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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Y

신상? 한국 소비자에게 물어봐!

깐깐한 한국인, 최고의 테스트 마켓 … 명품 브랜드까지 구애작전 나서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신상? 한국 소비자에게 물어봐!

신상? 한국 소비자에게 물어봐!
프랑스의 고급 보석 브랜드 ‘까르띠에’는 올가을 결혼 시즌을 맞아 함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반지, 목걸이, 시계 등 예물 세트를 구입하는 고객에게 이 브랜드 특유의 붉은색 보석박스를 확대한 디자인의 함을 제작해주는 것.

까르띠에코리아 김은수 이사는 “신랑신부가 예물로 보석을 주고받는 한국식 전통을 럭셔리 문화와 접목한, 한국 고객만을 위한 특별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콧대 높은 명품 브랜드 너마저?

명품 브랜드의 마케팅 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철칙이다. 패션쇼 무대의 의상 순서는 물론 모델의 메이크업, 무대장치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본사가 제안한 ‘오리지널 스타일’을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골든 룰’이다. 따라서 특정 국가의 고객만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는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김 이사는 “프랑스 본사에 한국 소비자의 구매 패턴, 결혼시장의 중요성과 관련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제출하면서 3년간 설득한 끝에 이뤄낸 성과”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프랑스 고급 보석 브랜드 ‘쇼메’도 올가을부터 함과 비슷한 형태의 예물박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물을 주고받을 때 좀더 격식을 차리고 싶다는 고객의 요청을 반영한 결과다. 쇼메코리아 관계자는 “본사에 최근 국내 명품업체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로컬 마케팅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새로운 서비스 도입을 주장했다”며 “한국은 ‘톱5’에 드는 큰 시장이니 만큼 본사에서도 한국 소비자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전 세계 마케팅 정책을 본사가 총괄해 ‘중앙집권적’ 성향이 강한 프랑스 브랜드들에 비해 로컬 마케팅에 대한 통제가 덜한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들은 좀더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명품 패션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VIP 고객을 대상으로 격년제 골프대회 ‘트로페오 제냐 스포츠’를 열고 있다. 홍보팀 백정미 대리는 “한국에서는 주요 고객층인 40대 남성이 소비자를 위한 행사로 파티보다 골프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착안, ‘글로컬’(글로벌+로컬)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에서만 골프대회를 열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이 대회가 성공적으로 이어지자 본사는 이를 전 세계로 확대할 계획도 세웠다. 명품 전문교육기관 ‘서울 럭셔리 비즈니스 인스티튜트(SLBI)’의 손주연 교학처장은 “고급 화장품 브랜드의 경우 ‘갈색병’ ‘V라인 에센스’ 등 한국인이 이해하기 쉬운 애칭을 광고 카피에까지 사용하는 로컬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쳐왔지만, 보수적인 패션 브랜드에까지 로컬 마케팅 바람이 분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한국형 마케팅’은 꿈도 꾸지 못하던 1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그만큼 한국 시장의 규모와 소비자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컨슈머 리터러시’ 매우 높아

시장 규모가 확대되자 아예 한국 소비자를 염두에 두고 생산되는 제품도 늘고 있다. 남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와이너리를 자랑하는 칠레 와인회사 ‘콘차이토로’는 지난 8월 ‘콘차이토로 그란 레세르바’를 출시하면서 이 회사의 자체 블렌딩 비율을 뒤집고 강한 풍미를 즐기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까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비율을 70%에서 90%대로 끌어올렸다. 블렌딩 비율은 와이너리의 자존심으로 여겨지는 만큼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와인 수입사 금양인터내셔날의 조상덕 부장은 “한국은 와인 신흥시장인 아시아 내에서도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일본 시장에 비해 성장 잠재력이 크고, 중국보다 와인 문화가 발달했다는 점에서 와인업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며 ‘콘차이토로’의 블렌딩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처럼 글로벌 브랜드들의 한국형 로컬 마케팅이 확산되는 이유는 월마트, 노키아 등 세계적 기업들이 한국 토종기업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한때 ‘외국 브랜드의 무덤’이라 불리던 한국 시장에 대한 돌파구의 일환으로 ‘한국 구애작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신상? 한국 소비자에게 물어봐!

글로벌 욕실브랜드 ‘아메리칸스탠다드’는 한국 주부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 유명 스타일리스트를 초빙한 인테리어 강좌를 열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국 소비자 특유의 깐깐함이 한국 시장에서는 물론, 전 세계 마케팅 전략에 도움이 돼 ‘테스트 마켓’ 개념으로 한국 시장을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이 특징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소비자가 제품을 평가하고 개선점을 제시하는 ‘프로슈머’(프로듀서+콘슈머)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분석한다. 최근 프랑스 가정용품 브랜드 ‘테팔’은 추석을 맞이해 전통 한복을 입은 소년 소녀가 새겨진 한국형 프라이팬을 내놓았다.

특정 국가를 겨냥한 한정판 스페셜 에디션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 한국 시장에 대한 이 같은 ‘배려’는 과거 한국 소비자들의 요구로 개발된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전례 덕분이다. 고기 요리에 국물이 많은 한국식 조리법의 특성상, 평평한 그릴판 대신 전골형 그릴판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로 제작된 ‘뉴엑셀리오 컴포트 그릴’은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도 히트했으며, 토스터에 뚜껑을 달아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의견은 현재 이 브랜드가 출시하는 모든 토스터에 적용되고 있다.

그룹세브코리아의 테팔 마케팅팀 권필희 과장은 “일부 소비자는 직접 프랑스 본사에 e메일을 보내 제품에 대한 의견을 어필할 정도로 적극적”이라면서 “본사에서도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한국 소비자들의 의견을 가장 먼저 살핀다”고 전했다. 로컬 마케팅의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것은 각종 교육 클래스의 운영이다.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제품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

욕실 브랜드 ‘아메리칸스탠다드’는 평소 인테리어에 관심은 많지만 체계적으로 배울 곳이 없다는 주부들의 의견을 수렴, 지난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인테리어 클래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또한 선진 정보통신(IT) 인프라를 갖춘 한국 시장 환경에 맞춰,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올리고 직접 구입도 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할 예정이다. 스포츠 브랜드 ‘리복’ 역시 피트니스 기능을 갖춘 신제품 슈즈 ‘이지톤’을 최근 내놓으면서 15일간 제품을 체험한 뒤 만족하지 못할 경우 다른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품질만족보장 프로그램’을 한국에서만 시행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한국 소비자는 세계 어느 나라의 소비자들보다 제품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갖추고 있어 ‘컨슈머 리터러시(consumer literacy)’가 높다고 평가된다”고 말했다. 디지털카메라, 자동차 같은 하이테크 제품에서는 특히 소비자들이 ‘파워 블로거’ ‘큐레이터’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다른 소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로컬 마케팅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 소비자의 수준을 고려해 한국 시장에만 유독 ‘특혜’를 주는 사례는 IT 관련 업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니에릭슨코리아’는 지난 3월 ‘프리미엄 터치폰 엑스페리아 X1’을 출시하면서 한국 시장에서만 별도의 배터리 충전기와 외장 메모리카드를 키트 안에 포함시켰다. 또 7월에는 이 제품의 업그레이드 유저 인터페이스를 출시하면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9가지 게임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1997년 한국에 진출한 보안업체 ‘시만텍코리아’도 국내 진출 이후 처음으로 최근 한국 소비자를 위한 할인정책을 내놓았다. 새롭게 선보이는 ‘노턴2010’의 가격을 글로벌 표준가격의 3분의 1 이상으로 크게 낮춘 것. 무료 백신 사용자가 전체 PC 사용자의 75%에 이르는(2009년 6월, 코리아클릭 조사) 국내 시장 환경에 맞춘 정책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개인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공유하려는 ‘웹2.0 정신’이 발달한 국가인 데다, 기업과 고객의 쌍방향 소통은 글로벌 경영의 가장 큰 이슈인 만큼 한국 시장을 테스트 마켓으로 삼아 글로벌 마케팅에 적용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은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간동아 2009.10.20 707호 (p58~59)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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