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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러시아 보물이 내게 말 걸어왔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250만점 소장 … 대한항공 후원 한국어 서비스로 친근감 더해

  • 이진숙 인터알리아 아트디렉터·‘러시아 미술사’ 저자

러시아 보물이 내게 말 걸어왔다

러시아 보물이 내게 말 걸어왔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인 마티스의 ‘춤’(1910),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베누아 성모’(1475∼1478),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1668∼1669).

‘북유럽의 베네치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물과 돌의 도시다. 18∼19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축물들 사이로 4개의 운하와 ‘하늘’이란 뜻의 네바 강이 관통하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낸다.

유람선을 타고 네바 강을 따라 가다 보면 밝은 민트색의 화려한 바로크풍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로 이 도시의 보물, 에르미타주(Эрмитаж) 박물관이다. 에르미타주는 예카테리나 여제(1684∼1727) 때 완공되어 황제들의 겨울궁전으로 쓰였으며, 지금은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국립박물관이 된 에르미타주는 로마노프 황실 수집품에 러시아 귀족들의 개인 소장품이 더해지면서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침공했을 때 러시아인들은 대규모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계획을 세워 에르미타주의 주요 소장품을 우랄산맥의 소도시로 소개(疏開), 말짱하게 지켜냈다. 67만여 명이 굶주림으로 사망한 ‘레닌그라드 봉쇄’가 있던 때의 일이다. 그러니 ‘에르미타주’란 이름만으로도 러시아인들이 느끼는 자부심은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로마노프 황실의 취향을 반영한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은 규모만으로도 압도적이다. 1057개 방과 117개의 계단이 있다. 전시실 총면적은 4만6000여㎡로 전시실들을 한데 이으면 27km다. 250만 점에 이르는 전체 작품을 빠짐없이 관람하려면 먹지도 자지도 않고 1분씩 쳐다보기만 해도 5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 하루에 이 박물관을 다 보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옳다. 특히 관심 있는 시기의 작품들을 골라 보는 식으로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 현명하다. 방은 미로처럼 연결돼 있고,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작품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놓쳐선 안 될 중요한 작품 수두룩

에르미타주에는 그야말로 ‘우리가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명화가 즐비하다. 늘 관람객에게 둘러싸여 접근하기 어렵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베누아 성모’(1475∼1478)와 ‘리타의 성모’(1490년경)는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서라도 꼭 보아야 한다. 이 두 점의 작품은 젊은 시절 다빈치의 열정과 르네상스 정신을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카라바조, 벨라스케스, 무리요, 엘 그레코, 루벤스, 반다이크, 푸생, 로랭, 렘브란트와 네덜란드 풍속화가 작품들이 전시된 ‘17세기 바로크 미술 컬렉션’은 양이나 질에서 모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렘브란트의 주요 작품인 ‘꽃의 여신으로 분한 사스키아’(1634) ‘다나에’(1636) ‘돌아온 탕아(1668∼1669)’를 한 자리에서 보는 것은 에르미타주만이 줄 수 있는 축복이다.

특히 말년의 작품인 ‘돌아온 탕아’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먼 나라 러시아까지 간 이유를 순식간에 깨닫게 된다. 렘브란트가 선사하는 그 따뜻한 화해의 빛에 감싸이기 위해서라는. 이 작품은 웬디 수녀가 ‘유럽미술 산책’에서 에르미타주에서 가장 볼만한 작품으로 뽑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 밖에 에르미타주에서는 인상주의, 세잔, 고갱, 고흐, 마티스와 피카소 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황실이 아니더라도 러시아 컬렉터들의 미술품 수집은 역사가 깊고 그 양과 질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세계 미술계의 큰손’으로 알려진 프로축구단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러시아 신흥 재벌이다. 그는 지난해 바젤 아트페어에서 자코메티의 조각을 140억원을 주고 구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돈을 벌면 좋은 미술품을 조국으로 사들이는 러시아의 컬렉션 전통은 에르미타주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모로조프와 시킨이라는 두 거상은 당시 미술의 중심지이던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품들을 구입해 자신의 집에 전시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을 젊은 작가들에게 공개해 20세기 초반 말레비치, 타틀린, 칸딘스키, 샤갈 등으로 대표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라는 미술사에 길이 남을 사조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소장품은 현재 대부분 에르미타주와 모스크바의 푸시킨 미술관에 편입돼 있다. 이 놀라운 컬렉션 중에는 피카소 청색시대의 주요 작품과 1908년 작품들도 있다.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을 발표하고 입체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그려진 이 작품들은 입체주의의 비밀을 밝히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한 시기의 피카소 작품이 이렇게 여러 점 소장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못 떠난다?

모로조프는 더 나아가 마티스를 러시아에 초청해 자신의 집에 걸 작품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 마티스는 1910년 러시아를 방문하고, 러시아 전통미술인 이콘화의 단순함과 위대함에 큰 감동을 받아 같은 해 두 점의 대작을 완성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춤’과 ‘음악’이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있는 예비 작품만을 본 서구의 관람객들에게 에르미타주의 완성본 ‘춤’은 놀라운 감동을 준다. 집약된 단순함과 우아함 그 자체인 이 작품들은 두고두고 에르미타주를 그리워하게 한다.

감동은 때로 사건을 일으킨다. 필자가 2005년 에르미타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 관람객이 마티스의 ‘춤’ 앞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도슨트 할머니가 뛰어와서 야단쳐도 그는 한참을 누워 있었다. 그는 그렇게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듯 이 작품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마티스는 자신의 작품이 안락의자처럼 편안하길 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의 관람 포즈는 지극히 마티스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에르미타주의 명물 중 하나는 관람객들을 주의 깊게 살피는 각 방의 도슨트 할머니들이다. 평생을 바쳐 박물관을 지켜온 이 할머니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작품에 대해 예의를 지키지 않는 관람객은 곧바로 경고를 받는다.

에르미타주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튼튼한 다리와 부른 배를 갖춰야 한다. 한번 들어가면 휴게실까지 다시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해야 하는 일 한 가지. 14∼15세기 이탈리아 미술관을 지날 때는 반드시 창밖을 바라볼 것. 요요하고 괴기스러운 네바 강이 창밖으로 흐른다. 거기서 도스토옙스키와 고골의 환영이 지나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시에 보통을 넘어서는 기괴함과 환상이 깃드는 것은 밤을 잊은 백야와 끝이 보이지 않는 네바 강 때문이다. 에르미타주의 창밖으로 보이는 네바 강은 창틀을 액자 삼은 에르미타주의 마지막 명화다.

Tips
최근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대한항공의 후원으로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연극인 손숙과 방송인 김성주의 목소리로 주요 작품 352점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에르미타주의 관람시간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일요일은 오후 5시까지)며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주소 Russia St Petersburg, Dvortsovaya Naberezhnaya, 홈페이지 http://www.hermitagemuseum.org




주간동아 2009.07.28 696호 (p70~71)

이진숙 인터알리아 아트디렉터·‘러시아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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