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5

2009.07.21

갈대숲 아주 작은 집 뱁새의 고운 보금자리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09-07-15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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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대숲 아주 작은 집 뱁새의 고운 보금자리

    <B>1</B>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둥지와 알. <B>2</B> 왕거미가 친 거미줄에 물방울이 맺힌 모습. 장맛비에도 집이 망가지지 않고 굳건하다.

    우리 사회에서 ‘집’이라 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이 부동산 재테크 또는 학군이다. 이를 위해 적지 않은 사람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맞벌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집이 사람에게 보금자리가 되기보다 집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어쩌면 우리네 삶이 근본에서 너무 멀리 떠나온 건 아닐까.

    자연에 사는 생명체에게 집은 보금자리 그 자체다. ‘보금자리’ 하면 떠오르는 건 가족이나 사랑이다. 그곳에는 식구끼리 서로를 보듬는 온기가 있고, 먹이사슬에 지친 몸을 추스를 안온함이 있으며, 새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이 있다. 또한 포식자들을 피하기 위한 지혜도 숨어 있다. 이를 좀더 자세히 보자.

    동물마다 집을 짓는 방식은 독특하나 공통점은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본 가장 단순한 집은 거미집. 거미가 먹이를 잡기 위해 치는 그물이 아닌, 그야말로 새끼를 낳기 위한 보금자리 말이다. 벼가 한창 자라는 논에서 본 염낭거미는 아주 간단히 집을 지었다. 벼 잎 두세 장을 모아 그 틈새에 알을 낳았다. 간단명료한 집이라 더 아름답고 성스럽다.

    왕거미가 먹이사냥을 위해 그물을 치는 모습도 아름답다. 저녁 해거름에 집을 짓는 데 드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좁은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먹이활동을 다 한다. 또한 이 그물에서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이렇게 일터와 집이 일치하니 얼마나 경제적인가. 사람들의 재택근무를 떠올린다.

    작은 생명들은 지상 최고 건축가



    사람들 눈에 흔하게 띄는 짐승집이라면 까치집이 있다. 마을 가까이 나무 위에도 짓지만 전봇대 위에도 곧잘 짓는다. 까치는 핵가족 단위로 새끼를 키운다. 아무래도 천적인 매에게 노출될 위험이 높다 보니 마을 가까이나 전봇대에 집을 짓되, 공들여 짓는 편이다. 어미가 들락거릴 정도의 구멍만 남기고 집 전체를 수백 개의 나뭇가지로 촘촘히 감싼다. 까치는 이렇게 지은 집을 해마다 고쳐가며 계속 사는 편이다.

    백로와 왜가리는 무리지어 새끼를 키운다. 수백, 때로는 수천 마리가 강이나 논이 가까운 야트막한 산에다 근거지를 마련한다. 집은 까치집과 달리 허술하다. 별다른 천적이 없기에 굳이 정성들여 지을 필요가 없다. 그냥 알을 낳고 품을 정도로만 짓는다. 다만 이렇게 모여서 새끼를 키우다 보니 서식지 아래는 이들의 배설물로 풀조차 자라기 어려울 정도다.

    갈대숲 아주 작은 집 뱁새의 고운 보금자리

    <B>3</B> 백로와 왜가리는 무리지어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운다. <B>4</B> 알을 지고 다니며 잘 깨어나게 돌보는 물자라 수컷. 새끼를 위해 자기 몫을 다하며 부성애를 발휘한다.

    좀더 작은 새집을 하나 더 보자. 며칠 전, 우거진 갈대숲에서 어른 주먹만 한 새집을 발견했다. 조심스레 둥지 안을 보니, 알이 있었다.

    파란 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 순간 아득한 하늘이 떠오르고, 곧이어 아주 오랜 원시 자연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알은 모두 4개였다. 크기는 어린이 새끼손가락 끝마디 정도.

    이 알이 무슨 새의 알일까. 내가 가진 도감을 뒤져도 새알에 대해 나온 건 없다. 갈대숲에 집을 짓는 건 개개비라는데 개개비 알은 흰색이다. 그런데 이 알은 파란색이지 않은가. 이 궁금증을 풀고자 알고 지내던 월간 잡지 ‘자연과 생태’의 담당 기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국립환경연구원에 계신 조류학자 박진영 박사님을 연결해서 답을 주었다. 뱁새라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알이라고.

    아주 작은 새인 뱁새. 작아도 알만 잘 낳는 새가 아닌가. 뱁새는 마음만 먹으면 집을 크게 지을 수도 있다. 널린 게 갈대요, 마른풀이다. 그러나 뱁새는 작은 집이 더 좋다. 집을 크게 지어봐야 포식자들에게 노출만 될 뿐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지나치게 크고 화려한 집에 산다면 가난한 누군가의 부러움, 질투 또는 도심(盜心)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갈대숲에 작은 집을 지은 뱁새가 그래서 더 정감이 간다. 누군가 일부러 그곳을 뒤지지 않는 한 어떤 포식자도 찾을 수 없는 집. 겉은 투박한 지푸라기로 엮었으나 안으로 갈수록 곱고 가늘고 부드러운 것들로 아늑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튼튼하다. 집이 작은 데다 갈대 세 줄기를 가져다 삼각형으로 기둥을 세웠으니 웬만한 비바람에도 끄떡없다. 보금자리란 말이 실감난다. 부모가 새끼를 잘 키우리라는 느낌을 저절로 받는다.

    등짝에서 새끼 키우는 물자라 수컷의 부성애

    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주 색다른 보금자리도 있다. 논둑에서 본 늑대거미는 어미 몸통이 보금자리다. 알일 때는 어미 똥구멍 가까이 실젖에 매달고 다니다가 알에서 새끼들이 깨어난 다음에는 등짝에 지고 다닌다. 이때는 사람이 사진 찍을 틈도 안 줄 만큼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그런데 내가 남자다 보니 늑대거미 몸통보다 더 끌리는 보금자리가 있다. 바로 물자라 수컷 등. 물자라는 암컷이 수컷 등에다 깨알 같은 알 수십 개를 낳아 붙인다. 그러면 수컷은 알이 깨어날 때까지 정성껏 돌본다. 물 위로 등을 수시로 올려 알이 호흡하고 따스한 햇살을 받도록 해 새끼가 잘 깨어나게 돌본다. 이렇게 물자라 수컷은 알이 깨어날 때까지 부성애를 아낌없이 발휘한다.

    그렇다고 등에 진 새끼 짐을 버거워하지도 않는다. 아주 자연스럽다. 그래서일까. 손톱만 한 물자라 수컷 등이 그토록 넓어 보이는 까닭은…. 나는 보통 남자들에 견주어 등이 좁다. 돈도 잘 벌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물자라 수컷을 볼 때면 위로를 받고, 때로는 슬며시 웃기도 한다. 등이 넓어야만 또는 돈을 잘 벌어 큰 집을 가져야만 아비 노릇을 잘하는 게 아님을 물자라 수컷이 온몸으로 보여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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