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4

2009.07.14

옷, 드러난 정치적 도구

잉카 쇼니바레의 ‘머리통 두 개를 동시에 날리는 방법’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입력2009-07-08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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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 드러난 정치적 도구

    잉카 쇼니바레, ‘How to Blow up Two Heads at Once(Ladies)’, 2006. 93 1/2 x 63 x 48 inches

    “학생, 자네는 아프리카 사람 아닌가? 그런데 지금 뭐 하고 있나? 진짜 아프리카적인 작품을 해보지 그래?”

    대학시절,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라는 주제에 천착하던 작가 잉카 쇼니바레(1962~)에게 지도교수가 던진 말입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때 나이지리아인 부모를 따라 나이지리아로 이주합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죠. 진짜 아프리카적인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그는 런던 남쪽의 브릭스턴(Brixton) 시장 포목점에서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브릭스턴 시장은 아프리카 상품을 파는 곳으로 유명한데요. 아프리카산 천으로 알려진 옷감의 원산지가 네덜란드였고, 추상적인 패턴을 만들어내는 납결 염색(밀랍 염색)이 인도네시아 전통 옷감인 바틱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누구나 아프리카 전통 천이라 믿었던 직물이 실은 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뒤 그는 역사서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18~19세기 네덜란드는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바틱이 중요한 옷감이라는 것을 알고 대량생산해 수출하려 했지만, 판매에 실패하자 서아프리카 시장으로 눈을 돌립니다. 화려한 색상과 추상적인 무늬는 아프리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고, 가장 많이 소비되는 옷감으로 자리잡게 됐죠.



    지금껏 아프리카의 전통 천이라 믿었던 옷감이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 때문에 생산됐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머리 없는 마네킹에 납결 염색 옷감으로 디자인한 옷을 입히기 시작합니다. 아프리카 의상이 아닌 빅토리아 시대 의상을 디자인한 것 역시 당시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 지배를 암시하기 위해서죠. 작가 또한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이지리아 출신이니까요.

    하지만 그의 작품은 좀더 복잡한 이슈를 담고 있습니다. 목이 없는 마네킹은 결국 입혀진 옷으로만 성별, 국적이 결정됩니다. 즉 의상은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매우 정치적인 도구인 셈이죠. ‘머리통 두 개를 동시에 날리는 방법’이라는 작품을 보죠.

    만일 몸통 위에 아프리카 여인의 머리를 붙인다면 식민 지배 당시 유럽문화를 쉽게 받아들인 아프리카 여성이 되고, 백인 여성의 머리를 붙이면 빅토리아 시대의 귀족 여성이, 남성의 머리를 붙이면 동성연애자나 복장도착자가 되겠죠. 만일 한쪽에 흑인, 다른 한쪽에 백인의 얼굴을 붙인다면 제국주의와 반제국주의의 대결구도가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마네킹에 머리가 없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머리가 없으면 생각을 할 수 없겠죠.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역사가 얼마나 비이성적인 결정으로 점철됐는지도 함께 보여주기 위함이지요. 잉카 쇼니바레는 목 없는 마네킹에 총을 쥐어준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 때 착상한 작품입니다. 지구상에서는 거의 매일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모두 자신만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결국 전쟁에서는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엄청난 피해는 양쪽이 고스란히 나눠 갖기 때문이죠. 상대와 자신의 머리통을 동시에 날리는 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대학시절 골수염으로 전신마비가 된 그는 지금도 휠체어에 의지해 살지만, 동시대와 역사에 대한 성찰을 누구보다 활발하게 작품에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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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경윤 ‘아트인컬처’ 수석기자 www.sayh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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