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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꿀벅지’에 빠지는 이유

차별화된 ‘디테일’에 집착하는 현대인 … 다양성 존중, 타인 기호에 대한 관대함

  • 하지현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도시심리학’ 저자 jhnha@naver.com

우리가 ‘꿀벅지’에 빠지는 이유

우리가 ‘꿀벅지’에 빠지는 이유

누리꾼 설문조사 결과 ‘꿀벅지’ 미녀로 꼽힌 ‘애프터스쿨’의 유이. ‘꿀벅지’란 용어가 성희롱적이라는 논란에도 이들의 탄탄한 허벅지에 열광하는 팬은 늘고 있다.

미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다. 수백 년 전에 그려진 미인도의 달걀형 얼굴을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밋밋하기 그지없다. 희대의 미녀라는 클레오파트라를 그린 그림을 봐도, 모나리자의 미소를 봐도 감흥이 일지 않는다. 아주 먼 옛날이야기까지 들출 필요도 없다.

19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미인들을 요즘 잘나가는 스타들과 비교해보면 그저 ‘복스러운 맏며느리’로 보일 뿐이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여배우의 얼굴만 중시하던, 마른 것이 미의 절대가치로 여겨지던 시기였다. 그때도 ‘남다른 발육’을 자랑하는 여자 스타가 있긴 했지만 소수였고, 마르고 청초한 ‘얼짱 미녀’가 주류를 이뤘다.

뉴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더니 ‘S라인’을 강조하는 ‘섹시 연예인’이 늘어났다. 얼굴에 고정됐던 일반인의 관심이 몸으로 옮겨진 때문이다. 최근에는 급기야 몸, 그중에서도 허벅지로 초점이 옮겨졌다. 대표적인 주자는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멤버 유이.

수영선수 출신인 만큼 섬세하고 탄탄한 안쪽 허벅다리 근육을 가진 그에게 열광하는 남성과 ‘유이 워너비’를 꿈꾸는 여성이 늘고 있다.

‘주류 코드’를 벗어난 이종의 매력



‘소녀시대’의 티파니도 최근 ‘꿀벅지’ 연예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들이 무대 위에서 다른 동료들과 춤출 때, 옛날 같았으면 그런 튼튼한 넓적다리는 핸디캡으로 여겨졌을 터다. 그런데도 팬들은 이들의 탄탄한 허벅지에 ‘꿀벅지’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건강미인으로 추종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사건’이란 말인가. 그들의 소속사에서 이런 일을 의도적으로 기획해 마케팅했을 것 같지는 않다. 영화 ‘국가대표’와 ‘해운대’가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듯 한 소녀 가수가 가창력도 댄스도 아닌 허벅지로 시대의 아이콘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한 발자국 뒤에서 냉정하게 ‘꿀벅지’ 트렌드를 조명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최근의 연예인 트렌드는 기존 ‘주류 코드’에서 조금 벗어나 이종(異種)의 매력에 맞춰진 듯하다.

오랫동안 이어진 미소년 아이돌 그룹의 대세를 딛고, 우락부락한 근육과 강렬한 퍼포먼스를 장기로 하는 ‘2PM’이 ‘짐승돌’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든 것도 그렇다. 이들은 메트로 섹슈얼한 ‘야들야들형 꽃미남’을 주눅 들게 하는 근육으로 중무장했다. 거기다 ‘소녀시대’ ‘카라’류의 예쁜 아이돌이라는 대세를 꺾고 강한 랩과 댄스로 무장하고 ‘참을 만한 수준’의 불량기를 내세운 ‘2NE1’이 최고의 걸그룹으로 전면에 나섰다.

이는 세대교체라는 큰 흐름의 전조일까, 아니면 유행의 잔물결에 그칠까. 요즘의 가요계를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음식업계다. 몇 년 전 조개구이집이 크게 유행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조개구이집일 정도였다. 그러다 불황에는 매운 것이 대세라며 불닭집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불닭 먹는 사람들로 연일 장사진을 이뤘고, 가게들은 자기들만의 노하우라면서 사무치도록 맵고 물을 마셔도 그 매운맛이 가시지 않는 ‘핫소스’ 만드는 데 열을 올렸다.

그런데 요즘 거리에 나가보면 조개구이집도 불닭집도 옛 명성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요즘의 거리에도 예전처럼 삼겹살집, 설렁탕 가게는 계속 성업 중이다. 이 예를 살펴보면 사람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뉴페이스의 가수나 배우를 혼자서 좋아하고 응원하다가 너무 유명해져서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대중스타가 되면 관심이 시들해지고, 어느새 새로운 자기만의 스타를 찾는 사람들도 같은 심리다.

새로 산 셔츠를 입고 나간 날 같은 옷을 입은 사람과 마주쳤을 때 ‘아, 역시 나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구나’라고 기분 좋아하기보다 민망해하고 짜증내는 것이 인지상정이듯, 사람들은 남과 다르고자 애를 쓴다. 자기만의 취향을 만들어 가꿔나가는 것은 인간의 개성화(individuation)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 남과 똑같은 걸 좋아하는 것은 싫으니 말이다.

불닭, 조개구이, 짐승돌, 꿀벅지로 이어지는 트렌드는 모두 트렌드세터가 되고 싶은, 그리고 남과 다른 취향임을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그 취향의 집중점은 역사적으로 이어 내려오던 고전적인 유행의 도돌이표에서는 벗어나는 경향이 있다. 좀더 하드코어적이든지, 아니면 이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발상의 전환이거나 아주 세밀한 디테일에 대한 집착인 경우가 많다.

두루뭉술하게 얼굴, 몸매에 집중하는 것은 결국 별로 새로울 게 없고,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기에는 금방 희석될 우려가 있으니 말이다. ‘꿀벅지’ 신드롬도 이러한 심리와 맥락을 같이한다. 남과 다른 ‘취향’을 찾으려는 노력이 디테일에 대한 집착을 ‘발상의 전환’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그렇지만 대중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이런 유행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허벅지에 대한 대중의 페티시즘은 어느 순간 가녀린 손목이나 손가락, 고양이 귀, 삼두박근처럼 ‘마이너’한 영역으로 변화해갈 것이다. 그러나 불닭과 조개구이가 삼겹살이나 설렁탕에 밀릴 수밖에 없었듯, 기본적으로 오랜 기간 메이저의 세계에서 안정적인 기호를 유지해온 아이템은 유유히 그 생명력을 발휘할 것이다.

남과 다른 취향, 튀는 동시에 불안감

왜냐하면 지나치게 튀거나 엽기적이거나, 색다른 것만 좋아하는 것은 개성을 강화시키기도 하지만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너무 남과 달라지는 것은 동시에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괴짜 혹은 ‘오타쿠’가 돼서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인간으로 분류되는 것은 싫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내가 속한 집단 안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흔한 모습을 나도 갖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안전하다는 것을 느끼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어떻게든 다른 모습으로 개성을 추구하려는 개인의 노력과, 지루하고 뻔하지만 규정된 집단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려는 의도는 어느 한쪽에 경도되지 않은 채 끊임없는 진자운동을 하고 있다. 그게 매일의 삶이다. 이런 모습은 꿀벅지와 같은 연예인에 대한 기호뿐 아니라 삶의 전반에서 발견된다. 스타벅스에 가면 자기만의 레시피로 까다롭게 주문하면서 회사에서 회의할 때는 ‘그냥 커피믹스’ 마시는 걸 주저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면에서 ‘꿀벅지’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새로운 것을 찾는 대중의 기호가 ‘마이너 포인트’에 맞아떨어지면서 발생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몇 년 후 이 흐름이 ‘메이저’가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꿀벅지’나 ‘짐승돌’에 대한 열광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이유는 기호가 다양해진다는 측면 때문이다.

각자의 기호에 페티시즘 같은 이상 성욕이 반영된 것만 아니라면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고, 혼자서만 좋아하다 이런 열풍에 힘입어 ‘나만 허벅지에 관심이 많은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회가 조금씩 다양성을 존중하고 타인의 기호에 관대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연예인의 개성이 디테일해지고 다양해진 만큼 자기 취향대로 좋아하는 이를 선택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린 것만도 좋은 일 아닌가.



주간동아 2009.10.20 707호 (p66~67)

하지현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도시심리학’ 저자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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