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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의 ‘고시촌’에서 젊은이들의 ‘대학동’으로

고시생 감소와 세련된 음식점·카페 등장으로 달라진 신림동 고시촌 모습

수험생의 ‘고시촌’에서 젊은이들의 ‘대학동’으로

수험생의 ‘고시촌’에서  젊은이들의 ‘대학동’으로

몰라보게 변한 서울 관악구 대학동 ‘신림 고시촌’ 거리. 이국적인 식당과 카페 등이 대거 입점해 있다. [박세준 기자]

“독서실이 빠르게 비어가고 있다. 신림 고시촌이 수험생만을 위한 거리라면 쇠락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신림 고시촌’이라 부르는 서울 관악구 대학동과 신림동 인근에서 3년째 행정직 5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최모(29) 씨의 말이다. 로스쿨 도입으로 줄어들던 고시촌의 사법시험 수험생은 지해 9월 헌법재판소의 사법시험 폐지 합헌 판결로 상당수가 시험 준비를 그만뒀다.

게다가 1월 더불어민주당에서 행정고시 폐지를 골자로 한 공무원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하자 수험생의 고시촌 탈출 러시가 이어졌다. 수험생을 상대로 장사하던 가게들의 타격은 컸다. 자연히 고시촌은 쇠락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이곳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지갑이 얇은 고시생을 위한 저렴한 식당이 사라지는 대신, 이국적이고 독특한 음식점이 하나 둘 자리 잡으며 골목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



“여타 번화가와 달리 조용해서 좋아요”

수험생의 ‘고시촌’에서  젊은이들의 ‘대학동’으로

학원과 독서실이 모여 있는 거리에서는 여전히 학원 전단지가 붙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김도균 기자]

4월 22일 주말 오후 찾은 신림 고시촌 입구는 한산했다. 대형마트나 저렴한 길거리 음식 등 수험생이 이용할 만한 가게가 많았지만, 수험생으로 보이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골목에 나와 있는 몇몇 사람은 대부분 인근 주민이었다. 한 달 전 고시촌 근처에 월세 방을 구했다는 회사원 김모(27) 씨는 “대학생 때부터 죽 마포동, 서교동 인근에 살았는데 최근 월세가 너무 올라 부담스러워 이곳에 방을 구했다. 전에 살던 곳에 비해 교통은 조금 불편하지만 월세가 저렴하고 동네도 조용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공부하는 공간이 아닌, 생활 터전으로 신림 고시촌을 선택한 사람은 김씨 외에도 많았다. 서울시 부동산정보 제공 사이트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조사에 따르면 고시촌 인근 단독·다가구의 월세 거래 건수는 사법고시 폐지 합헌 결정이 난 지난해 3235건으로 2015년 936건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1년째 고시촌 인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문모(25·여) 씨는 “1년 전만 해도 손님이 대부분 수험생이라 도시락이나 즉석밥을 사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회사원으로 보이는 손님이 늘면서 주류 판매량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고시촌에 사는 사람이 달라지자 골목 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수험생을 위한 백반 위주의 음식점이 멕시코, 스페인 음식 등 이국적인 음식점과 수제맥주를 판매하는 주점, 세련된 카페로 바뀌고 있는 것. 저녁시간이 가까워지자 가게의 빈자리는 손님으로 빠르게 채워졌다. 한 초밥가게 앞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정도였다.

이날 친구들을 만나려고 신림 고시촌을 찾았다는 정모(26·여) 씨는 “다른 번화가처럼 카페, 음식점 등 다양한 가게가 있지만 붐비거나 시끄럽지 않아서 좋다. 게다가 다른 곳에 비해 음식값도 저렴한 편이라 신림 고시촌에 자주 온다”고 말했다. 최근 번화가에 우후죽순 들어선 인형뽑기방도 두 블록 건너 하나씩 찾아볼 수 있었다. 

몇 달 새 고시촌이 번화가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데는 주변 상권의 높은 권리금도 한몫했다. 2월 말 신림 고시촌에 음식점을 연 윤모(37) 씨는 “고시촌은 서울대입구역 인근 번화가와 비교했을 때 임차료나 권리금이 훨씬 저렴하다. 평일에는 고시생이나 인근 주민을 상대로 장사하고, 주말에는 관악산 인근을 찾는 나들이객을 상대로 하면 좋겠다 싶어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밝혔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인근 신흥 상권으로 ‘샤로수길’(신사동 가로수길과 ‘샤’로 보이는 서울대 정문 조형물의 합성어)이라 부르는 서울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 관악로 14길의 상가권리금은 33㎡ 기준 5000만~8000만 원선. 여기에서 1km 남짓 떨어진 신림 고시촌의 상가권리금은 2500만~3000만 원선에 불과하다.

신림 고시촌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이모(47) 씨는 “지난해 사법고시 폐지 등으로 고시 수험생이 줄어 임대료 등이 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최근 7, 9급 공무원시험 준비생이나 로스쿨 변호사시험 재수생이 빠르게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밝혔다.
4월 23일 오전 다시 찾은 고시촌 인근 고시원과 학원 거리에서는 무채색의 트레이닝복에 큰 백팩을 멘 수험생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저렴하게 식사 해결할 곳이 없어요”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고시촌에서 공부하는 수험생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4년째 5급 공무원 행정직 일반행정직렬 시험(행정고시)을 준비 중인 박모(30) 씨는 “수험생이 줄어드는 것은 음식점 분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고시촌 입구부터 ‘고시식당’이라는 저렴한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고시촌 안쪽으로 들어와야 겨우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씨의 얘기처럼 학원이나 고시원 근처에서는 ‘고시뷔페’ ‘고시백반’ 같은 식당이 한두 곳 눈에 띄었지만, 고시원과 조금만 멀어져도 이런 음식점을 찾기 어려웠다.

1년 전까지 신림동에서 고시식당을 운영했다는 장모(47·여) 씨는 “고시식당은 많은 학생이 찾아와야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데, 지난해 사법고시 폐지 발표 이후 도통 저녁 장사가 되지 않았다. 다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늘었다고는 하는데 피부로 느낄 수 없었다. 아마 학원에 등록하는 수강생만 늘고 실제 거주하는 수험생은 줄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수험생활 3년째인 유모(28) 씨는 “고시식당이 줄어들어 마땅히 식사를 해결할 곳이 없다. 요즘 주말에는 거의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7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최근 신림 고시촌으로 넘어온 임모(26·여) 씨는 “(노량진에 비해) 신림 고시촌이 조용하고 수험생도 열심히 공부하는 등 면학 분위기가 더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저렴한 식당이 부족하고 스터디를 할 카페도 많지 않은 등 불편한 점도 있다”며 아쉬워했다.

대형 고시원 인근의 한 문구점 주인은 “신문을 보니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후보가 고시촌을 창업촌으로 만든다고 공약하던데, 창업촌보다 공무원 채용 인원을 늘려주거나 공무원시험 수험생을 위한 정책을 폈으면 싶다. 고시촌에서 10년 가까이 장사하고 있는데 최근 몇 년간 고시촌에 들어오는 수험생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7.05.03 1086호 (p36~37)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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