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문득 기자의 머릿속에도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은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최동원이나 선동렬만큼 잘 알려진 스타는 아니지만,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에는 한때 윤학길이라는 ‘내 마음의 스타’가 있었습니다. 1986~97년 롯데에서 선수생활을 한 윤학길은 1993년 이후 부상으로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갔는데, 전성기 그의 닉네임은 ‘고독한 황태자’일 정도로 한번 출격하면 경기가 끝나야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철완(鐵腕)이었습니다.
1987년 13회 완투(完投·한 명의 투수가 교대 없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던지는 것)를 하더니 이듬해 17회, 1989년 18회 등 통산 308경기에 출격해 100회의 완투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중간계투와 마무리 같은 ‘투수 분업’이 약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최동원(80회)과 선동렬(68회)의 통산 완투횟수에 비하면 그가 얼마나 ‘고독하게’ 마운드를 책임졌는지 실감이 납니다.
1989년 롯데는 최하위(48승68패)로 시즌을 마감했지만 그는 혼자 16승을 따냈죠. 타선의 지원이 미미한 상황에서 9명의 타자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부담감 속에서도 황태자는 와인드업을 했습니다. 12시즌 통산성적 117승94패 중 74승이 완투승! 옥석혼효(玉石混淆)라고 하던가요? 완투가 많은 만큼 완투패도 많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2게임에서 ‘풀’로 던져야 할 공(198개)을 던지고도 담담하게 패배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당시 ‘까까머리’ 기자에게 ‘프로’가 뭔지를 일깨워줬습니다.

주간동아 707호 (p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