자가 돈을 잘 번다고 가장으로 대접받는 건 아니다. 가족은 돈은 많으나 시간이 없는 가장,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는 가장을 가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가족에게 인정받으려면 돈도 많고 시간도 많으면서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이어야 한다. 돈만 열심히 버는 남자는 가족에게 늘 손님이다.

돈 많이 벌고 다정다감? 5월에 아빠는 괴로워

(왼쪽)‘벨렐리 가족’, 드가, 1858~1867년, 캔버스에 유채, 200×250,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오른쪽)‘친구와 함께 있는 벗은 남자’, 프로이트, 1978~80년, 캔버스에 유채, 작가 소장.

가정에서 소외당하는 가장의 현실을 그린 작품이 에드가 드가(1834~1917)의 ‘벨렐리 가족’이다. 벨렐리 남작은 임신한 아내, 아이들과 떨어져 앉아 그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아내의 시선은 남편을 외면하고 먼 곳을 향해 있다. 남편과 아내의 엇갈린 시선은 부부 사이에 심리적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벨렐리 남작은 법률가이자 언론인으로, 드가의 고모인 라우라와 정략 결혼했다.

그림 중앙, 의자에 앉은 채로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보는 소녀 모습은 집안에서 비교적 중립적인 위치에 있음을 암시한다. 소녀의 다리가 어머니 쪽을 향해 있는 것은 심정적으로 어머니에게 좀 더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녀의 다리를 묘사한 부분은 일상의 순간적인 모습을 포착하는 드가 작품의 특징을 보여준다. 벨렐리 남작이 아내와 아이들과 떨어져 앉은 모습은 가장이 가정에서 소외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가는 이탈리아 여행 중 벨렐리 남작의 초대를 받아 피렌체를 방문했을 당시 여러 점의 드로잉을 해뒀다가 파리 작업실에 돌아와 작품을 완성했다. 드가가 이 작품을 처음 제작할 당시에는 남작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모습으로 그리려 했다. 그러나 부부의 갈등으로 가족이 행복하지 않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려고 남작을 귀퉁이에 그려 넣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가족 초상화에 혁명을 가져왔다. 당시 가족 초상화라고 하면 행복한 모습만 담았기 때문이다.

가정이 사회보다 더 냉정할 때가 있다. 무조건 희생을 강요하고, 희망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 가차 없이 가장에게서 등을 돌린다. 젊음을 바친 가장의 희생은 기억하지 않는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결국 늙고 무능한 가장의 눈물과 고통, 그리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 친구다. 늙으면 마음이 맞는 친구가 꼭 있어야 하는 이유다.

중년 남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이 루시안 프로이트(1922~2011)의 ‘친구와 함께 있는 벗은 남자’다. 좁은 소파에 한 남자가 잠옷을 입은 채 누워 있고, 또 한 남자는 벌거벗은 채 앉아서 졸고 있다. 언뜻 동성애자로 보이지만 벌거벗은 남자의 페니스가 발기되지 않은 점에서 이들이 동성애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벌거벗은 남자가 누워 있는 남자의 발목을 잡고, 누운 남자가 무릎을 벌거벗은 남자의 얼굴에 댄 모습은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는 친구 사이임을 나타낸다. 낡은 소파는 남자들의 경제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잠든 모습은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가정의 달 5월,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지만 가족이 언제나 희망은 아니다. 가장의 희망은 늘 돈이다. 요즘 중년 남자의 화두는 아내와 자식 모르게 돈을 관리하는 것이다. 돈을 벌지 못하는 순간 가장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가족으로서 대접받기도 힘드니까.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주간동아 836호 (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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