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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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나는 회사가 붙잡을 인재라고 느낀다” VS “내가 사표 내면 회사가 안 붙잡을 것 같다”

직장인들이 털어놓는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김수영 자유기고가

    입력2009-07-20 2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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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우리 회사의 ‘핵심 인재’다!”

    “은근히 이직설을 흘렸다. 그러자 갑자기 회사에서 ‘사실 당신은 Top Talent(핵심 인재)’로 주시하던 사람인데 왜 나가려 하느냐며 연봉을 올려주겠다고 했다. 사실 그전엔 내가 핵심 인재로 관리되고 있는지도 몰랐다.”(37·남·외국계기업 엔지니어)

    “모두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주며 좀처럼 진행되지 않던 일을 내가 시원시원하게 처리했다. 부서원 모두 속 시원하다며 맥주를 사주겠다고 했다.”(32·남·투신사 대리)

    “낮은 연봉 받으며 야근, 주말근무, 특근도 마다하지 않고 일할 때. 남자친구도 없고 퇴근해서 딱히 할 것도 없어 자연스레 일에 매진하게 된다. 그게 바로 내 존재의 이유니까! 혼자 회사에 남기 심심해서 아래 직원 퇴근 못하게 눈치 주고, 성과 내라고 닦달하니 실적도 좋아진다. ‘노처녀 마녀’라는 소리를 듣지만, 윗분들은 좋아한다.”(34·여·네트워크장비 제조사 과장)

    “‘너는 한 가지를 던져주면 열을 해오는구나’라고 상사에게서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중국인으로 오해받을 때! 내 중국어와 생활태도가 정말 중국인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27·남·중국인 기숙학교 사감)



    “내 앞에서 전임자의 업무 태도 등에 대해 모두가 욕할 때. 내가 그보다 잘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말하는 게 아닐까?”(29·여·은행원)

    “‘○○ 씨는 머리가 참 좋아.’ 내 생각엔 별로 샤프한 머리가 아닌데 평소 아이디어뱅크로 지목받을 때. 혹은 팀장이 내 기획안을 동료들의 것보다 먼저 볼 때.”(29·남·기획사 직원)

    “내가 기획한 책들이 대박은 아니더라도 계속 쏠쏠하게 팔릴 때. 상반기만 대충 계산해봐도 내 연봉의 2배를 회사에 벌어줬다.”(33·여·출판사 직원)

    “이 업무를 맡은 지 겨우 2년 된 내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프로젝트를 맡겼다. 내 능력을 믿나보지?”(27·여·홍보대행사 대리)

    “‘○○ 씨, 잠깐 와봐요.’ 이사가 아무것도 아닌 일도 비밀스럽게, 살갑게 상의할 때.”(28·여·대기업 기획팀 직원)

    “빨리 결혼하라고 할 때. 다른 회사는 결혼하면 자르려고 한다는데, 나는 결혼해도 인재로 받들어줄 모양이다.”(27·여·유통회사 사원)

    “상사가 외부 업체 사람과 만난 자리에서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내 칭찬을 할 때. 평소 칭찬을 잘 못하는 분인 줄 알았는데 술자리를 빌려 진심을 전하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33·여·은행원 대리)

    “팀장과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아무튼 프로젝트가 잘 끝나 팀장은 승진을 했다. 승진 턱을 내거나 내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른 부서에 가서 나에 대해 “그때 누구누구 참 고생했다”며 좋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원래 부하 직원이란 상사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의 발판임을 깨달아 콩고물이 없더라도 빡세게 일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 사실을 알아주다니!”(34·남·화재보험사 대리)

    “회사에서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이크가 내게 넘어올 때. ‘○○ 직원 여러분, 오늘도 고생 많습니다. 이 한 몸 바쳐 ○○의 번영을!’ 이렇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뻔한 코멘트를 윗분들은 듣고 싶어 하는 것이고, 나는 이런 걸 참 잘한다. 마이크만 잡으면 나만한 미모에 나만한 분위기 메이커가 없다고 생각한다.”(27·여·무역회사 직원)

    “회식 자리가 늦게 끝났다. 집에 간다고 나왔는데 평소 별로 친하지도 않던 부장이 택시비를 줬다. 못 이기는 척 받아서 세어보니 5만원!”(32·여·무역회사 대리)

    “다른 부서 팀장이 상권이나 매출 분석에 대해 나의 의견을 구할 때. 여러 부서에서 나를 탐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38·남·패션회사 대리)

    “또 내가 해외출장이다. 올해만도 벌써 여권에 도장을 두 번 찍었다. 예전처럼 출장비가 넉넉한 것도 아니고, 일정 또한 4박5일하던 일을 3박4일로 줄여서 빡빡하기 그지없다. 한밤중에도 잠 못 자고 e메일을 쓰는 등 업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다들 슬슬 미룬다. 예전에는 번듯한 호텔에서 묵었지만 요즘은 민박 수준의 호텔에서 묵어야 하므로 고생은 말도 못한다. 다들 기혼이라 출장을 못 가겠다고 한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싱글’인 한 나는 안 잘릴 것이다!”(29·여·중견기업 대리)

    “월급날 어김없이 사장이 미안하다는 듯 나를 보고 씩 웃거나 한마디 할 때. ‘○○ 씨, 다음에 꼭 올려줄게. 조금만 기다려.’ 8년 동안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며 다니고 있다는 것을 사장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32·남·건설회사 차장)

    “영국에서 거래 회사 직원이 왔다. 굉장히 큰 바이어여서 융숭하게 대접해야 하는데, 그 일이 내게 맡겨졌다. 과장님은 잘 부탁한다며 내게 두툼한 봉투까지 내밀었다. 하루는 민속촌, 하루는 에버랜드에 데리고 다니면서 일정에 없는 여행가이드 노릇을 했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영어를 잘하고 독신이라는 이유로 내가 차출됐다.”(33·여·무역회사 대리)

    “‘이 친구 프로야.’ 외부 인사들에게 회사의 얼굴마담처럼 데리고 가서 나의 경력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말할 때.”(37·남·중견기업 기획팀)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라’는 말을 들을 때 나의 존재가 직장에서 필요함을 느낀다. 안 되는 일을 푸는 중심엔 늘 사람이 있다. 겉으로 보기엔 업무 문제 같지만,일의 곳곳에 사람 사이 관계가 숨어 있다. 뒤죽박죽된 문제의 해결이 내게 맡겨지고, 결국 잘 매듭지어졌을 때 인정받는 느낌이 든다. 쉬운 일을 잘해서 칭찬받고 싶지만, 조직은 내 능력보다 좀더 위에 있는 일을 맡기는 것 같다. 핵심 인재로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더 어려운 일들을 해야 하는 걸까.”(40·여·다국적기업 부장)

    “내가 혹시 회사에서 밀어내는 C급 인재 아닐까?”

    “자기 일만 하면 그만인 동료가 있다. 퇴근시간 되면 하던 일이고 뭐고 다 제쳐두고 짐을 싼다. 자기 일이라도 잘 해놓으면 그나마 나으련만. 그런데 부장은 그녀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녀의 뒤통수를 째려보는데, 부장이랑 시선이 얽힌다. 그녀가 민폐임을 알면서도 덮어주는 부장. 그 일과 관련해서 몇 번 투덜거린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좀생이’ 취급을 받는다. 내가 하던 일 집어던지고 칼퇴근하면 우리 부장, 절대로 잡지 않을 것이다. 남자의 적은 남자다!”(37·남·중소기업 직원)

    “점심시간에 밥을 먹은 뒤 커피 마시러 이동하는 분위기. 커피 값도 아까운 데다 여자들이랑 수다 떨고 싶지 않아서 뒤로 빠졌다. 그런데 아무도 잡지 않는다. 한 사람이라도 커피 마시러 가자고 권했다면 머쓱하진 않았을 텐데. 다들 말리지 않는 분위기. 그날 커피는 짠돌이 부장이 냈다고 한다. 아무래도 나는 왕따인가 보다.”(33·남·해운회사 대리)

    “출근길에 급하게 지하철을 타러 뛰어가는데, 허리에서 부드득 소리가 났다. 집에 갔다 가면 늦을 거 같아서 아랫배에 힘주고 그냥 회사로 냅다 뛰었다. 출근하자마자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하고는 근처 편의점에서 반짇고리를 사서 꿰매고 들어갔다. 차장의 소리가 날아왔다. ‘너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 순간적으로 ‘차장님, 저도 사정이 있거든요’라고 말한 뒤 어쩐지 억울해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1년 동안 쌓인 것 다 풀었다. 그날 이후부터 왠지 갈구는 분위기. 그러나 절대로 내 발로 걸어나가지는 않을 것이다!”(27·여·무역회사 직원)

    “요즘 연봉 동결이네, 삭감이네 회사 분위기가 싸하다. 연봉 이야기가 나와도 한참 전에 나와야 하는데, 아무런 말이 없다. 5월 말이 연봉협상 시기인데, 이래도 되는 건지. 이제 그만둬야겠다 싶은데, 받을 건 받고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연봉’이라고 말하는 순간 회사는 나를 밀어낼 것이다!”(30·여·제조업체 직원)

    “직계가족의 경우에는 부조금이 나오지만 처가의 경조사는 부조금 규정이 모호하다. 그런데 같은 처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동료는 두 달 전에 부조금을 받고 나는 못 받았다. 누구도 상을 어떻게 치렀느냐고 묻지도 않는다! 다들 내가 물로 보이나 보다.”(35·남·중견기업 대리)

    “회사에 왕따 여직원이 한 명 있다. 왕따당할 짓을 한다. 남자 직원들에게만 필사적으로 잘 보일 생각만 하지, 거래처 직원이 와도 커피 한잔 타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매일 그런 일을 도맡아 하니, 오히려 내가 그녀를 왕따시킨다고들 한다. 노처녀인 그녀가 아줌마인 나보다는 낫다 이거지?”(33·여·중소기업 직원)

    “첫아이 출산하고 회사에 특별 육아휴직을 신청, 1년 뒤 돌아왔는데 복귀 두 달 만에 둘째를 가졌을 때. 임신 소식을 통보하자, 평소 자애롭다고 생각했던 노처녀 부장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33·여·은행 대리)

    “외국계 대기업에서 일하기 때문에 전 세계 지사들의 임원 회의나 중요한 정책 결정이 e메일이나 화상회의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 이름이 중요 e메일 수신자 명단이나 화상회의자 리스트에 빠져 있을 때 혹은 e메일 수신량이 갑자기 줄어들었을 때 위기감을 느낀다.”(45·남·외국계기업 임원)

    “거래처 때문에 열받아 있던 중 무의식적으로 책상 아래 컴퓨터를 차버렸다. 쓰러지는 컴퓨터, 그리고 전원도 나갔다! 과장이 불러 ‘너무 예민해져 있는데, 힘들면 좀 쉬어도 돼’라고 말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어머 부장님, 저 없으면 우리 팀 누가 끌고 가나요.’”(30·여·여행사 과장)

    “회사 다닌 지 3년이 넘었는데 일, 사람 모두에 적응이 안 된다. 남들도 다 알 거다. 떠나야 하는 건가?”(32·여·기획회사 직원)

    “회의할 때의 태도에 대해 주의를 들었다. 말대답을 한 것도 아니고, 멍 때린 것도 아닌데 내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겠지.”(37·남·대기업 과장)

    “내가 우리 부서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했는데, 진급을 앞둔 선배에게 더 좋은 등급을 줄 때. 선배의 승진을 위해 희생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불이익을 줘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존중받고 있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32·여·투신사 대리)

    “후배들이 뜬금없이 나이를 물어올 때. 아줌마가 너무 오래 버틴다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온다.”(36·여·인테리어회사 직원)

    “직장생활 연차가 쌓이다 보니, 본의와 상관없이 ‘누구 사람’으로 들어가게 된다. 윗사람의 ‘오른팔’ 혹은 ‘심복’으로 불리는 것. 그러다 보니 나의 보스인 윗사람이 인사 등에서 물먹으면 나를 보는 시선까지 달라지는 걸 느낀다. 반대로 나를 ‘회유’하려고 반대파에서 승진을 시켜주는 일도 있다. 나와 상관없이 회사 내에서 내 자리가 변화할 때 위기감을 느낀다.”(45·남·대기업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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