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6

2017.05.03

경제

SK ‘사회성과 인센티브’로 사회적 기업 생태계 이끈다

SK그룹,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 평가해 인센티브 지급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5-02 13: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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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도시바 반도체 부문 인수보다 더 중요합니다.”
    4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제2회 사회성과 인센티브 어워드’. 이날 행사에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기자들에게 이 말을 첫마디로 던졌다. 최 회장이 20조 원 투자 의사를 밝힌 도시바 인수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이것’은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다.

    2015년부터 SK그룹이 지원하고 있는 ‘사회성과 인센티브’는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평가해 금전적으로 보상해주는 것이다. 최 회장은 “국민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에 세금을 낸다. 그와 마찬가지로 SK그룹은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쓴 기업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 즉 사회성과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인센티브 지원의 핵심은 새롭게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계량화해 평가하느냐는 것이다. SK그룹은 기업의 사회적 가치도 이윤처럼 기업 평가지표의 하나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인센티브로 사회적 기업들 성장세

    사회성과 인센티브 추진단(추진단)은 이날 행사에서 93개 기업에 48억 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사회적 기업 관련 좌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빈집을 리모델링해 시세의 80% 수준으로 임대하는 ‘두꺼비하우징’, 버려진 프린터 토너를 재생하는 ‘심원테크’, 벽화 등으로 슬럼화된 도시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공공미술프리즘’ 등이 사회적 기업의 모범 사례로 소개됐다.

    최 회장은 이날 좌담회 패널로 참석해 사회적 기업가 및 학계 전문가들과 사회성과 인센티브의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최 회장은 사회적 기업과 관련해 2014년 직접 집필한 저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이야기가있는집)에서 사회적 기업을 사회 문제의 ‘맞춤 해결사’라 평했다. 그는 ‘사회적 기업은 정부의 공공성과 영리 기업의 효율성이라는 장점을 두루 갖춘 융합적인 조직이며, 정부 기능과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영역의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썼다.



    최 회장은 이 저서에서 ‘SPC(Social Progress Credit)’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SPC는 기업이 매년 결산을 통해 납부할 세금을 정하듯,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그 결과와 연계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 사회적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이윤 창출 부담을 덜어준다면 사회적 가치를 더 많이 만드는 데 힘을 기울일 수 있다는 취지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제안으로 2015년  추진단을 만들었다. 추진단은 인센티브 사업에 참여할 사회적 기업을 모집해 1년 단위로 사회적 가치를 평가한 뒤 소정의 지원금과 경영 컨설팅 등을 3년간 인센티브로 제공하고 있다. 추진단은 △일자리 창출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서비스 제공 △환경 문제 해결 △생태계 문제 해결 등 4개 분야로 나눠 각 분야 기업이 활동을 통해 생산한 사회적 가치를 평가한다. 인센티브 재원은 SK그룹이 2011년 사회적 기업을 돕고자 설립한 사회적 기업 ‘행복나래’의 지원금으로 마련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새로운 기업 생태

    인센티브 사업에 대한 사회적 기업의 반응은 뜨겁다. 추진단에 따르면 사회성과 인센티브에 참여한 사회적 기업은 2015년 44개에서 지난해 93개로 2배 이상 늘어났다. 평가 결과 이들이 생산한 사회적 가치도 103억 원에서 201억 원으로 증가했다. 2015년 1기 사업부터 참여한 사회적 기업이 생산한 사회적 가치는 2015년 평균 2억2000만 원에서 지난해 3억 원으로 증가했다. 또한 지난해 여기에 참여한 사회적 기업의 75%가 2015년에 비해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냈다.

    사회적 기업이 성장하면서 주변의 일자리도 늘어났다. 사회성과 인센티브 사업에 참여한 사회적 기업의 임직원이 2015년 1117명에서 지난해 1368명으로 늘었다. SK그룹의 기업 평가지표를 바탕으로 이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환산하면 60억4000만 원에서 84억1000만 원으로 증가한 것. 이외에도 다른 3개 분야에서 1년간 창출한 사회적 가치도 적게는 2.5배에서 많게는 8배가량 늘어났다.

    추진단이 2015년 인센티브를 받은 사회적 기업이 이를 어디에 썼는지 조사했더니 기존 사업 재투자 및 신규 사업 투자(42%)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인건비(20%), 복리후생(12%), 부채 상환(9%), 시설·환경 개선(8%)이 뒤를 이었다. 게다가 이 기업들의 매출액도 2015년 총 740억 원에서 지난해에는 900억 원으로 1년 만에 160억 원 증가했다. 이날 최 회장은 “사회적 기업의 성과와 성공 사례, 연구개발 실적을 축적하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 사회적 기업의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SK그룹은 단순한 금액 지원이 아닌, ‘각 기업의 실적 평가를 바탕으로 차등 지원’을 하고 있다.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사회적 기업의 성과를 평가하는 이유는 새로운 사회적 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평가를 통해 각 사회적 기업의 건전한 경쟁을 꾀하고 나아가 평가 자료를 공신력 있는 지표로 만들어 일반 영리기업이 사회적 기업에 합리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

    최광철 SK사회공헌위원장은 이날 행사에서 “사회성과 인센티브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동기 유발, 사회적 기업의 지속 가능성 증대, 착한 투자 확대 및 사회적 기업 참여 확산 등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앞으로는 일반 영리기업도 재무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토대가 마련될 수 있도록 사회적 기업의 생태계를 발전시켜가겠다”고 밝혔다.

    좋은 의도의 사업이지만 일각에서는 기업이 생산한 사회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의문도 있다. 사회적 가치 추구는 대부분 불특정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성과 평가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 회장은 “평가가 어렵다고 지표를 만들지 않은 채 대충 지원하는 것보다 일단 지표를 만들어 역량을 평가한 뒤 문제가 있으면 계속 수정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저서에서 ‘현재 활용되고 있는 기업 회계 기준도 산업 현장의 오랜 고민과 수정을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 사회적 가치 측정도 마찬가지다. 시행하며 지속적인 수정과 보완을 거친다면 회계 기준처럼 공신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 평가는 이윤과 사회적 가치 양 축으로

    SK그룹의 사회적 기업 후원이 좋은 성과를 보이자 다른 기관도 사회성과 인센티브 사업을 통해 사회적 기업 지원에 나섰다. 올해부터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민간 금융사인 신협중앙회가 투자자로 참여했다.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로 사회적 가치를 생산한 사회적 기업에게 ‘혁신추구상’을 수여하고 사업 기회를 확장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인센티브 지급 종료 이후 영리기업이 사회적 기업의 투자자로 참여하는 ‘착한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최 회장은 “기업이 돈을 버는 도구로만 인식되는 것이 큰 문제다. 각 기업이 사회적 가치 추구를 위해 노력하는 부분도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며 “한국 기업 평가에도 ‘Double Bottom Line’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원래 ‘Bottom Line’은 재무제표의 맨 끝 줄에 쓰는 ‘결산’을 의미한다. 앞에 ‘Double’을 붙인 것은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두 번째 Bottom Line으로 삼아 기업의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SK그룹은 사회적 기업 지원 외에도 직접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사회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SK그룹은 저소득층 결식아동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는 사회적 기업 ‘행복도시락’과 저렴한 가격의 초등학교 방과후 교육 기업인 ‘행복한학교’, 수익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는 ‘행복나래’ 등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최근 SK그룹 주요 계열사가 정관에 ‘사회적 가치’를 포함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최 회장은 정관 변경에 대해 “재벌이나 대기업은 자산이 많은 반면, 사회적 기업은 자산이 적어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꽤 있다. 이번 정관 변경은 160조 원에 이르는 그룹 자산을 사회적 기업과 공유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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