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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 고수’ 이건의 도발

폭락의 고통, 상승 박탈감…전투보다 전쟁에서 이겨라

투자를 위한 게임 한판

  • 이건 ‘대한민국 1%가 되는 투자의 기술’ 저자 keonlee@empas.com

폭락의 고통, 상승 박탈감…전투보다 전쟁에서 이겨라

이번에는 게임을 해보자. 때로는 장황한 설명보다 간단한 게임이 쉽게 피부에 와 닿는다. 빌 셜시스의 ‘당신의 펀드매니저를 해고하라’에 나오는 상자 고르기 게임은 투자서적이 널리 인용하는 유명한 사례다. 이 내용을 조금 다듬어 소개하고자 한다.

상자 고르기 게임

먼저 연습게임이다. 당신은 돈을 담은 봉투 10개 가운데 하나를 골라 가질 수 있다. 봉투 겉에는 금액을 적어놓았다. 어느 봉투를 고르겠는가.

폭락의 고통, 상승 박탈감…전투보다 전쟁에서 이겨라
당연히 100만 원이 든 봉투를 고를 것이다. 정답이다.

이제부터는 본게임이다. 이번에는 게임을 조금만 바꿔보겠다. 위의 봉투에서 금액을 모두 지우고 위치를 바꿔놓는다. 단, 80만 원이 든 봉투 하나에만 80만 원이라고 표시해놓았다. 당신은 어느 봉투를 고르겠는가.



폭락의 고통, 상승 박탈감…전투보다 전쟁에서 이겨라
폭락의 고통, 상승 박탈감…전투보다 전쟁에서 이겨라
당신은 80만 원이 든 봉투를 고를 것이다. 왜? 100만 원을 고르려고 덤비면 80만 원도 안 되는 봉투를 잡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일부러 모험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당연히 80만 원이 든 봉투를 집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그런데 고급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전문가가 다가와 달콤한 목소리로 제안한다.

“봉투 고르는 일은 봉투 고르기 전문가에게 맡기십시오. 제가 첨단 기법을 동원해 100만 원짜리 봉투를 골라 드리겠습니다. 저는 ‘백발백중 봉투 고르기 비법’의 저자이며 케이블 TV의 ‘대박 리포트’에도 고정 출연하는 스타 강사입니다. 유명 탤런트 A씨, 프로 스포츠선수 B씨도 제 고객이죠. 어린애도 고를 수 있는 80만 원짜리 봉투 따위는 쳐다보지도 마시고, 100만 원 대박을 노리십시오.”

이어서 얼버무리듯 몇 마디를 덧붙인다.

“수수료는 10만 원이고요, 선불입니다. 아주 운 나쁜 경우에는 10만 원짜리 봉투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80만 원 봉투는 인덱스펀드 상장지수펀드(ETF)고, 전문가가 제안하는 100만 원 봉투 고르기는 주식형 펀드를 비롯한 유행 상품이다. 물론 100만 원 봉투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80만 원에 못 미칠 때가 훨씬 많고, 심지어 10만 원짜리 봉투가 걸려도 수수료를 돌려받지 못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확실한 80만 원에 만족한다.

그렇다면 ETF는 만능일까. 세상에 완벽한 상품은 없다. 아마도 가장 덜 나쁜 상품 정도가 될 것이다. ETF에도 극복해야 할 문제점이 있다. 먼저 시장이 폭락하면 ETF도 폭락한다. 1997년 말 외환위기, 2000년 기술주 거품 붕괴 사태, 2007년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때는 ETF에 투자한 사람도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물론 개별 종목 중에는 반 토막, 반의반 토막 난 주식도 많았고, ETF의 손실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렇더라도 폭락장에서 받는 고통은 절대로 가볍지 않다. 실제로 겪어본 사람은 안다.

폭락의 고통은 투자자가 반드시 치러야 하는 당연한 대가다. 그러나 폭락의 고통을 피하려는 간절한 소망은 모든 초보자가 지닌 야성적 본능이기도 하다. 친절한 금융회사는 원금 보장형 상품도 개발하고, 주가가 얼마 이상 폭락하지 않으면 손해 보지 않는 파생 상품도 내놓는다. 하지만 이런 상품은 짜지 않은 간장이요, 맵지 않은 고추장이다. 짠맛이 싫다면 간장을 사지 말아야 하고, 매운맛이 싫다면 고추장을 사서는 안 된다. 고유의 맛을 빼버린 간장과 고추장은 값만 비쌀 뿐, 맛과 기능을 상실한 얼치기 상품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이 주는 시장수익률 대부분은 금융회사로 넘어간다.

손실의 고통을 맛볼 각오가 없다면 주식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 엉덩방아 찧기가 두렵다면 스케이팅을 배울 수 없고, 물 먹기를 두려워해서는 수영을 배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연아는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지만 여전히 엉덩방아를 찧고 천하의 박태환도 여전히 물을 먹는다. 투자의 대가 역시 폭락장에서는 상당한 손실로 고통을 받는다.

초보자가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손실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종목 분산과 시점 분산이다. 모든 종목에 투자하고, 여러 시점에 걸쳐 나눠 사는 방법이야말로 손실의 고통을 줄이는 정공법이다.

폭락의 고통, 상승 박탈감…전투보다 전쟁에서 이겨라

폭락의 고통은 투자자가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대가다. 주요 지수의 급락으로 폐허 같은 분위기를 보인 뉴욕증권거래소.

이익의 기쁨 1, 손실의 고통 2.5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시장이 강세장에 접어들면 대박 종목이 속출한다. 따블, 따따블 종목이 대거 등장한다. 입사 성적이 나보다 못했던 동기 김 과장의 대박 소식에 갑자기 배가 아파온다. 과거 내게 못되게 굴었던 옆 부서 이 부장이 돈을 벌었다는 소식까지 들으면 시장이 과연 정의로운지 의심스럽다. 다들 상승장에서 한밑천 잡는데, 나만 굼벵이처럼 느려터진 ETF를 붙들고 속을 태운다. 식사시간마다 종목 이야기가 꽃을 피우고 회식 자리에서는 대박 이야기가 넘쳐나는데, 나는 입 다물고 앉아 있어야 한다.

남의 대박 소식에 그렇게 애태울 필요는 없다. 대박 이야기에는 적잖이 거품이 끼었기 때문이다. 고스톱 판에서는 많이 잃었다고 엄살 부리는 편이 유리하지만, 투자를 논할 때는 대박을 자랑하고픈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야 체면이 서고 똑똑해 보인다. 손실 본 종목이 많아도 대박 난 종목만 이야기한다. 투자 세계에서는 ‘망한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아프더라도 전투 몇 개는 내주어야 한다. 때때로 찾아오는 폭락의 고통과 상승장에서의 박탈감은 필연적으로 내주는 전투로 봐야 한다.

주가는 사람을 홀리는 묘한 마력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산 종목이 오르면 자기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내리면 틀렸다고 생각한다. 늘 남의 떡이 커 보이며, 그래서 지켜보던 다른 종목이 오르면 갈아타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따라서 거래하기 편하다는 ETF의 장점은 치명적 유혹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만 하면 언제든 사고팔 수 있다. 일반 펀드 같으면 귀찮아서라도 내버려둘 테지만, 가격이 실시간으로 바뀌고 순식간에 갈아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끊임없이 신경 쓰기 쉽다.

폭락의 고통, 상승 박탈감…전투보다 전쟁에서 이겨라
주가는 대개 철없는 하수의 조울증이 빚어내는 결과며, 주인을 따라나선 강아지의 산책 경로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 기업 이익과 성장을 바라보고 투자한 동업자라면, 주가가 오르내린다고 동업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사람이 느끼는 이익의 기쁨이 1이라면 손실의 고통은 2.5나 된다. 주가는 자주 들여다볼수록 손해 보게 마련이다. 장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믿는다면, 사두고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이건은 은행에서 펀드매니저로 국내 주식과 외국 채권 및 파생상품을 거래했고, 증권회사에서 트레이딩 시스템 관련 업무도 했다. 지금은 주로 투자 관련 고전을 번역한다.



주간동아 2011.11.14 812호 (p34~35)

이건 ‘대한민국 1%가 되는 투자의 기술’ 저자 keonle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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