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6

2017.05.03

커버스토리 | 르포

대구 “되겠나만도 홍준표를 찍어줘야 않겠나”

대구에서 불기 시작한 홍준표 바람, 보수 결집 태풍으로 확산될까

  • 대구=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7-04-28 17: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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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해 4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리는 메이저 골프대회 ‘마스터스’는 전 세계 골프팬이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 대회 권위도 높고 코스가 어려워 종종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회에서도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조던 스피스(미국)가 첫 라운드부터 4라운드 전반까지 단독 선두를 질주해 와이어투와이어(4라운드를 모두 선두로 마치는 것) 우승이 예상됐다. 하지만 12번 파3 홀에서 4타나 더 치며 선두 경쟁에서 탈락했다.

    반면 아내의 출산 때문에 대회 직전까지 출전 여부를 고민하던 대니 윌릿(영국)은 마지막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5개를 잡아내는 깔끔한 플레이로 그린재킷의 주인공이 됐다. ‘골프 장갑을 벗을 때까지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라는 골프 격언이 딱 맞아떨어지는 결과였다.

    ‘골프 장갑’ 격언과 마찬가지로 선거에서 회자되는 격언은 ‘투표함 뚜껑을 열어봐야 당선인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5월 9일 19대 대선의 최종 승자는 누가 될까.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때 문 후보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빠지면서 사실상 1강 구도가 굳어지고 있는 것.



    상전벽해의 현장 동대구역

    이번 대선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에 따라 실시하는 보궐선거다.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당선에 주도적인 구실을 했던 지역은 대구·경북(TK)이었다. TK는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한 이후 긴 침묵에 들어갔다. ‘권력을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이 대통령 탄핵으로 크게 상처를 입은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각종 대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TK 민심은 좀처럼 헤아리기 어렵다’는 얘기가 많다.



    지금까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안철수 후보로 이리저리 옮겨 다녔지만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TK 민심이 방향을 잡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TK의 최종 선택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4월 25일 오전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자가 대구를 찾은 건 꼭 1년 만이다. 지난해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공천 파동에 대한 TK 민심을 취재하고자 방문했다. 동대구역 앞 풍경은 1년 전과 사뭇 달랐다. 지난해 거대한 철골 골조만 앙상하던 신세계백화점은 깔끔하게 단장한 채 영업을 하고 있었다. 지난해 총선 공천 때 ‘진박’(진짜 친박근혜) 마케팅을 할 정도로 기세등등하던 박 전 대통령이 1년 만에 탄핵되고 영어의 몸이 된 것과 번듯한 백화점의 위용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동대구역 인근 법조타운 앞에는 ‘박근혜를 석방하라’고 쓰인 기호 6번 새누리당 조원진 대선후보의 플래카드만 홀로 내걸려 있었다. 동대구역에서 법조타운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만난 60대 초반의 택시기사는 “대구 민심 취재차 내려왔다”고 하자 대뜸 “서울서는 어찌 봅니꺼. 문재인이 다 된다고 봅니꺼”라고 물었다. 궁금해 묻는다기보다는 못마땅한 속내를 그렇게 표현하는 듯했다.

    “대선 여론조사가 투표 결과로 이어지면 그렇게 되겠죠.”
    “그리는 쉬 안 될 낍니다.”
    “어째서요?”
    “뚜껑 열어봐야 안다 아입니꺼.”
    “기사님은 누구를 찍을 생각이세요.”
    “내사 마, 홍준표를 찍어줄랍니다.”
    칠성시장 인근에 산다는 택시기사는 대선 판세를 이렇게 분석했다.
    “전라도표가 문재인과 안철수로 쪼개져 끝까지 가고, 우리가 홍준표를 찍어주고, 보수표가 다 모이면 잘하모 되지 않겠는교.”
    “대구 출신으로는 유승민 후보도 있지 않습니까.”
    “그이는 영 파이라요. 대통령 끌어내리는 데 모한다꼬 앞장섰답니꺼. 그리 하고도 표를 달라믄 준답니꺼.”
    “조원진 후보도 이곳 대구 출신인데….”
    “그이도 영웅 심리에서 나온 기고.”
    “안철수 후보는 어떠세요.”
    “그이도 영 아입니더.”
    “여론조사에서는 안 후보 지지율이 이곳 대구에서는 높게 나옵니다.”
    “그기 잘못된 기라요. (투표함) 뚜껑 열어보면 그리 안 될 낍니다.”
    “문재인 후보는 어떠세요.”
    “거는…. 마…, 묻지 마소.”
    법조타운에서 수성네거리로 가는 길에 자리한 한 가게 앞 벤치에 30대 초반의 두 청년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구 민심 취재차 서울서 내려왔다”고 말을 걸자 “그런데예. 투표 안 할낀데요”라는 까칠하고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왔다. “TK에서 안철수 후보 지지가 높으냐”고 묻자 “그래 않을낀데…”라며 “홍준표가 쪼매 높을 낍니더”라고 말했다. “20, 30대 청년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고 하자 “우린 30대가 아닌갑다”라며 서로를 보고 웃었다. 선거 무관심을 넘어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냉소가 느껴졌다.
    수성네거리에 이르자 각 당 후보의 선거 플래카드가 여럿 내걸려 그나마 선거 분위기가 났다. 유치원생 자녀와 함께 횡단보도에 서 있던 한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대구에서 안철수 후보 인기가 어떻습니까.”
    “별로라예. 요새 분위기가 영 아입니더.”
    “그럼 누가 인기가 있습니까.”
    “인기는 별론데, 홍준표 찍겠다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어요.”


    “안철수? 영 아인데”


    대구에서는 여론조사 결과에 나타난 것 이상으로 ‘홍준표 바람’이 불기 시작한 듯 보였다. 4월 초 안 후보를 지지하던 TK 유권자들이 빠르게 지지를 철회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40대 후반인 한 중소기업인은 “(안 후보) 정체성이 우리랑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를 외치다 이제 와 찬성으로 돌아섰는데,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믿음이 안 간다”고 했다. 대구지역 한 중견언론인은 “안 후보가 TK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던 것은 문재인 비토 정서에서 비롯됐다”며 “문재인 당선을 막을 사람이 안철수라고 여겨 지지율이 급상승했는데, TV토론에서 별로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반월당역에서 중앙로역으로 가려던 것을 지하철을 잘못 갈아타는 바람에 명덕역에서 내렸다. 명덕역 네거리 한켠의 국민의당 유세차에서는 ‘떴다 떴다 안철수’ 선거 로고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길 가던 행인들이 노래가 나오는 유세차를 흘끗 쳐다보고는 지나쳤다. 선거운동원도 없이 유세차 혼자 유세하는 모습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명덕역에서 반월당역으로 향하는 길에는 조그만 재래시장인 남문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시장에서 장 보고 나온 한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였다.
    “이번 대선에 나온 후보 가운데 누가 제일 맘에 드세요.”
    “내 맘에 든다꼬 되겠능교.”
    “아주머니께서 한 표 찍어주시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겠죠.”
    “그라믄…, 홍준표.”
    “여론조사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대구에서 인기가 있는 걸로 나옵니다만.”
    “순 엉터리라요.”
    “처음부터 홍 후보를 맘에 두고 계셨나요.”
    “대통령이 저리 되고는 투표 안 할라 캤는데, 요새 하는 거 보이 홍준표가 낫게 생각됩디더.”
    “유승민 후보는 어떠세요.”
    “그이는 영 아니라예. 대통령 쪼까내는 데 모 잘났다꼬 앞장서고 그런답니꺼.”

    반월당역이 가까워지자 스피커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기·호·2·번·홍·준·표’를 연호하는 소리였다. 빨간색 옷의 선거운동원이 반월당역 네거리마다 삼삼오오 짝지어 서서 지나는 자동차에 연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이따금 하얀 장갑을 낀 손을 흔들었다.

    유세차 좌우로 네댓 명이 도열해 대형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다. 시청각을 곁들인 적극적인 선거운동에 네거리를 지나던 시민 일부가 차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 화답하기도 했다. 20분 남짓 선거운동을 지켜보는 동안 ‘대구에서는 홍 후보 지지세가 남다르다’는 점이 확연히 느껴졌다.

    반월당역 네거리를 지나 대구 젊은이들이 모인다는 동성로로 진입하자 이번에는 문재인 후보 유세차가 눈에 띄었다. 유세차 스피커에서 선거 로고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파란 점퍼를 맞춰 입은 선거운동원 서너 명은 유세차 주위에서 서성거릴 뿐이었다. 100m 남짓 떨어진 곳에서 오와 열을 맞춰 열정적으로 율동하던 홍 후보 선거운동원과는 대조적이었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동성로 젊음의 거리에 놀러 나온 젊은이들이 무심히 문 후보 유세차를 지나치고 있었다.

    동성로 초입에서 만난 두 여대생은 “누구를 찍겠느냐”는 물음에 즉답 대신 “이번에는 문재인이 다 된다고 안 합니꺼”라고 답했다.
    대구 한 지역 언론인은 “정당별 선거운동 차이는 당세의 차이”라고 평가했다. 지역 정가에서는 자유한국당의 이번 대선 득표율이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천에 연동할 것이란 얘기가 돌고 있다고 한다.

    “오늘(4월 26일) 저녁 8시 서문시장에서 홍 후보가 직접 참석하는 유세가 예정돼 있는데, 자유한국당이 총동원령을 내렸다카데. 여기서 기선을 잡아야 해볼 만하다고 보기 때문 아이겠나. 내일까지 (홍 후보가) TK에 머문다카데. 몬 해도 (TK에서) 50%는 넘기지 싶다.”

    4월 26일 홍 후보의 서문시장 유세에 1만 명 넘게 모였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 이후 가장 많은 수였다. 홍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분들의 80%만 결집해도 당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87년 대선 때 ‘1노-3김’의 4자 구도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했던 것처럼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세 후보가 진보 표를 나눠 갖고 보수 지지층이 자신을 중심으로 결집하면 당선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홍 후보의 이 같은 주장은 적어도 TK에서는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는 듯 보였다.



    ‘총동원령’ 내린 자유한국당

    4월 26일 오후 수성못에서 한국관까지 이동하는 택시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홍준표에게 기회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남의 잔치 같아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요새 하는 거 보이 홍준표가 잘하데예. 담뱃세도 확 낮춘다카고, 경유차 세금도 확 낮춰준다카고. 서민들 듣기에 속 시원한 소리 잘한다 아입니꺼. 관심 없던 사람들이 찍어주면 되는 거 아입니꺼. 홍준표 찍어주자는 사람이 요새 억수로 늘었십니더.”

    대구시청에서 동대구역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만난 한 60대 초반의 여성 택시기사도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 얘기가 홍준표 찍어주마 홍준표가 된다카데예. 영 안 될 줄 알았는데, 이제 쪼매 돼가는 모양입니더.”

    영남일보는 4월 28일자로 TK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홍 후보는 지지율 33.7%로 1위로 올라섰다. 문 후보가 23.4%로 뒤를 이었고, 안 후보 지지율은 19.2%로 크게 하락했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대선을 열흘 남짓 앞둔 시점에 홍 후보가 문 후보를 따라잡기 위한 본격적인 추격에 돌입한 것. 남은 기간 홍 후보가 지지율 열세를 얼마나 좁힐 수 있을까. 최소한 대구에 흐르는 바닥 민심으로만 판단하면 홍 후보 지지세는 남은 선거운동 기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황교안→안철수로 향하던 보수 민심이 홍준표로 쏠리고 있는 지금부터가 어느 측면에서는 이번 대선의 진짜 시작일 수 있다. 4월 26일 밤, 1만 명 이상이 운집한 서문시장 유세를 ‘서문시장 대첩’이라 칭한 홍 후보는 보수 유권자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제게는 아직 12일의 선거운동일이 남아 있습니다.”  


    문재인 비토보다 강력한 유승민 거부감

    대구 동구을은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 후보의 지역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초청하는 대선후보 5명 가운데 고향이 대구·경북(TK)인 이는 유 후보가 유일하다. 대구에서 중고교를 졸업한 홍준표 후보는 경남 창녕 출신이다. 4월 26일 오전 유 후보 지역구인 동구을을 돌아봤다. 동천유원지가 바라다 보이는 강변로에는 운동을 나온 시민이 많았다.

    인근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황모(63) 씨는 “유승민은 못써”라고 말했다. 그는 “유수호 씨 아들인데, 수성구에 주로 살다 국회의원을 여기서 나왔다”며 “지난 총선에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동구청장 출신 이재만 씨를 공천했으면 (유승민 후보가) 떨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싸늘한 지역 민심 때문일까. 유 후보 지역구 사무실에는 출입구에 대선 포스터만 몇 장 붙어 있을 뿐, 후보 얼굴이 인쇄된 대형 걸개 그림은 건물 외벽에 붙어 있지 않았다. 그에 비해 자유한국당 선거사무소에는 홍 후보의 대형 걸개그림이 나붙어 있었다. 동구을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방촌시장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후보의 플래카드와 조원진 후보, 심지어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의 플래카드까지 시장 주변에 걸려 있었지만, 정작 이 지역 국회의원이자 대선후보인 유 후보의 플래카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방촌시장 앞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이번(대선)도 그렇지만, 다음(총선)도 어려울 끼다. 할 일이 따로 있지, 그래 처신하믄 되겠나. 문재인보다 더 못됐다.” 유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선 것에 대해 서운함을 넘어 원망, 심지어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듯했다.

    지유한국당 대구 동구을 선거 사무소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던 한 남성은 “유승민이 그래 나올지 정말 몰랐데이. 사람이 그러믄 쓰나. 다시 보게 됐데이”라고 혀를 찼다. 새로운 보수의 희망이 되겠다며 대선에 나선 유 후보가 고전하는 이유가 지역 주민들의 차가운 반응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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