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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선진국이 보는 한국 제품 평가 04

독일 소비자 기관 ‘슈티프퉁 바렌테스트’ 깐깐한 체크…소송도 겁 안 낸다

연 2000여 제품 대상 180건 검사…생산업체 개입 철저 차단, 권위 탄탄

  • 독일 튀빙엔=박성윤 통신원 bijoumay@daum.net

독일 소비자 기관 ‘슈티프퉁 바렌테스트’ 깐깐한 체크…소송도 겁 안 낸다

독일 소비자 기관 ‘슈티프퉁 바렌테스트’ 깐깐한 체크…소송도 겁 안 낸다
독일 정부가 1964년 설립한 상품테스트재단은 매년 2000여 제품을 대상으로 약 180건의 상품 검사를 실시한 뒤 그 결과를 소비자에게 제공해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 소비자 주권 향상에 기여해온 이 재단의 사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한국판 컨슈머리포트’가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으로 손색이 없다.

여간해선 공공기관을 신뢰하지 않는 독일인이 그래도 신뢰하는 곳을 꼽으라면 경찰과 적십자사 두 곳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믿고 따르는 단체가 있으니 바로 슈티프퉁 바렌테스트(Stiftung Warentest)다. 우리말로 ‘제품검사재단’이라는 뜻을 지닌,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소비자 기관이다.

베를린에 있는 이 재단은 1964년 독일 정부가 설립했다. 제품의 품질을 비교 검사해 평가를 내리고 그 결과를 소비자에게 공개함으로써 제품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매년 2000여 개 제품을 대상으로 약 180건의 검사를 실시한다.

검사 대상 제품 직접 구매

검사 범위는 매우 넓다. 식품, 화장품, 가전제품, 주방용품은 물론이고 1990년대부터는 은행, 보험, 증권, 교육, 여행 같은 서비스 제품으로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심지어 공공건물의 안전을 검사하기도 한다. 설립 이후 48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과학적 방법으로 품질을 검사하고 제품에 관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를 돕는다는 설립 취지에는 변함이 없다.



제품검사재단의 조직은 이사장 1명, 이사장을 포함해 7명으로 구성된 경영위원회, 그리고 소비자대표, 경제인대표, 전문가대표가 각각 6명씩 참여하는 자문위원회, 실무를 담당하는 291명의 직원으로 이뤄졌다. 실무는 다시 제품 검사, 출판, 마케팅 세 부분으로 나뉜다. 경영 및 자문위원은 4년마다 바뀌며 재임 가능하다.

독일 소비자 기관 ‘슈티프퉁 바렌테스트’ 깐깐한 체크…소송도 겁 안 낸다
재단의 주요 업무인 제품 검사는 제품검사재단이 독자적으로 주관한다. 먼저 소비자 요구와 시장 현황을 반영해 검사할 주제를 계획하면, 자문위원회가 검토한 후 결정을 내린다. 이후 실무 담당자들이 검사 종류, 방법, 예산을 포함한 구체적인 검사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각계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한다. 이때 검사 제품을 결정하는 주요 기준은 제품의 시장점유율과 가격경쟁력이다. 일반 소비자가 일상에서 구하고 살 수 있는 제품을 주로 선택하는 것이다.

검사 제품은 재단 직원이 슈퍼마켓, 전문매장, 백화점, 온라인상점 등에서 직접 구매하며, 검사용으로 구매한다는 사실을 철저히 감춘다. 생산업체로부터 검사용 제품을 제공받지 않고 검사 진행이 생산자에게 알려지지도 않기 때문에 검사 단계에서 생산자가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이후 제품은 제품검사재단이 위탁한 외부 실험실로 보내지고, 검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재단 출판부로 보고된다. 생산자는 자사 제품이 검사받았다는 사실을 검사가 끝난 후에나 통보받는데 이때도 순위나 종합 평점은 비밀에 부친 채 자사 제품의 검사 결과만 알 수 있다. 생산자로부터 이의가 접수되면 재검사를 실시한다.

마지막으로 결과를 소비자에게 보고하는 일은 편집부가 담당한다. 검사 결과를 기초로 평점을 매기고 소비자가 알기 쉽게 표를 만들거나 검사의 중점을 설명해준다. 점수는 0.5점이 최고점, 5.5점이 최하점이며, 평가는 우리 식대로 표현하자면 수·우·미·양·가 총 다섯 단계로 이뤄진다. 매달 말 발행하는 잡지 ‘테스트(Test)’와 ‘피나츠테스트(Finaztest)’는 모든 검사의 최종 보고서인 셈이다.

순위나 평점만큼이나 소비자에게 중요한 것이 제품에 관한 올바른 정보다. 제품검사재단은 결과와 평가를 공개할 때 반드시 검사 종류, 방법, 항목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평가의 근거를 항목별로 자세히 밝힌다. 한 예로, 한국 여성에게도 잘 알려진 독일의 유명 천연화장품 제조사인 닥터 하우쉬카(Dr. Hauschka)의 커버크림은 모든 항목에서 ‘우수’ 평가를 받았으나 종합 평점에서 5점을 받아 ‘불합격’된 적이 있다(2011년 10월). 미생물 검사 결과, 제품을 사용하면 할수록 곰팡이균과 박테리아가 증식했기 때문이다.

제품검사재단의 설명에 따르면, 무방부제 화장품의 경우 살균작용을 하는 다른 성분이 들어 있어야 하는데, 이 제품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원칙적으로 미생물 검사가 종합 평점에 반영되는 비율은 5%지만, 이 경우 불합격의 결정적 요소가 됐다. 독일 여성이 고가의 명품 화장품에 무작정 현혹되지 않는 이유도 화장품을 종류별로 끊임없이 검사하고, 그 정보를 공개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커버크림 검사에서는 50ml에 6.25유로(약 9000원)인 니베아 제품이 1.6점으로 1등을 차지함으로써 2.9점으로 12등을 한 36유로(약 5만3000원)짜리 시세이도 제품보다 품질 면에서 월등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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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보다 소비자 권리가 먼저

그렇다면 독일 소비자는 물건을 사기 전에 늘 제품검사재단의 검사 결과를 확인할까. 제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제품검사재단이 발행하는 잡지 가격이 권당 4.50유로(약 6600원)고 인터넷사이트(www.test.de)에서 제공하는 정보도 모두 유료라 정보접근성이 다른 매체보다 특별히 높다고 볼 수는 없다. 대개 소비자는 비슷한 제품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야 할 때 기왕이면 제품검사재단의 평가 결과를 광고에 활용하는 제품을 선택하는 정도다.

생산업체는 제품이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경우 그 결과를 광고에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제품검사재단이 정한 엄격한 조건을 따르고 로고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니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 광고에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TV나 여행 상품처럼 고가인 경우 소비자는 유료정보를 이용하거나, 주변 사람 또는 판매원을 통해 간접적으로 검사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제품검사재단이 독일 소비자의 신뢰를 얻은 데는 그만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애국심이 상처를 받는다 해도 제품 품질 검사는 가차 없다. 2006년 제품검사재단은 월드컵경기가 열리는 축구장 12곳에 대해 품질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베를린, 겔젠키르헨, 카이저슬라우테른, 라이프치히 구장은 ‘매우 불합격’, 다른 4개 구장은 ‘불합격’ 판정을 받은 것이다. 좁고 경사진 층계, 부족한 데다 있다고 해도 그나마 너무 긴 비상통로, 실족사고 위험성 등이 불합격 판정의 이유였다. 월드컵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이러한 결과를 발표하자 월드컵 유치 관계자들은 “새로운 경기장 건축 이론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제품검사재단에 맹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기장 안전시설을 재점검해 문제점을 개선했다. 제품검사재단의 중립성과 신뢰성은 더욱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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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 제품은 판로까지 막혀

제품검사재단의 권위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 생산업체가 검사 결과에 반박해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매년 평균 6건에 달하지만, 지금까지 재단이 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시장에서 제품검사재단은 이미 권력이다. ‘우수’ 제품은 매출이 급증하는 반면, ‘불합격’ 제품은 판로가 막힌다. 특히 중소업체에게 검사 결과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그럼에도 제품검사재단의 견해는 분명하다. “불량 제품은 품질을 개선해야 한다.”

제품검사재단이 정부나 생산업체의 눈치를 보지 않고 모든 검사를 독자적으로 기획, 실행하면서 그 결과를 자유롭게 공개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재정이 독립해 있기 때문이다. 총 재정의 86%는 출판 사업으로 마련하고, 나머지 14%는 정부 내 식품소비자부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출판 사업은 매달 검사 결과를 보고하는 잡지 판매와 인터넷사이트 운영, 그리고 특정 주제별 단행본 출간 및 판매로 이뤄진다. 잡지 판매부수는 매달 75만 부 정도고, 잡지를 포함한 출판 사업 전체 매출은 연간 약 4000만 유로(약 588억 원)에 이른다(2010년 기준). 독립성 확보의 핵심은 모든 출판물과 인터넷사이트에 상품 생산업체의 광고를 전혀 싣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제품검사재단 검사가 얼마나 철저한지는 최근의 세탁기 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검사팀은 각 제조사의 동일 제품을 3대씩 구입하고 이 3대를 동시에 총 1680회에 걸쳐 가동시켰다. 1680회면 매주 3∼5회 세탁기를 돌릴 경우 약 9년간 사용한 횟수다. 검사 항목도 35개에 달한다. 결과를 보면 놀랍게도 총 14개사 제품 가운데 보쉬(1.7점)와 지멘스(1.7점), 밀레(1.8점)에 이어 LG세탁기와 삼성세탁기(1.9점)가 좀처럼 받기 힘든 1점대를 받았다(표 참조). 삼성 세탁기의 경우 세제 칸이 작고, 소음이 다소 있다는 점이 감점 요인으로 작용했다.

슬로베니아 고렌예(Gorenje)와 중국 하이어(Haier) 제품은 각각 모터 손상과 세탁력 불량, 누수로 5점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생활가전제품의 경우 전통적으로 품질을 인정받은 독일과 일본 제품이 평가에서 여전히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과 LG 제품이 꾸준히 검사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은 이들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높다는 의미고, 점수 또한 양호한 편이어서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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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금 ‘갤럭시탭’ 최고 제품 선정

혹시 독일 재단이라서 한국이나 중국 제품을 견제하려고 박하게 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태블릿PC 검사에서 삼성의 갤럭시탭 10.1이 애플의 아이패드2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을 보면 제품검사재단의 중립성과 소비자 중심주의를 확신할 수 있다. 독일 뒤셀도르프 법원이 삼성 갤럭시탭 10.1에 대해 아이패드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독일 판매 금지 처분을 내리자 제품검사재단은 “다른 패드 컴퓨터 역시 그렇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며, 삼성 갤럭시탭 10.1을 최우수제품으로 선정했다. “삼성이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금지이지만, 다른 판매상이 파는 것은 아무 문제없으므로 시중에서 살 수 있고, 특히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경우 전혀 문제없다”며 구매 방법도 친절하게 알려줬다.

삼성 갤럭시탭 10.1은 화질과 글자 선명도, 카메라 기능에서 아이패드보다 우수하지만, 충전지 수명(8시간 10분)이 아이패드(8시간 40분)보다 약간 짧고, 개인용 컴퓨터(PC)와의 동기화 기능, 인쇄 기능도 아이패드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용량 확장이 불가능하고, USB 등 외부장치와의 연결단자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됐다.

제품검사재단이 검사용으로 구입한 수많은 제품은 나중에 어떻게 처분할까. 냉장고, 카메라, 자전거, 매트리스 등 검사에서 살아남은 제품은 석 달에 한 번 열리는 경매를 통해 일반인에게 판매한다. 경매 수입은 매년 적게는 5만 유로, 많게는 25만 유로에 달한다.

식품에 관한 진실이 실망스럽기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딸기요구르트를 검사한 결과, 시판하는 25종 가운데 스위스 에미(Emmi)사 제품만 향료나 색소, 방부제 없이 순수 천연딸기 15%로 만들었다. 시판하는 독일 제품 대부분이 평균 11%의 진짜 딸기를 함유했지만 딸기향, 색소, 방부제를 첨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태블릿PC나 스마트TV보다 오히려 매일 먹고, 입고, 바르는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올바른 사용법, 그리고 품질 검사 결과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기사에 언급한 통계 중 검사 결과를 제외한 나머지 통계는 제품검사재단의 인터넷사이트 www.test.de에 나와 있는 자료에서 인용한 것임.



주간동아 2012.02.06 823호 (p22~25)

독일 튀빙엔=박성윤 통신원 bijoumay@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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