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7

2009.10.20

울릉도에 詩를 심어 가꾸자

문학으로 실천하는 영토 사랑 … 독도 소재 문학도 열기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09-10-14 1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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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에 詩를 심어 가꾸자

    독도 전경(왼쪽)과 움푹 팬 계곡 끝에 있는 울릉도 도동항의 야경. 전국을 순회하며 시낭송회를 열어온 한국시인협회는 독도를 품은 울릉도에서도 시낭송회를 가졌다. ‘독도는 독도’라는 시를 낭송하는 오탁번 회장(인물 사진).

    해양주권 문제에 관한 한 조선은 미운 짓을 많이 했다. 건국 때부터 왜구에 시달렸던 조선은 태종 17년(서기 1417년) ‘해금(海禁) 정책’을 취했다. 왜구들이 유인도를 발판 삼아 내륙을 침략하자 섬에 사는 사람들을 육지로 들어오게 한 것. 그리고 섬에 나가 살고 있는 사람을 수색해서 끌고 오기 위해 몇 년에 한 번씩 ‘수토관(搜討官)’을 보냈다. 이 정책이 1882년까지 이어져 국토의 막내인 울릉도는 무인도가 되고 말았다.

    독도를 지키는 핵심 배후지인 울릉도를 비워둔 것이 일본에 독도를 빼앗아갈 수 있는 빌미를 줬다. 울릉도에는 해금정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서면 태하리 해안가에 있는 보기 드문 황토굴이 그곳. 예나 지금이나 관리들은 ‘적당주의’가 몸에 배어 있다.

    조선조는 수토관이 울릉도에 다녀오지 않고도 갔다 왔다고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을 보낼 때는 반드시 황토굴의 황토와 울향(울릉도 자생 향나무)을 가져오게 했다. 섬과 해양 주권을 방기한 해금정책의 실체를 보여주는 황토굴이 지금은 관광명소가 됐다.

    해금정책이 철폐되고 다시 사람이 나가 살기 시작한 것이 126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울릉도엔 이렇다 할 문화와 역사가 남아 있지 않다. 고인돌과 신라시대 고분이 발견됐지만 울릉도의 역사는 빈약하기만 하다. 울릉도에서 초·중·고를 나와 등단한 시인과 소설가는 전무하다시피 하고, 세칭 ‘SKY’로 불리는 명문대에 진학한 인재도 거의 없다. 독도를 우리 땅으로 굳히고 싶다면 두 섬에 하루빨리 문화와 역사를 입혀야 한다. 관광지로만 남아 있는 한, 두 섬은 국민의 따뜻한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기 어렵다.

    문화와 역사 다시 입히는 뜻깊은 행사



    조선조가 벗겨낸 울릉도의 문화와 역사를 다시 입히는 일에 매진하는 단체가 한국시인협회(회장 오탁번)다. 지난 9월21일 울릉도에 간 이 협회는 회원들을 초·중학교로 보내 섬에 시를 심는 강의를 하게 했다. 저녁엔 도동항 소공원에서 시낭송회를 열기도 했다. “동쪽 먼 심해선∼”으로 시작하는 청마 유치환의 ‘울릉도’를 잇는 행사를 가진 것이다.

    문학 지망생들의 모임인 울릉문학회와 함께한 이 행사에서 오탁번 회장은 ‘독도는 독도’, 오세영 전 회장은 ‘독도’라는 제목의 시를 낭송했다. 이어 벌어진 뒤풀이에선 전남 고흥에서 온 흥양예술단이 흥겨운 남도 가락을 펼쳐보이고 가수 현승엽 씨는 기타를 연주했다. 항구와 상점의 불빛만 파르르한 가운데 두꺼운 어둠이 덮인 도동의 하늘로 문화의 기운이 뻗쳐 올라간 것이다.

    독도를 품은 울릉도엔 나리분지와 성인봉, 송곳산, 말잔등, 통구미, 섬목, 공암 등 이름만 들어도 이국적인 절경이 많이 숨어 있다. 이러한 곳을 소재로 한 시와 소설, 이야기가 하나하나 쌓여갈 때 두 섬의 한국화는 가속화할 것이다.

    울릉도엔 일본이 말하는 ‘다케시마’가 아닌 진짜 ‘죽도(竹島)’도 있다. 울릉도에 딸린 섬, 죽도 탐방까지 마치고 육지로 돌아오는 배 안에선 피곤한 탓인지 많은 시인이 눈을 붙였다. 그러나 뿌듯하고 벅찬 마음에 활기를 잃지 않은 이가 눈에 띄었다.

    시인협회 독도지회장인 편부경 시인이다. 본적지를 울릉도, 주소지를 독도로 해놓았다가 독도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소지 퇴거 조치를 당한 바 있는 편 시인은 ‘문학으로 하는 영토 사랑’을 거듭 강조했다.

    “조선의 실수를 벗어던지고 울릉도와 독도에 시를 심는 것, 그것이 두 섬을 사랑하는 지름길이고 나라를 지키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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