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7

2009.10.20

짝퉁에 두 손 든 ‘AK-47 소총’

돌격용 소총 대명사 전 세계 최다 보급 … 정품 생산 러 기업 폐업 직전

  •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facebok@hotmail.com

    입력2009-10-14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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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회사 등의 임직원이 해외 오지에 파견돼 근무하다 현지 반군에게 납치됐다는 기사를 종종 접한다. 이런 기사에는 게릴라들이 AK-47 소총으로 무장했다는 설명이 흔히 따라붙는다. 러시아 원산인 AK-47과 그 변형 모델들은 지난 60여 년간 세계의 돌격용 소총(assault rifle) 시장에서 M1을 비롯한 미제를 제치고 가장 많이 보급됐다.

    북한군에서부터 탈레반까지, 베트콩에서 산디니스타 게릴라까지, 소말리아 해적에서 멕시코의 마약 밀매조직까지 이 소총은 반미 성향 국가 정규군의 기본화기로는 물론, 반군과 범죄단체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의 필수 병기로 세계시장을 주름잡았다. 그런데 이 소총을 생산하는 러시아 기업 ‘OAO 이즈마시’가 여러 해에 걸친 경영난 끝에 폐업의 위기를 맞았다고 캐나다의 유력지 ‘글로브 앤드 메일’이 최근 보도했다.

    이즈마시의 한 채권기관이 1300만 달러의 빚을 받아내기 위해 낸 소송과 관련해 러시아 법원이 곧 파산선고를 할 것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저항의 상징 國旗에 등장하기도

    이 신문에 따르면 이즈마시는 AK-47에 대한 세계 유일의 특허권자지만 범람하는 짝퉁 때문에 정품 수요가 줄어든 데다, 가장 믿을 만한 거래처이던 러시아 군이 국방예산 삭감 탓에 물건을 사가지 않아 더 이상 버티기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게다가 이 회사는 AK-47 외에 사냥총 등 다른 제품도 생산하지만 이들 품목에 대한 수요도 최근의 세계적 불황으로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올 들어 이 회사는 이젭스크 시(러시아 우랄산맥 지방에 있는 우드무르트 공화국의 수도)에 있는 주력 공장들을 거의 놀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세계은행 추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 약 1억 정의 AK-47과 그 변형 모델의 소총이 보급돼 있다. 이는 세계의 다른 모델의 돌격용 소총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다. 이런 소총의 정품을 만들던 이즈마시의 영광과 쇠락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에서 1991년 소련의 붕괴까지 냉전 구도의 성립과 해체 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 소총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러시아인 미하일 칼라슈니코프가 설계했고 몇 년 뒤 생산에 들어갔다. 제품명 AK-47은 ‘자동소총으로 칼라슈니코프가 창안자이고, 1947년이 생산 원년’이라는 뜻의 영어(Automatic/ Kalashnikov/1947)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칼라슈니코프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으로 징집됐다가 부상을 당해 입원해 있는 동안 새 소총의 고안에 들어갔다.

    당시 소련군에 보급돼 있던 소총의 결점을 그 자신이 체험했을 뿐 아니라 다른 부상병들로부터 여러 가지 불평을 들은 것이 신제품 구상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종전 직후 소련군이 개최한 신무기 경연대회에 그의 창안이 입상했고, 곧 대량 생산돼 소련군에 보급됨으로써 AK-47의 시대가 열렸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각각 자국의 동맹국 또는 자국의 이념을 따르는 반군에게 자국산 병기를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AK-47은 미국의 이념을 따르지 않는 국가나 반군집단의 기초 병기로 자리를 굳혔다.

    시리아, 이란, 리비아 등의 경우 그 지배 이데올로기가 1980년대까지는 딱히 친미(親美)나 친소(親蘇)로 구분될 성격은 아니었으나, 미국이 이들 나라를 못마땅하게 여겨 무기 금수를 필수로 하는 경제제재를 가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이 AK-47의 고객이 됐다. 이념과 상관없는 갱이나 해적에게도 이 소총은 인기가 높았다. 값이 헐하고 튼튼한 데다 사용이 간편하기 때문이다. 칼라슈니코프는 여름에는 진흙 수렁이 되기 일쑤고, 겨울에는 혹한이 엄습해 장갑을 끼고 총을 쏴야 하는 러시아의 자연 조건을 염두에 두고 이 총을 설계했다.

    따라서 악조건에서 쓰기 좋은 장점이 있지만 사격의 정확도는 미제 소총에 비해 낮다. AK-47은 구조가 워낙 단순해 “고장이 나면 철사로 만든 간이 옷걸이와 고무 한 조각이면 누구나 수리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또 땅에 묻었다가 10년 뒤에 파내도 여전히 작동한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견고하다. 이러니 요원들에게 체계적인 사격훈련을 시키지 못한 채 총을 지급해야 하는 반군이나 범죄조직이 AK-47을 선호하는 것이다.

    AK-47은 한때 많은 제3세계 신생국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 구실을 했다. 아프리카의 모잠비크는 1970년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뒤 제정한 국기(國旗)에 이 소총의 도안을 담았다. 이 나라에선 최근 들어 국기의 디자인이 너무 호전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와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이 국기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 많아 실현되지 못했다. 이 밖에 짐바브웨, 동티모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헤즈볼라 등의 문장이나 깃발에도 이 소총 도안이 들어 있다.

    운동화 한 켤레 값에 팔리는 짝퉁

    그러나 소련에는 공산품에 대한 특허권 등 자본주의 비즈니스의 개념이 없었다. 소련 당국은 이 소총의 제조기술을 친한 나라나 집단에게 선심 쓰듯 전수해줬다. 기술이전 조건에 관한 정교한 계약서 없이 그냥 양쪽 대표가 악수하고 기념사진 찍는 것이 ‘세리머니’의 전부이다시피 했다. 전수받은 쪽은 소련이 존속하던 시기에는 그나마 기술 보안에 신경을 썼지만 소련 해체 뒤로는 무방비였다. 이것이 짝퉁 범람의 배경이 됐다.

    모조품을 만드는 업체는 정품이라고 속여 물건을 내놓기도 하고, 조금 변형한 뒤 신개발품이란 딱지를 붙여 팔기도 한다. 이들 제품은 암시장은 물론 공개시장에서도 버젓이 거래된다. 특히 최근 5년간 짝퉁이 기승을 부려 세계에서 거래되는 AK-47 중 정품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추계가 있을 정도다. 모조품은 주로 중국, 불가리아, 폴란드 등에서 나온다. 이들 제품은 정품보다 값이 싸고 계속 내리는 추세다.

    요즘 암시장 시세가 30~ 125달러 선이니 선진국에서 운동화 한 켤레 사는 값이다.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1999년에야 원조(元祖)인 이즈마시에 AK-47의 특허권을 인정했으나 그 뒤로도 한 해 100만 정 가까운 짝퉁이 쏟아져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명자 칼라슈니코프는 공을 인정받아 소련군의 병기 개발 담당으로 중장의 지위에까지 오르고 노동영웅의 칭호도 받았다.

    그러나 제품이 대박을 터뜨린 데 따른 경제적 이득은 전혀 얻지 못했다. 올해 아흔 살이 된 그는 이즈마시의 공장이 있는 이젭스크에 살고 있다. 여느 보통 시민과 마찬가지로 국가연금으로 생계를 꾸린다. 그는 2006년 유엔이 주최한 무기밀거래 방지에 관한 회의에 초청받아 간 자리에서 “나는 단지 조국의 방위를 위해 새 소총을 만들었고 그 제품이 좋은 평판을 얻은 것에 긍지를 느끼지만, 모조품이 넘쳐나고 범죄조직이나 테러리스트에게 보급돼 있다는 사실에는 가슴이 아프다”고 개탄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스텀 루거, 스미스 앤드 웨슨 등 미국의 소총 제조업체들은 일시적 내수의 증가로 잔재미를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이즈마시의 곤경과 대비된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임기 내에 총기 소지 규제를 강화할 전망이어서 미리 사두려는 미국인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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