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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Y

현대건설 인수전 자금력이냐, 명분이냐

양보 없는 ‘현대차 vs 현대그룹’ 양자대결 3가지 관전 포인트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현대건설 인수전 자금력이냐, 명분이냐

현대건설 인수전 자금력이냐, 명분이냐

2009년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 환영 오찬에 참석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왼쪽)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현대건설 인수의향서 제출 마감시한인 10월 1일. 채권단은 제3의 기업이 참여할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끝내 어떤 기업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로써 현대건설 인수전은 이날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현대그룹과 9월 27일 현대건설 인수 참여를 선언하면서 곧바로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 간의 양자대결로 좁혀졌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컨소시엄은 10월 4일부터 약 3주간의 일정으로 예비실사에 들어갔다. 예비실사가 종료되면 채권단은 11월 12일 본입찰을 실시하고, 입찰제안서를 제출한 기업과 투자자를 상대로 심사를 벌여 연말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2개월 동안 펼쳐질 현대건설 인수전의 3가지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포인트1 명분을 선점하라

쌍용차, 외환은행의 사례에서 보듯 기업인수전에선 가격경쟁력 못지않게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국민 여론이다. 현대건설 인수전이 본격화되면서 인수 명분을 얻기 위한 여론전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특히 자금력이 밀리는 현대그룹은 ‘명분론’에 사활을 걸었다. 현대그룹은 9월 21일부터 TV광고를 내보내며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으로부터 현대건설을 물려받은 만큼 현대건설 인수는 옛 기업을 되찾는 것”이란 명분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고 정몽헌 회장은 현대건설이 채권단에 넘어가기 전까지 4400억 원에 달하는 사재를 털어 유동성 위기를 진화하려 했다. 현대차는 현대건설을 위해 무엇을 했나. 과거 현대건설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현대건설을 도와줄 수 없다’고 공식 발표한 전례도 있지 않는가?”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엠(현대택배) 등 물류와 수송 중심 그룹 주력사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는 점도 내세운다. 하지만 현대건설에 4400억 원의 자금을 지원한 것을 놓고 그 규모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그룹의 광고 공세에 대응하지 않으면서 확전은 피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그룹 쪽에서) M·A가 경제성을 우선시해야 함에도 여론에 기대 상황을 반전시켜보려는 것 같다. 현대건설 인수는 철저한 시장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시공 능력 1위인 현대건설을 글로벌 건설업체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양측의 명분 싸움을 두고 시장 일각에선 현대건설 부실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두 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뛰어든 것 자체가 ‘명분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2006년 산업은행이 “옛 사주에게는 현대건설을 매각할 수 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이나, 2007년 6월 예금보험공사가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의 부실 책임을 물어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단 채권단이 양 그룹의 인수참여 의향서를 받아들임으로써 옛 사주 문제는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태다. 현대건설 주주협의회 측 관계자는 “부실화 이후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건대 (현대건설 인수) 참여를 배제할 정도로 현대건설의 부실 책임을 이들 그룹에 씌울 수는 없다.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막지 않은 것일 뿐, 우선매수 협상권을 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포인트2 자금조달 능력이 관건

인수 대상인 현대건설은 두 현대가(家)의 싸움에 말을 아낀다. 제3의 기업이 아닌 사실상 현대가로 인수되는 것에 내심 안도하는 분위기다. 현대건설의 한 직원은 “누가 인수하든지 대우건설의 전철은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6년 11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지분 72%를 매입하면서 재무적 투자자들로부터 풋백옵션(매도선택권)의 형태로 3조5000억 원을 지원받은 것이 화근이 돼 3년 만에 대우건설을 재매각했다. 교보증권 조주형 애널리스트는 “채권단이 자금조달 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매입 가격에만 치중해 인수자인 금호그룹과 인수 대상인 대우건설 모두가 피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이를 의식한 듯 현대건설 채권단은 “가격 외에도 인수 주체의 자금조달 능력과 경영 비전을 중점적으로 따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대건설 지분을 11.12% 보유한 최대주주인 한국정책금융공사의 유재한 사장은 10월 8일 워싱턴 시내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당시 가격만 보고 인수합병(M·A)을 결정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았다”며 “인수 주체의 자금조달 능력과 경영 비전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선 채권단이 내놓은 현대건설 지분 34.88%를 인수하려면 4조 원 안팎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자산규모 100조7000억 원으로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은 자체 자금만으로 현대건설 인수가 무난한 상태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현대차가 보유한 유동자산만 7조5000여억 원에 이른다. 현대모비스 1조6000억 원, 기아차 1조9000억 원을 합하면 총 10조900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반면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보다 자금력에서 열세임을 인정하면서도 자금 조달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증권 등 계열사가 보유한 자금을 통해 1조5000억 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10월 12일 현대증권 노조원들이 현대그룹 본사 앞에서 ‘현대그룹 경영간섭 반대’집회를 연 것을 두고 일각에선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현대증권 등 계열사가 보유한 자금을 동원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현대그룹 측은 “현대건설에 대한 일부 얘기도 언급이 됐지만 현대건설 건과는 무관한 집회였다”고 해명했다.

현대건설 인수전 자금력이냐, 명분이냐

10월 12일 현대증권 노조원들이 현대그룹 본사 앞에서 ‘현대그룹 경영간섭 반대’집회를 열고 있다.

나머지 3조 원은 투자자를 확보해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현대그룹은 10월 1일 독일의 하이테크 전문 엔지니어링 기업 ‘M+W그룹’을 전략적 투자자로 공개하는 등 투자자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단기투자 성향이 강한 재무적 투자자보다 장기투자를 선호하는 전략적 투자자만으로 투자자를 유치할 전망이다. 재무적 투자자 영입에 따른 불필요한 경영권 간섭 및 수익분배 요구 등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

포인트3 현대그룹 플랜B 가동할까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다급한 쪽은 현대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8.3%를 확보한다. 여기에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분 25.5%를 포함하면 범현대가의 현대상선 지분이 39.4%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 현대그룹(44.2%·우호지분 포함)과의 지분 격차가 4.8%포인트로 좁혀져 현대상선의 경영권이 위협받게 된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에서 시작해 현대상선, 현대로지엠, 현대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어 자칫 그룹 전체에 대한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선 현대그룹이 인수 ‘플랜B(첫 번째 안이 실패할 경우 진행할 계획)’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패할 경우에 대비해 그룹 지주회사 격인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지키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9월 28일 현대그룹의 우호세력인 넥스젠캐피탈로 하여금 현대상선의 자사주 0.6%를 매입하게 해 의결권을 확대한 것도 경영권 방어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인수전이 막 시작됐는데 벌써부터 플랜B 운운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상대측의 마타도어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이것을 플랜B라는 것과 연결하는 것은 억지”라고 덧붙였다.



주간동아 2010.10.18 758호 (p44~45)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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