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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촛불 켠 보수 주판 든 진보 04

겉모습은 ‘실용’ 속살은 ‘보수’

MB 정부, 이념 탈피 선언했지만 보수적 가치 기반 … 거의 모든 정책에서 찬반 갈등

겉모습은 ‘실용’ 속살은 ‘보수’

겉모습은 ‘실용’ 속살은 ‘보수’

6월23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우리는 이념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실용정신은 동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합리적 원리이자….”

지난해 2월25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념’을 딱 두 번 언급했다. 두 번 다 이념을 극복의 대상으로 거론했다. 반면 ‘선진’은 15번, ‘경쟁’과 ‘실용’은 각각 9번과 5번 등장했다. 비(非)여의도 출신의 신임 대통령은 정부 명칭으로 ‘실용정부’를 고려했을 만큼 애초 이념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러나 집권 2년차인 현재 ‘보수정책 구사하는 보수정부’로 낙인찍힌 상태다. 의도가 실용이었다고 해도, 상당수 국민과 정치적 반대세력은 보수정권의 보수화 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나마 실용주의 기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최근의 대북정책이다. 4월 초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까지도 강경 일변도이던 대북정책은 5월 들어 ‘유연한 대응’이라는 기조 아래 과감한 대북 제안을 검토하는 등 방향을 트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를 두고 ‘비즈니스맨으로 살아오면서 흥정을 벌이고 담판 짓는 협상의 기술이 대북 접근법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실용주의’라는 평가가 제기됐지만, 거꾸로 보수세력 일각에서는 ‘MB의 변절’이라는 불만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이런 기조도 5월 하순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선언 등 ‘단호한 대응’으로 수정됐다.

경제, 복지, 교육 분야에서는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 철학에 바탕을 둔 정책 기조가 뚜렷하다. 경제개혁시민연대 김상조 소장은 “감세 정책, 노동시장 유연화, 기업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 보수주의 정부가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런 만큼 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의 반대와 비판이 거세다. 한편으로는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이하 자사고)의 추첨제 선발 등 반대여론을 의식한 ‘정책 수정’이 보수 진영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5년간 88조원 감세, 재정 적자 ‘빨간불’

겉모습은 ‘실용’ 속살은 ‘보수’

3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노조총파업 6차 대회. 미디어관계법 개정은 정부 여당이 내놓은 정책 중 가장 첨예한 사안이다.

보수주의 정부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는 감세(減稅) 정책의 구사 여부다. 잘 알려진 대로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상속증여세 등을 전격 인하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로 인한 2008~2012년 감세 규모가 88조6500억원(누적 기준)에 이른다.

문제는 재정 적자의 급격한 확대. 감세로 수입은 줄고, 세계적 경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지출은 늘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33조원 규모의 재정을 추가로 투입했다. 이는 주요 20개국(G20) 중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그 탓에 감세 1년 만에 증세(增稅)가 논의되고 있다. 방향은 기존의 감세를 유지하면서 비과세 감면 규모를 축소해 세수를 늘리는 것이다. 부가가치세 인상 가능성도 슬슬 고개를 든다.

비과세 감면 혜택은 주로 농·어민이나 중소기업 등에 돌아간다. 실질적 물가상승을 가져오는 부가가치세 인상은 부자보다 서민에게 타격이 크다. 따라서 진보 진영은 “부자 퍼주기의 부담을 서민에게 전가시키려 한다”(참여연대)며 반발하고 나섰다.

‘서민 보듬기’를 앞세운 중도강화론이 천명된 이후에도 이 같은 정책 방향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28일 국회에서 “(법인세, 소득세 인하 계획 유보 주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지만, 다음 날 전국경제인연합회 행사에 참석해서는 “정부의 감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부자 감세’란 비판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은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인하는 징벌적 성격의 왜곡된 세금을 바로잡아 합리화하는 차원이었다”면서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는 1차적으로 부자들에게 혜택을 주지만, 투자와 소비를 일으켜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서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이영 교수는 “세계 각국이 법인세를 경쟁적으로 인하하기 때문에 법인세 인하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담세 능력에 따른 과세라는 조세 정의를 실현하고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개인소득세 인하 계획을 지금이라도 중단하고 고소득자의 실질적인 세 부담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미디어관계법 개정 문제를 둘러싼 논란도 첨예하다. 정부 여당과 야당의 견해 차이는 1년 넘도록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월 논의기구로 출범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는 결국 파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문제는 그동안 진보세력이 꾸려온 언론시민단체에 대항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방송개혁시민연대’가 발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언론시민단체도 이념이 서로 다른 두 진영으로 갈리게 된 것이다.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미디어관계법 개정안은 대기업과 신문사의 방송 겸영 허용이 주요 골자다. 정부 여당은 방송시장 전면 개방을 통해 방송통신 융합 추세에 부응하고,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미디어를 육성하면서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야당 등은 미디어관계법을 ‘지상파 방송국을 대자본과 메이저 신문에 나눠주는 법’이라고 몰아붙인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윤석민 교수는 이에 대해 “정부 여당은 미디어 시장에서도 시장주의를 강화해 경쟁력을 키우자는 의도인 반면, 반대 세력은 ‘사상시장’의 다원성 유지를 위해 시장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진단했다.

‘경쟁 교육’ vs ‘효율 복지’ 시끌시끌

이명박 정부의 교육 및 복지 정책 또한 시장주의, 자유주의 등 ‘보수적 가치’를 기반으로 삼는다. 교육과 복지의 정책 기조는 각각 ‘자율과 경쟁’ ‘효율과 자립’으로 요약된다. 먼저 교육정책은 획일적인 평준화 교육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를 육성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각 교육 주체의 자율성을 강화해 경쟁력을 높이자는 방향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대구가톨릭대 교육학과 정일환 교수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학교 단위로 권한을 갖고 학교 간 경쟁을 벌여 세계무대에서도 경쟁력을 높인다는 자유주의 철학을 기반으로 삼는다”면서 “자사고 등 고교 다양화, 대학입시 자율권 확대 등은 이러한 철학에 입각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복지정책에 대해 나성린 의원은 “진보가 추구하는 것이 빈곤 유지 정책이라면 우리는 빈곤 탈출 정책”이라고 말했다. 즉 교육 기회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립 능력을 길러줌으로써 스스로 빈곤에서 탈출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복지 효율화’ 또한 정부가 추진하는 과제다. 중복되는 복지 서비스를 과감하게 줄이고 ‘무자격’ 수혜자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동시에 정부 여당은 ‘서민 지향’이란 명찰을 유지하고자 한다. 즉, 정부 여당은 최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사교육비 절감 대책과 관련해 “자율과 경쟁의 교육기조에 맞지 않는다”는 일부 보수 진영의 비판에 “사교육비 절감은 대선 캠페인 시절부터 공약이었다”고 강조한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애초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는 일류대 진학률이 높은 일류고를 키우자는 게 아니라 영어와 과학 특기자들의 특성을 살리자는 취지였다”며 “내신 반영 비율을 낮추는 등의 대책을 통해 특목고를 본질에 맞게 돌려놓음으로써 사교육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겉모습은 ‘실용’ 속살은 ‘보수’
“정부가 복지를 축소하고 있다”는 진보 진영의 비판에 대해서도 정부 여당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2008년의 경우 본예산이 전년 대비 10.8% 증가한 반면, 사회복지 예산은 14% 증가했다는 것.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은 “추경 등을 통해 결식아동 및 지역아동센터 지원, 마이크로크레딧(소액 신용지원) 사업 등의 예산이 크게 늘었다”면서 “정말 많은 예산이 복지 현장에서 쓰이지만 언론에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중도강화론으로 지지-반대 함께 껴안기 시도하지만…

그러나 진보 진영은 정부가 이들 정책에서 서민 지향을 시도한다고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진보신당 심상정 전 공동대표는 “사교육비라는 국민의 가장 절박한 문제에 주목한 점은 다행이지만, 내놓는 대책들이 미봉적 수준에 머물고 ‘면피’ 의도가 엿보인다”며 “이미 지나치게 과열된 학생 간의 경쟁 구도를 해소하지 않는 한 사교육비 절감 대책은 효과를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은 “경기침체로 빈곤층이 증가해 복지 대상이 확대된 것을 감안하면 복지 예산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정부(기초생활보장제도), 참여정부(기초노령연금제도 및 장기요양보험제도)와 달리 복지 브랜드가 없다. 자기만의 새로운 복지정책을 내놓지 않은 채 부정 수급자를 가려내는 일에만 골몰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6월30일 서민생활 대책으로 6대 부문 15대 과제를 발표한 기획재정부를 향해 진보신당은 “부자 감세는 계속하겠다는 정부가 과연 무슨 돈으로 서민생활대책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를 보인다”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새로 내놓는 거의 모든 정책이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 갈려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개개의 정책이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고 국가 발전을 가져오는지에 관한 객관적 논의와 생산적 토론은 요원하다. 지난 1월 ‘방송규제 완화의 경제적 효과 분석’이란 연구결과를 내놓았다가 거센 논란에 휩싸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미디어관계법 문제는 이미 민감한 정치 사안이 돼 있어 더 이상의 객관적 논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최근 청와대는 중도강화론을 천명하면서 이 같은 극단적인 보수-진보의 대결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를 다졌다. 나 의원은 “1년 반의 집권 기간에 감세, 규제 완화 등의 정책을 추진해 지난 10년간 좌편향된 정책 패러다임을 어느 정도 오른쪽으로 바꿔놓는 성과를 거뒀다”며 “더 이상 논란이 되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책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노무현 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는 보수와 진영 양쪽에서의 비판이 거세진 시점에 등장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통해 두 진영을 아우르고자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김상조 소장은 “중도강화론도 좌파 신자유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과연 이명박 정부는 중도강화론을 통해 노무현 정부와 달리 지지 세력을 유지하면서도 반대 세력을 껴안을 수 있을 것인가. 등원조차 거부하는 무책임한 야당은 차치하고라도 당장의 민생이 걸린 비정규직법조차 정치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정부 여당에 거는 기대가 너무 큰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주간동아 2009.07.14 694호 (p27~29)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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