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6

2017.05.03

경제| 취업대란, 청년은 살고 싶다

‘보조금 잿밥’만 관심 국비 지원 취업학원

교육은 염불일 뿐 정작 직업훈련은 뒷전… 처벌로 문 닫으면 교육생이 피해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5-02 10: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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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노동부는 2011년부터 직업훈련을 받길 원하는 취·창업준비생이나 새로운 직업을 찾는 실업자에게 ‘내일배움카드’(배움카드)를 통해 소정의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일자리를 찾는 이들의 취업 교육비 부담을 줄여주고자 정부가 만든 취업지원책이지만, 직업훈련기관으로 선정된 일부 학원이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훈련생의 시간과 돈만 빼앗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수준별 수업이 이뤄지지 않거나 당초 공지한 수업시간을 지키지 않는 등 일부 학원이 안일하게 직업훈련 과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훈련생의 신고나 직업능력심사평가원의 감사를 통해 수준 미달인 직업훈련기관을 퇴출시키면 오히려 훈련생들이 피해를 보는 시스템도 문제다. 처벌받은 학원의 직업훈련기관 자격이 취소되면, 그곳에 다닌 일수만큼 훈련생의 교육비 지원액이 차감돼 차제에 다른 직업훈련을 받을 때 제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움카드는 고용노동부가 신규 채용을 희망하는 취업준비생이나 구직을 원하는 실업자 등에게 발급하는 일종의 바우처 카드다. 인당 연간 최대 200만 원의 교육·훈련비가 지원되며, 직업훈련 희망자가 고용노동부의 직업훈련 포털사이트 ‘HRD-Net’에서 원하는 직업훈련 과정을 찾아 등록한 뒤 교육비를 지불할 때 비용의 일부가 배움카드에서 차감되는 방식이다.



    “직업훈련원인지, 지역문화센터인지”

    한 푼이 아까운 취업준비생이나 실업자가 저렴하게 직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제도지만, 이에 불만을 가진 훈련생도 많다. 직업훈련기관마다 훈련의 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 지난가을 배움카드로 회계·세무 관련 직업훈련 과정을 수강한 김모(29) 씨는 교육기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중단했다.



    김씨는 “회계·세무 프로그램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하는 수업이었는데, 훈련생 가운데 컴퓨터를 켜지도 못하는 사람이 3분의 1이었다. 당연히 수업 진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고, 수업 내용도 직업훈련에서 지역문화센터 컴퓨터 강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수강을 그만뒀다”고 밝혔다.

    배움카드는 다른 취업지원책에 비해 지원 대상이 매우 넓다. 나이 제한이 따로 없고, 이미 기업에 고용돼 돈을 벌고 있더라도 기간제 근로계약자이거나 휴직 중이라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배움카드를 발급받고 원하는 교육과정을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훈련생의 권리다. 따라서 일정한 직무능력이나 배경지식이 필요한 수업에 초심자가 대거 들어오는 일이 간혹 벌어진다.

    강사의 능력 부족으로 강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2015년 초 창업을 위해 배움카드를 활용해 요리 관련 직업훈련을 받은 정모(34) 씨는 “요리 분야를 처음 접해 모르는 게 많았다. 그래서 레시피에 관해 강사에게 질문했는데, 재료로 쓰는 생선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등 훈련생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강사의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훈련교사자격증이 없어도 제한 없이 직업훈련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현재 직업훈련기관에서 훈련생을 가르치는 강사(4만5000여 명) 가운데 훈련교사자격증을 취득한 경우는 16%에 불과하다. 이에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직업훈련 시장에서 훈련교사의 비중을 확대하고자 훈련기관 인증평가 및 과정심사 시 훈련교사자격증 취득자의 배점 기준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7월 무렵 정보기술자격(ITQ) 취득 과정을 수강한 임모(23·여) 씨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교재가 아닌, 학원에서 만든 듯한 교재를 사용했는데 필요한 부분이 많이 누락돼 있었다. 강사의 설명도 명확지 않아 교육을 그만두고 따로 교재를 사 독학으로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밝혔다.


    “잘못은 기관이 했는데 피해는 학생이…”

    일부 기관은 임의로 훈련시간을 변경하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겨울 설계프로그램 관련 직업교육을 받은 양모(26) 씨는 “교육 중간에 시간표가 전면 수정됐다. 학원 측에서는 강사의 개인 사정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전에 훈련생들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강의시간을 변경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업훈련기관의 관리·감독 업무를 맡은 직업능력심사평가원 조사에 따르면 2015~2016년 2년간 집계한 직업훈련 과정의 문제 적발 사례 545건 가운데 훈련 내용과 시간에 관한 문제가 35%, 훈련 교재 부실 문제가 18%로, 절반 이상이 훈련 내용과 관련한 위반 사항이었다.

    만약 직업훈련 중 직업훈련기관의 교육이 적절하지 못하거나 당초 공지된 내용과 다르다면 훈련생은 해당 기관을 지방고용센터에 신고할 수 있다. 이러한 신고를 독려하고자 2010년부터 고용노동부는 ‘직업능력개발사업 부정행위 신고 포상제도’를 운영 중이다. 신고자는 근로자직업능력 개발법 제57조에 의거해 50만~100만 원 포상금을 받게 된다.

    지난해 말 카페를 창업하려고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 과정을 수강한 이모(38) 씨는 제대로 수업을 받지 못했다. 일단 훈련 장비가 부족했다. 당초 고용노동부 HRD-Net에 올라온 공시자료에는 ‘4대의 커피머신을 가지고 20명 남짓의 훈련생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다’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 강의에 사용된 커피머신은 3대뿐이었다. 훈련장에 비치된 커피머신은 4대였지만 그중 1대가 강의 시작 전 이미 고장 나 있었던 것.

    이씨는 “장비 문제 외에도 직업훈련 기간에 갑자기 강사가 바뀌고 그에 따라 강의시간도 변경됐다. 이렇게 엉망으로 훈련이 진행되는데도 강사는 훈련생들에게 좋은 별점을 요구했다. 심지어 컴퓨터 사용이 서툰 일부 어르신에게는 자기가 대신 수강후기를 등록해주겠다며 HRD-Net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받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가을 여행상품 상담 직업교육을 위해 고용노동부 HRD-Net을 통해 관련 자격증 강의를 듣던 권모(48) 씨는 지방고용센터에 해당 직업훈련기관을 신고했다. 강사가 임의로 휴식시간을 변경해 당초 고시된 훈련시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 이에 해당 직업훈련기관은 인정 취소 처분을 받았다. 근로자직업능력 개발법 제20조에 따르면 인정 취소된 기관은 교육비를 1할로 계산해 교육생에게 반환해야 한다.

    차감 방식으로 지원금을 받는 배움카드 사용자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교육받은 날짜만큼 카드에서 교육비가 차감되는 셈이다. 권씨는 “기관의 잘못된 교육방식으로 정작 시간과 노력을 낭비한 쪽은 교육생인데 교육비가 차감된다니 이해할 수 없다. 교육생 처지에선 다른 직업훈련기관에 등록하면 이중으로 교육비가 들어 배우려던 강의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긴다.

    결국 직업훈련기관이 받는 처벌을 교육생이 함께 나눠 받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직업능력심사평가원 관계자는 “직업교육 도중 기관의 부정이 적발돼 인정 취소가 되더라도 조사 후 부정행위가 발생한 시점부터 환급 대상이 된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교육이 진행됐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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