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2

2011.06.20

‘구글월렛’ 떴다…지갑 굿바이

전자지갑 서비스 8월부터 본격 시작…글로벌 기업 앞선 도전에 국내 업체 대응책 고심

  • 김현수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입력2011-06-20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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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월렛’ 떴다…지갑 굿바이
    5월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구글의 기자간담회에 오사마 베디어 결제담당 부사장이 나타났다. 구글의 전자지갑 서비스인 ‘구글월렛(Google Wallet)’을 시연하기 위해서다. 구글월렛은 스마트폰을 사용자의 ‘지갑’으로 만들어주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다. 구글은 구글월렛으로 세계 모바일 결제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고 밝혔다. 8월경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과 글로벌 시장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신용카드에서 열쇠까지 원스톱으로

    A씨는 여름에 입을 반바지가 필요했다. 컴퓨터로 구글에서 ‘청 반바지, 너무 짧은 것 말고’라고 검색했다. ‘아메리칸 이글’이란 청바지 브랜드의 20% 할인쿠폰이 나왔다. 지갑(wallet)에 저장하기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스마트폰에 쿠폰이 저장됐다.

    들뜬 마음으로 아메리칸 이글 매장으로 쇼핑하러 가는 길. 혹시 주변에 또 다른 할인혜택을 주는 곳이 없나 스마트폰으로 찾아봤다. 스마트폰에 할인쿠폰이 뜬다. 한국의 ‘티켓몬스터’와 같은 일종의 소셜커머스 ‘구글 오퍼스(Offers)’ 덕분이다.

    청바지 매장에서 원하는 반바지를 찾아낸 A씨. 곧장 계산대로 갔다. 카드 리더기 가까이 스마트폰을 갖다 댔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세 가지가 동시에 처리됐다. 카드 결제와 20% 할인쿠폰 적용, 그리고 멤버십카드 포인트 적립이 이뤄진 것. 곧이어 스마트폰에 영수증이 떴다.



    이상은 베디어 부사장이 5월 26일 시연한 구글월렛의 서비스 내용이다. 이날 발표를 주도한 구글의 스테파니 틸레니우스 상거래담당 부사장은 “구글은 스마트폰이 디지털 신용카드와 쿠폰, 영수증, 멤버십카드 등을 담는 미래의 지갑이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신용카드뿐 아니라 항공권, 영화티켓, 신분증, 멤버십카드, 열쇠까지도 스마트폰에 담겠다는 게 구글의 계획이다.

    이런 서비스는 구글 혼자서 만들 수 없다. 먼저 모바일 결제가 가능한 스마트폰이 있어야 하고, 전자 신용카드와 이를 읽을 수 있는 카드 리더기(동글)가 필요하다. 또한 이 카드 리더기를 둔 가맹점도 있어야 한다. 휴대전화 제조사, 결제 앱, 금융회사 ,결제시스템, 유통회사 등 다양한 사업자와 협력해야 가능하다.

    구글월렛이 가능한 스마트폰은 삼성전자가 맡았다. 먼저 무선근거리통신(NFC)을 탑재한 ‘넥서스S 4G’(미국 통신사 스프린트 출시)에서 구글월렛 서비스가 가능하다. NFC는 10cm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2대의 휴대전화 또는 휴대전화와 다른 전자기기가 데이터를 주고받도록 돕는 기술이다.

    씨티은행이 구글월렛에 신용카드를 장착했다. 씨티카드 가입자가 아닌 사람은 구글의 선불카드를 이용할 수도 있다. 미리 인터넷을 통해 돈을 충전해두면 현금처럼 쓸 수 있다. 스마트폰에 들어간 씨티카드와 구글 선불카드를 읽을 수 있는 카드 리더기는 마스터카드가 맡았다. 마스터카드는 자사의 비접촉식 결제시스템인 ‘페이패스’와 구글월렛이 호환되도록 했다. 마스터카드의 결제시스템은 전 세계 31만 가맹점에 설치돼 있다.

    이렇게 수많은 사업자가 소비자의 전자지갑에 관여하면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통신사, 금융회사 등 모든 모바일 결제 서비스 참여 업체가 각각의 고객 정보 기밀을 유지하면서 전자지갑을 통한 전자 상거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 기술이 필요하다. 이 기술은 한국의 SK C·C가 맡았다. SK C·C는 미국의 퍼스트데이터와 공동으로 구글에 ‘TSM 솔루션’을 공급한다.

    사실 구글월렛의 개념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국내에서도 모바일 전자지갑의 개념이 오래전부터 소개돼왔기 때문이다. 특히 NFC칩이 탑재된 갤럭시S2가 나오면서 전자지갑 서비스가 속속 선보이고 있다. KT는 4월 전국 롯데마트에서 롯데신용카드 결제, 쿠폰 사용, 멤버십 적립을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올레 터치’ 앱을 내놓았다. 5월에는 전국 카페베네에서 종이쿠폰 대신 쓸 수 있는 ‘모바일스탬프’ 서비스도 선보였다. 커피를 마시면 스마트폰에 ‘도장’이 찍히고, 도장 개수에 따라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SK텔레콤도 지난해 하나SK카드와 함께 가입자를 위한 모바일카드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KT의 올레 터치 앱은 롯데카드를 사용해 롯데마트에서만 쓸 수 있다. 하나SK 모바일 카드는 전국 홈플러스 매장과 코엑스몰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서비스가 제한적인 이유는 카드 리더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결제가 가능한 리더기 수가 적다. 일반적으로 리더기는 카드사가 설치하는데, 통신사에 이익이 되는 서비스를 위해 카드사가 공짜로 리더기를 설치할 동기가 부족하다. 통신사가 국내 금융회사와 하나씩 제휴를 맺고, 일일이 가맹점에 리더기를 설치하다 보면 시간도 오래 걸리는 데다 국내용 서비스에 머물기 쉽다.

    스마트폰 지갑도 애플vs구글 싸움

    ‘구글월렛’ 떴다…지갑 굿바이

    통신사와 기업 간 다양한 제휴를 통해 발전이 기대되는 한국의 전자지갑 서비스 시장.

    구글월렛이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전 세계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의 약 36%를 차지하는 구글을 중심으로 씨티은행, 마스터카드,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사업자가 뭉쳐 빠른 시간 내에 세계 시장에 침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스터카드의 결제시스템이자 카드 리더기인 ‘페이패스’는 전 세계 31만 가맹점에 있고,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모바일 결제 시장에 거대한 ‘구글 진영’이 생긴 셈이다. 구글은 “누구나 자유롭게 구글월렛의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성을 지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글은 구글월렛의 결제 수수료에서 단 한 푼도 가져가지 않는다. 그 대신 맞춤형 광고 등에 활용할 소비자 정보만 얻는다. 앱 장터인 안드로이드 마켓을 공짜로 열어둔 것과 같은 이치다. 구글월렛의 문을 열어두면 새로운 글로벌 금융회사와 유통회사, 항공사, 전자열쇠 회사 등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리라 보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세계 모바일 결제 시장이 2014년까지 2450억 달러(약 265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애플도 향후 새로운 아이폰에 NFC 칩을 내장해 모바일 결제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은 구글-마스터카드 연합에 맞서 ‘애플-비자카드의 제휴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친다. 이 때문에 국내 사업자들은 NFC 시장마저도 구글과 애플이 양분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스마트폰의 헤게모니를 쥔 애플과 구글이 글로벌 금융회사, 유통회사와 손을 잡기 시작하면 시장 장악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KT 관계자는 “한국의 전자지갑 서비스가 국내용에만 머문다면 의미 없다”며 “구글월렛이 자극제가 돼 국내외에서 좀 더 활발한 제휴와 협력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KT와 SK텔레콤은 해외 통신사와 협력해 전자지갑의 글로벌 표준을 만들고, 해외 시장에서도 바로 호환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겠다는 전략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구글보다 더 무서운 게 애플이다. 애플은 단말기까지 직접 만들기 때문에 창의적인 서비스를 단말기에 꼭 맞춰 내놓을 수 있다”면서 “한국의 전자지갑 서비스가 구글이나 애플 진영에 포섭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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