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6

2009.07.28

‘방망이’ 침묵 승엽 욕심이 너무 과했나

‘반짝 부활, 장기 슬럼프’로 충격의 2군行 심리적 부담에 투수와 수 싸움서 완패

  • 윤승옥 스포츠서울 야구담당기자 touch@sportsseoul.com

    입력2009-07-20 2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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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망이’ 침묵 승엽 욕심이 너무 과했나

    무기한 2군행 처지로 몰린 이승엽.

    불안불안하던 이승엽(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이 7월13일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올 시즌 처음이다. 이승엽은 지난해 실패를 만회하겠다고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참가도 고사하고 올 초부터 단단히 마음먹었지만, 최근 이어진 부진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6월 말만 해도 연속경기 홈런을 터뜨리며 살아나는 기미를 보였으나, 이후 다시 20타수 무안타로 팀 전력에서 제외됐다. 무안타라는 기록도 문제지만, 대부분의 타석에서 상대 투수에게 전혀 대응을 하지 못해 여간 걱정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요미우리의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그간 “이승엽을 2군으로 보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부진이 계속되자 “기한을 정하지 않고 2군행을 결정했다. 고민이 많았지만 이 상태로 벤치에 앉혀뒀다간 팀에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며 팀내 최고 몸값 선수에 대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승엽의 몸값은 6억엔, 우리 돈으로 약 77억원이다. 이런 슈퍼스타의 2군행은 감독이 쉽게 결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하라 감독이 특단의 조치 외엔 대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부진이 심각했다.

    7월13일 한국을 방문한 기요다케 히데토시 요미우리 구단 대표도 국내 야구인들과의 자리에서 “이승엽은 좋은 선수다. 그렇지만 한번 감각을 잃으면 그 기간이 오래간다. 하라 감독도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2군행도 하라 감독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국내 팬들도 고개 저을 정도

    이승엽은 올 시즌 ‘어게인 2006년’을 외치며 부활을 자신했고, 그만큼 준비도 철저히 했던 터라 2군행의 충격은 더욱 크다. 일본 무대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06년 이승엽은 143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3, 41홈런을 때렸다. 2006년을 외친 건 45경기에 나서 타율 0.248, 8홈런에 그친 지난해의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대구에서 지독하게 체력훈련을 했고, 올 초 스프링캠프에서도 타격 폼을 간결하게 바꿨다. 또 평소보다 무거운 1kg짜리 배트를 휘두르며 힘을 키웠다. 그런 노력은 시범경기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이승엽은 시범경기에서 타율 0.302(11위), 8홈런(1위), 17타점(1위)을 기록하며 2006년의 활약을 재현할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 분위기를 타 시즌이 개막되고 두 경기 만에 홈런을 뽑아내 순조롭게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이후 4연속 경기 무안타에 시달리면서 악몽이 찾아왔다. 이로부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타격감이 요동치자 하라 감독은 이승엽에게 ‘플래툰 시스템’을 적용시켰다. 4월 중순부터 상대팀에서 좌완이 선발로 나올 때는 철저하게 그를 벤치에 앉혔다.

    자존심이 상한 상태에서 5월 초 잠시 회복세로 돌아서는 듯했지만 그달 중순 시작된 인터리그에서 다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오랜 슬럼프, 그러다 6월 말 야쿠르트와의 3연전에서 3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리며 반짝 부활했지만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7월4일 주니치전 16호 홈런 이후 7경기, 24타석 동안 안타 하나 만들어내지 못했다. 두세 경기 잘하다가 긴 슬럼프로 빠지는 경우가 벌써 수차례. 결정적일 때 한 방씩 해주는 이승엽을 국민타자로 치켜세우는 국내 팬들마저 고개를 가로저을 정도다.

    무엇이 문제일까. 최근 몇 년간은 손가락과 무릎 부상 등으로 고전했지만, 올해는 이렇다 할 문제가 없다. 부상도 없고, 겨우내 체력훈련으로 몸 상태도 아주 좋다. 타격폼이나 스윙 궤적 등에 대한 기술적 결함도 거론되지 않았다.

    이승엽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심리적인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전 삼성 감독으로 이승엽을 지도했고, SBS 스포츠채널에서 요미우리 경기를 생중계해온 백인천 해설위원은 ‘욕심’이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백 위원은 “아무리 봐도 다른 원인은 없다.

    지난해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더욱 완벽해지려 한 게 눈을 가렸다”면서 “타자는 욕심이 생기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스윙이 무너져 고전할 수밖에 없는데, 이승엽이 딱 그런 경우”라고 했다. 백 위원은 이승엽이 3경기 연속 홈런으로 회복세를 보인 6월26~28일 야쿠르트전 상황을 예로 들며 급락의 원인을 설명했다.

    “지난해 부진 만회 완벽 추구가 원인”

    “이승엽은 원래 몸 쪽 공에 약한 타자인데, 3경기 연속 홈런은 주로 몸 쪽 공을 공략해 뽑아냈다. 이후 상대팀인 히로시마는 자연스럽게 그가 몸 쪽에 강해졌다는 데이터를 갖게 됐다. 이후 이승엽은 상대가 바깥쪽을 공략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역으로 자신의 약점인 몸 쪽을 계속 공략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런데 상대는 몸 쪽 대신 바깥쪽으로 승부하는 정석으로 갔다. 결국 이승엽은 한술 더 떠 생각하다 낭패를 본 것이다. 이게 바로 완벽해져야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10개 중 3개만 안타를 쳐도 수준급 타자인데, 많은 타자들이 이렇듯 10개 모두 안타를 치려 하다 함정에 빠진다.”

    백 위원은 “이승엽은 가뜩이나 생각이 복잡한 와중에 폼까지 바꿔 머릿속이 뒤죽박죽된 것 같다. 타석에 설 때 타임을 요청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이 잦은 게 그 증거”라면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폼대로 가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바 롯데에서 코치로 이승엽을 가르친 SK 김성근 감독의 지적도 비슷했다. 김 감독은 “이승엽은 예상을 벗어나는 공이 오면 잘 못 친다. 최근의 부진은 수(手) 싸움에서 진 것이다. 이는 심리적인 부분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부담에 짓눌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승엽이 잘 안 될 때는 우왕좌왕 흔들리는 모습이 확연하게 나타난다며 이것이 집중력 상실로 이어진다고 본다.

    “승엽이는 안 될 때 자꾸 폼을 바꾸려다 나한테 혼이 많이 났다. ‘다음 날이면 바꿀 폼을 매일 야간훈련까지 하며 익힐 필요가 뭐 있냐’고 혼냈다”면서 “지금은 폼이 아니라 심리적인 게 가장 큰 문제다. 안 되면 자꾸 작아지려 하는 게 이승엽의 특징이다.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이승엽의 침묵에 대노한 하라 감독이지만 빠른 부활을 절실히 원하고 있기도 하다. 하라 감독은 “올스타전이 끝날 때까지 돌아와주면 좋겠다. 다만 (2군에서)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본인도 좋은 모습으로 올라오고 싶을 것이다. 벤치에 놓아둘 선수는 아니다. 계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이승엽을 독려했다. 이 말에는 그에 대한 믿음과 함께 2군에서 회복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1군으로 부를지 알 수 없다는 엄포도 들어 있다.

    요미우리 구단 안팎에서는 이승엽과 관련한 갖가지 소문이 나돈다. 그중에서도 요미우리의 TV 중계권 수입이 줄어 고액 선수인 이승엽이 축출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비중 있게 흘러나온다. 이런 말이 나돌 정도로 이승엽의 입지와 팀내 위상은 크게 줄었다. 앞으로도 부진이 계속되면 이런 설(說)이 설득력을 얻어나갈 수 있다.

    지금으로선 담이 커져야 한다. 어느 때보다 부담이 크지만, 스스로 강해져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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