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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선진국이 보는 한국 제품 평가 06

수술받아야 할 ‘의료서비스’

수술 건수·사망 비율·환자 돌봄 종합평가 필요…전문가 시민 참여, 정부와 공공기관 함께 나서야

  •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암예방관리 전공)

수술받아야 할 ‘의료서비스’

수술받아야 할 ‘의료서비스’

고려대 안암병원 로봇센터 의료진이 로봇을 이용해 암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암에 걸리면 어느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할까. 아무리 멀고 비용이 많이 들어도 가장 좋은 병원에서 치료받도록 하고 싶은 것이 환자 가족의 심정이다. 그러면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이 가장 좋은 병원일까. 서울의 큰 병원은 아니지만 오래 다녀서 친근한 병원이 더 좋을까. 암으로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이라면 ‘좀 더 큰 병원에 모시고 갔으면 살렸을지도 모르는데’라는 죄책감이 한 번쯤 들었을 것이다. 대체 어느 병원이 좋은 병원인지 속 시원히 알려줬으면 하는 게 국민의 바람이다.

얼마 전 주요 일간지에서 국내 병원의 암 치료 성적표를 발표했다. 한 신문은 수술 건수를 근거로, 또 다른 신문은 사망 비율로 순위를 발표하거나 등급을 매겼다. 언론에서 강조했듯이 수술을 많이 하는 병원이 의료서비스 질도 높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신문은 환자 중심의 돌봄을 주요 평가기준으로 내세웠다. 세 개 언론사가 경쟁적으로 이 같은 보도를 낸 건 암 치료 질에 대한 국민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부응하듯 5년 생존율을 넘어 10년 생존율을 발표해 홍보하는 병원도 있고, 고가의 의료장비를 설치했다고 광고하는 병원도 있다. 언론이 제시한 성적표에 병원들은 민감하게 반응한 반면, 정작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정부나 공공기관은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기준 제각각 평가, 환자 혼란

미국의 경우, 민간보험사가 고객에게 수술 건수가 일정 수준 이상인 병원을 이용하도록 권한다. 의료서비스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진료 건수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진료시스템이 구축돼 조직적으로 운영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의료서비스 질은 진료 건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의료서비스 질은 구조, 과정, 성과로 구분해 평가할 수 있다. 수술 건수는 구조 항목의 중요한 지표다. 최근 병원들이 환자중심의 돌봄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과정 항목의 지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망 비율은 생존율, 삶의 질과 함께 의료서비스 질을 평가하는 가장 기본적인 성과 항목 지표다. 구조, 과정, 성과 항목 중 어느 하나만으로 의료서비스 질을 평가할 수 없으며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일부 지표만으로 병원을 평가할 경우 환자와 그 가족에게 불안,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수술받아야 할 ‘의료서비스’

여성 암 환자가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요가수업을 받고 있다.

무작정 큰 병원에 가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큰 병원이라고 해서 항상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다. 수술을 받기 위해 기다리다 수술이 지연될 경우 오히려 생명이 단축될 수도 있다. 지방에 우수한 병원이 있는데도 서울에 자리한 큰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면서 유발되는 각종 비용과 환자 간병의 어려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미국 시사지 ‘유에스 뉴스(US News)’에서는 매년 구조, 과정, 성과 항목과 환자안전지표를 종합해 병원 순위를 매겨 발표한다. 구조 항목은 매년 시행하는 미국병원협회 조사 자료와 전문 인증기관들의 자료를 근거로 정하는데 여기에는 자격을 갖춘 인력 구성, 핵심 기술과 선진화된 돌봄서비스, 특정 진료 건수가 포함된다. 특히 암 분야에서는 유전 검사 및 상담, 호스피스, 무균실, 통증관리 프로그램, 완화의료, 환자자가통증조절 제공 여부가 들어간다. 과정 항목은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 매우 복잡하다. 미국 의사 82만 명 중 조건에 맞는 전문의 자격을 갖춘 20만 명에서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16개 전문 분야별, 지역별로 50명씩 총 3200명을 고른다. 이들에게 설문지를 발송해 지역, 비용과 무관하게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환자를 가장 잘 치료하는 병원’을 추천하게 한다. 성과 항목은 위험도를 감안한 1개월 내 사망률을 주요 지표로 삼는다. 미국 병원들은 매년 순위를 높이려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그 덕분에 의료서비스 질이 개선된다.

인간적 돌봄은 중요한 의료 행위

우리도 미국처럼 언론이 주도하고 전문가가 참여한 평가위원회가 객관적인 자료에 입각해 의료서비스 질을 평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인력 구성, 서비스 내용, 진료 건수, 사망률이나 생존율, 명성, 안전성 등 종합 지표를 만들어 매년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함으로써 국민이 병원을 선택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언론사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와 공공기관이 타당한 평가지표를 만들어 공개할 것을 권한다. 전문가와 더불어 국민 눈높이를 대변할 수 있는 시민 등이 참여하고 공공기관의 자료를 분석하면 가능한 일이다.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정해주는 것이 가장 쉬우면서도 시급한 일이다.

진료 건수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의료서비스 질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다고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환자보호단체(Patient safety organization)로서 근거 중심의 환자 의뢰를 주장하는 립프로그(Leapfrog) 그룹은 췌장절제술은 1년에 13건 이상, 관상동맥우회로수술은 450건 이상을 ‘안심’ 수준으로 본다. 주요 수술에 대해 치료 성과를 근거로 기준치를 정하는 것은 선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병원당 수술 건수와 적정 수준의 수술 건수를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는 위암, 간암, 대장암에 대해 병원별 수술 사망률, 평균 입원일 수와 평균 진료비도 공개할 예정이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므로 전문가가 참여해 좀 더 공개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의료서비스 수준은 수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진료 건수가 일정 수준을 넘는 경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제공하는 환자 돌봄의 질이 결정적이다. 우리나라는 값비싼 검사와 약 처방은 과잉인 반면, 환자에 대한 전문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돌봄은 소홀한 편이다. 돌봄에 대해서는 별도의 건강보험수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려면 반드시 의료진의 전문적인 돌봄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수가를 인정해야 한다. 인간 생명을 다루는 의료진에게 인술(仁術)을 요구하면서 약처방과 검사에 대해서만 의료 행위로 인정해 수가를 적용해서야 되겠는가. 과잉진료는 환자에게 해가 되지만, 의료진의 인간적 돌봄은 질병을 이겨내고자 하는 환자의 희망과 의지를 되살리는 강력한 치료 효과를 발휘한다. 세계 최고의 암전문 병원 엠디앤더슨암병원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바로 의료진의 인간적 돌봄이다. 병원을 평가하는 데 이 점을 반드시 반영해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12.02.06 823호 (p28~29)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암예방관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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