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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무역보험기금, 고갈 사태 오나

부실심사 연이은 보증사고로 고갈 우려…정부 출연금 줄고, 회수 포기 채권 늘어 ‘이중고’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무역보험기금, 고갈 사태 오나

무역보험기금, 고갈 사태 오나

올해 국정감사에서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이국철 회장(가운데)의 SLS조선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간 무역 1조 달러 시대가 열렸다. 우리나라는 12월 5일을 기점으로 수출입 합계 1조 달러를 돌파한 세계 9번째 국가가 된다. 일등공신은 수출이다. 한국 경제에서 수출의 비중은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대비 52.7%에 이를 만큼 절대적이다. 하지만 수출에는 위험이 따른다. 국내 기업이 수출계약에 따라 물건을 건넸음에도 수입업체로부터 돈을 못 받을 수도 있고, 수출금융을 제공한 금융기관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을 제거하고 수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출보험제도다. 한국무역보험공사(이하 공사)는 단기수출보험, 환변동보험 등 다양한 수출보험제도로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의 수출을 지원해왔다.

수출의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해온 공사지만, 최근 대형 보험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무역보험기금(이하 기금) 고갈 우려라는 적색 신호가 켜졌다. 공사의 당기순손실액은 2008년 4311억 원에 이어 2009년 3127억 원, 2010년 7492억 원을 기록했다. 최근 3년간의 당기순손실이 1조4930억 원에 달한다.

3년간 당기순손실액 1조4930억 원

그 결과 2007년 2조 원에 이르던 기금 규모는 지난해 1조1541억 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처럼 기금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무역보험기금 배수(보험책임잔액÷기금누계)도 악화한 상황이다. 정부는 선진국의 평균 무역보험기금 배수(10배가량) 수준을 맞추려고 2007년 이후 8100억 원의 출연금을 내놓았다. 하지만 손실이 늘면서 기금은 대폭 준 반면, 보험책임잔액은 2배 가까이 늘어 기금 배수는 2007년 27.4배에서 지난해 78.3배로 대폭 증가했다. 그나마 정부 출연금도 감소 추세를 보여 공사의 시름은 한층 깊어졌다. 올해 정부 출연금은 지난해보다 500억 원 줄어든 1000억 원이며, 2012년에는 300억 원으로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기금 손실이 늘어나게 된 결정타는 선수금 환급보증(RG)을 선 중소 조선사의 연쇄 도산이다. 정권 실세 로비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SLS그룹 이국철 회장의 SLS조선에서 5957억 원의 손실을 본 데 이어, 세광중공업 1537억 원, 21세기조선 1240억 원 등 조선사 7곳에서 3년에 걸쳐 총 1조837억 원의 손실을 봤다.



공사 측은 기금 손실이 커지는 것에 대해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공사 관계자는 “당기순손실이 큰 것은 회계상 그렇게 보일 뿐이다. (손실 발생으로 인한) 대손충당금을 쌓고, 보유한 헤지 물량의 평가손실이 발생해 당기순손실이 커졌지만 공사를 움직이는 핵심인 영업수지는 양호하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부실 보증은 결과론적일 수밖에 없다”며 공사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실한 조선사 지원도 당시 민간금융에서 조선사에 대한 지급보증을 중단했기 때문에 정책적 판단에 따라 했다는 주장이다. 공사 측의 설명이다.

“심사 과정에서 꺼림칙한 기업과의 거래를 끊으면 금방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수출보험은 무역 유지라는 정책적 목적을 갖고 있다. 일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수출보험 계약을 맺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공사를 만든 것 아니겠나?”

하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공사의 정책적 특수성을 인정하더라도 심사가 명백히 부실해 손실을 본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꼬집었다. 부실심사는 곧바로 기금 손실로 이어지는 만큼 제대로 된 심사가 필수다. ‘조사-인수-보상-사후관리’로 이어지는 수출보험 업무처리 절차에서 공사는 보험 가입 대상 기업이 일정한 요건을 구비했는지 확인하고 수출업체와 수입업체에 대한 신용조사를 벌인다. 수출업체는 재무제표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수입업체는 공사의 해외 지사, 해외 신용조사기관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해 등급 평가를 매긴다. 이후 국가 신용등급이나 경제 상황을 고려해 보험금 한도를 설정한다.

하지만 3월에 발표된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공사는 일부 중소 조선사에 RG를 해주면서 제대로 된 심사를 하지 않은 채 과도하게 한도를 책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례로 SLS조선은 2007년부터 최하위 재무신용등급인 G등급을 받아 RG가 취소되거나 신규 RG 발급을 거부당할 정도로 부실이 심했지만, 2008년 1월 공사는 돌연 선박 27척의 RG보험(인수 한도 6억 달러)을 인수했다. 이 가운데 16척을 기한 내 인도하지 못하는 보험사고가 발생해 4949억 원 손실을 봤다.

정책적 판단으로 보험을 인수했다면 사후에라도 제대로 실태조사를 벌여야 했지만 이마저도 게을리했다. 오히려 SLS조선의 실제 공정이 지연되는데도 보증한도를 늘렸다. 결국 같은 해 11월 SLS조선의 RG보험을 추가 인수했다가 선박 2척에서 보험사고가 발생해 893억 원의 추가 손실을 봤다.

완전 잠식 최악 시나리오 우려도

무역보험기금, 고갈 사태 오나

무역보험공사는 2009년 3월 판매 부진과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미국 서킷시티가 파산해 단기 수출 보험 상품 1393억 원의 피해를 봤다.

단기 수출보험도 비슷한 상황이다. 단기 수출보험은 수입업체의 신용도가 주요 평가항목이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반월공단의 작은 업체가 애플에 수출할 때, 삼성전자나 반월공단 기업의 신용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바이어인 애플의 신용도를 보고 판단한다. 그러나 공사는 단기 수출보험을 팔면서 수입업체를 부실하게 심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2009년 미국 서킷시티 기업 파산으로 1393억 원 피해를 본 것을 비롯해 2007년 이후 단기 수출보험 상품 중 100억 원 이상 거액의 보험사고가 발생한 8개 수입업체의 신용등급을 평가한 결과를 보면 4개 사가 B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사는 A, B, C, D, E, F등급은 보험을 정상으로 인수하고, G등급은 거래외 등급이므로 정책적 판단이나 일정한 요건 충족 시에 한해 보험을 인수한다. 공사가 수입업체를 평가하는 데 고의로 평가를 부실하게 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우수등급인 B등급을 매긴 업체에서 100억 원이 넘는 손해가 발생한 만큼 평가에 중대한 과실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김태환 한나라당 의원은 “거액 보험 한도 건에 대해 수입업체의 등급 평가를 다시 실시해 거액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부실심사로 보증사고가 발생하면서 회수를 포기한 채권도 증가했다. 공사의 채권액은 8월 현재 5조3390억 원. 이 중 27.8%인 1조4829억 원가량만 회수했다. 나머지 3조8561억 원 중 회수를 포기한 종결 및 상각채권은 1조3073억 원이며, 현재 추심이 진행 중인 채권은 2조5488억 원이다.

공사 측은 “종결채권은 부실자산 과다계상 방지를 위해 회계상 종결 처리를 한 것일 뿐, 채권 행사를 종결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매년 채권 회수금이 꾸준히 들어와 영업이익으로 반영된다는 것. 특히 해외 채권의 경우 주요 채권국 클럽인 파리클럽을 통한 채무재조정 협상과 출자전환, 외교관계 등을 활용해 채권을 추심한다는 설명이다. 공사 관계자는 “해외 11개 지사가 있으며 각국의 업계 1, 2위 추심회사와 협약을 맺거나 현지 변호사를 고용해 끝까지 채권을 추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채권 회수율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못하면 기금이 완전 잠식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금 심사부터 채권 회수까지 종합적인 리스크 관리 대책을 새롭게 수립해 기금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국정감사 때마다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주간동아 2011.11.14 812호 (p36~37)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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